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 오 나의 아빠
우리 아빠는 올해 77세, 49년생이다.
나이만 들으면 호호 할아버지가 생각나겠지만, 아빠는 아직도 직장을 다닌다. 어딜 가나 “그 나이로는 안 보이세요!”라는 말을 듣고, 체격도 당당하다.
아빠의 모습이 예전과 변함이 없으니 나는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이 아빠를 대한다.
우리 아빠는 말 그대로 유니콘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렸던 수많은 드라마를 보면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아빠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통곡을 했다. 엄마는 맨날 공부로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아빠는 그저 사랑만 해주었다. 지금이야 그때 엄마 아빠의 역할 분담을 이해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 친밀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 아빠의 가장 큰 능력치라고 하면 운전실력이다. 그 고단했던 IMF시절을 버텼던 것도 어떻게든 버스나 택시를 운전해서였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아빠는 회사의 트럭을 몰기 시작했다. 그걸로 어디로든 갔다.
아빠에게는 두 딸이 있다. 나와 내 동생. 아빠는 두 딸을 위해서도 어디로든 운전했다. 나는 내 전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갔을 때도 아빠 차를 타고 면회를 갔다. 자취하는 동생은 본가로 올 때면 아빠가 데리러 가고 데려다준다. 우리는 포옹도 뽀뽀도 자주 했다. 지금까지도, 엄마와는 어색하지만 아빠와는 자주 한다. 아빠와 친밀한 딸들을 보며 엄마는 '보통 딸들이면 엄마랑 같이 놀아주는데, 우리 집은 반대야.'라고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는 우리 편이었고 나는 아빠 편이었다.
다른 집들이 우리 집과 같지 않다는 건 뒤늦게 알았다. 나는 아빠들은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딸이 부르면 어디로든 오고, 딸이 하자면 최선을 다해서 하고. 지금이야 다정한 아빠들이 많지만 내 또래 친구들의 아빠들은 아직 무뚝뚝함이 대세인 시대였다. 우리 아빠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빠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본가와 멀어지면서 아빠를 자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빠는 뭔가를 자주 보낸다. 내 직장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호두과자 한 박스를 훌쩍 보내고, 주식해서 돈 벌었다고 가끔 돈도 보낸다. 요새는 사람이 더 감성적이 되어서 단톡에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보낸다. 나는 간지러운 말에 인색한 사람이라 다른 딸들처럼 따스하게 답변을 길게는 못하지만.
최근 들어 아빠의 무릎이 좀 안 좋아졌다. 그래서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핑계는 엄마의 칠순이었다. 엄마는 칠순에 스위스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고, 아빠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타이틀은 엄마의 칠순 여행이지만, 속 내는 아빠의 첫 해외여행이다. 엄마 아빠 나와 동생. 과거 어느 시절 이후 이렇게 4명이 하는 여행은 귀하다. 그렇게나 해외여행을 가기 싫다고 했던 아빠도 결국 이번엔 딸 말을 들어주었다. 아니, 이번에도.
이상하게 아빠에 대해 쓰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항상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받는 만큼 줄 수 없다는 걸 아는 미안함, 그럼에도 무한하게 받는 사랑에 감사함,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섞여서 요동을 친다. 오늘도 그렇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짓인가. 그래서 급히 글을 마친다. 나중에 여행에 대해 쓰다 보면, 이어서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