40대엔 많은 걸 짊어져야 한다
-명절에 얼마 드릴지 생각해 봤어요?
-어… 아니요. 그냥 그때 돼서 차차 생각해 보려고요.
-그러면 어버이날엔 어떻게 할지 이야기해본 적 있어요? 양가 부모님 생신 때는?
-그런 것까지 미리 얘기해야 해요? 할 게 너무 많아서요…
결혼을 앞둔 후배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각종 이벤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꼭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한 번도 ‘아, 정해놨어요. 이때는 이렇게 드리려고요.’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결혼 전에 각종 다양한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그때만 해도 아직 시부모라 하면 좀 어렵고, 고부 관계로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많았다.(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다)그래서 어떤 요구가 내게 들어왔을 때 어디까지 내 마음에서 가능하고, 이런 건 안 되는 걸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1년 동안신경 써야 할 날들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양가 부모님 생신이 다해서 4번, 명절이 2번, 어버이날도 있다. 이렇게만 헤아려보아도 7번이다. 7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좀 더 돈독한 집의 경우 자매, 형제의 경조사도 챙겨야 할 것이다.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할 수도 있고, 제사를 드리는 집이라면 여기에 +a로 훨씬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빈손으로 가기 그러니 뭐 먹을 거라도 사들고 가게 되기 쉽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을 것이다. 명절이면 이 모든 것들이 대 폭발한다. 부모님 용돈도 드려야겠고, 조카 용돈도 줘야겠고. 음식 장만 하느라 고생한 분들께 뭐라도 좀 해드려야 할 것 같고. 부부 둘이 벌고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닌데, 결국 그 돈 벌어서 뭐 해? 가족에게 쓰려고 버는 거 아니야? 하는 남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만난다.
이럴 때 기준을 정해놓지 않으면 매년 돌아오는 명절과 기념일마다 들어가는 돈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우리와 같은 딩크 부부에게도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아이라도 있으면 더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한 기준은 이랬다. 처음엔 일단 다 최소한으로 드리자. 나도 명절에 우리 엄마아빠에게 더 많이, 왜 안 주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러면 계획했던 자금 저축 목표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정확하게 금액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별생각 없이 처음엔 좋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내가 10만 원이라고 했을 때는 별생각 없이 OK를 했는데, 명절이 나가와서 곰곰이 본인이 생각을 해보니 너무 적지 않나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몇 번 대화를 더 했다. 언젠가 부모님이 은퇴를 하시면 매달 용돈을 드려야 할 수도 있다. 거기에 추가로 병원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럼 정말 돈이 필요한 건 그때일 것이다. 부모님이 병원에 가시면 있던 정도 떨어진다고 했다. 그때 가족된 도리를 다 할 수 있으려면 지금 좀 구두쇠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남편은 가계부를 맡은 내 말에 동의하였고, 결국 그때 정한 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생신, 어버이날은 10만 원씩, 명절은 재료도 사시고 요리하시느라 고생하시니 20만 원, 조카들은 10만 원 동결, 다만 상급 학교로 진학할 때는 통 크게 쏘기. 이렇게만 해도 명절엔 꽤 많은 돈을 써야 한다. 결혼 초라면 명절에도 마찬가지로 10만 원을 드리는 걸 추천한다. 용돈으로 모든 걸 퉁치는, 우리 집 같은 경우라면 말이다.
가끔 엄마가 너무 조금인 거 아니냐고 말한 적도 있지만, 그래서 10년 만에 가족이 다 같이 스위스도 갈 수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아프실 때 부담 없이 병원비를 내드릴 수 있다. 다만 젊을 때 생색을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내가 젊을 때는 우리 부모님도 젊어 주어진 시간이 있다. 그때 옹골차게 모아야 정말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40대에는 들어오는 건 없지만, 돈은 없으면 빌려서라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 조금 편하자고 지금 통 크다는 소리를 듣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초반엔 구두쇠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