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도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것이 2007년,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난 여름이었다(그전에 외국을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여행 목적으로 갔던 것은 아니라 제외한다). 당시에는 유럽 여행은 20대라면 한 번쯤 해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되던 시절이었고, 나도 막연히 처음 여행은 유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4명 인원을 모으고, 당시 유럽 여행하면 누구나 들렀을 '유랑'이라는 카페와 블로그도 열심히 검색해 가면서 여행 준비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 여행은 서로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불행한 조모임 같은 격이어서 귀국 후 뿔뿔이 흩어지는 파국으로 남았으나, 내 마음속에 '여행 좋아'라는 취향의 불씨를 남겼다.
이후 바로 여행을 가지는 않았다. 연애도 하고 뮤지컬도 많이 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어떻게 앞날 생각하지 않고 돈을 마구 써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그러다가 2010년에 선택한 여행이 파리를 일주일간 혼자 다녀오는 거였다.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던 건 첫 여행에서 맘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때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여행에서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이 파리였고, 누구나 있는 파리에 대한 로망도 있었기 때문에 있는 돈 없는 돈을 털어 갔다. 혼자 가니 재미있는 것도 있고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다. 지속해서 아쉬운 건 역시 언어. 당시에는 한국이야 남들이 모르는 나라였으니 더욱 그랬다.
짧게 동남아를 다니다가 제대로 다시 여행을 짜서 간 건 이탈리아였다. 밀라노부터 시작해서 로마까지, 지금이라면 남부까지 다녀왔겠지만 당시에는 남부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이 여행은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우연히 같은 학교의 언니와 인 아웃이 똑같은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 들었던 마음은 같은 학교인데, 이전처럼 파국으로 끝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었다. 그때에도 여행 계획을 혼자 가는 걸로 짜고 있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언니와 중간까지 같이 가다가 서로 일정이 달라 헤어지고, 집에 갈 때 다시 만났다. 이 여행은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내가 짠 계획이 괜찮았고, 언니와의 사이도 아주 좋았다. 너무 가까운데 취향이 안 맞는 사람보다 멀어도 취향이 맞는 사람이 여행에는 딱 맞다는 걸 알게 된 기회였다. 그리고 이 여행을 계기로 언니와도 더 가까워졌고, 이후에 터키를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 계획을 짜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예전엔 여행의 선구자들이 다녀온 곳을 그대로 다녀오는 방법을 많이 썼다. 그런데 더 많이 다니다 보니, 그건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구글 맵을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본다. 트립 어드바이저나 카페에서 봤던 글 중 관심 가는 관광지나 음식점이 있으면 일단 구글 맵에 찍어놓는다. 특히 나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좋다. 2명 이상이면 취향이 100% 겹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동의했던 상대가, 여행 중에 힘들어지면 다른 거 먹자고 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나도 그런 식으로 많이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꼭 가야 하거나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장소가 있다면, 여행 기간 중 가장 넉넉한 날에 배치한다. 특히 방콕같이 관광보다는 먹는 여행을 해야 하는 장소에서는 배를 비우는 게 필수다. 좀 괜찮은 레스토랑을 봐놓았다면 조식을 한 번쯤 먹어봐서 조식 니즈도 없고, 점심은 대충 길거리 도시락으로 때울만한 날로 레스토랑 예약을 해두는 게 좋다. 큰 일정은 하루에 하나를 해두고, 백업 플랜으로 하나, 두 개 정도 더 만들어놓는 게 좋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게 바로 구글맵 핀이다. 내가 있는 장소 주변에 갈만한 곳이 있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챗 gpt만 사용해도 충분히 내게 맞는 여행을 짤 수 있다. 이번 스위스 여행도 그렇게 할 예정이다. 이제 여행이 진짜 한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1년 전부터 준비했던 날이 실제로 오다니, 결혼도 아니고. 원래 미리미리 계획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진짜 1년 전은 처음이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탈 때야 실감이 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