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의 소통이란
"요새 우리 딸 짜증이 장난 아니야. 자기야, 수행평가 끝날 때까지 나도 잠 못 잔다."
부모인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식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다. 아이의 연령, 학령에 따라 주요 주제도 바뀐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오신 분들은 아이들이 툭하면 아파서 걱정이고, 초등학교부터는 아이들의 공부, 친구관계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그 이상이라면 이야기는 무조건 입시로 간다. 내 나이 빼박 40이 넘었으니, 내 나이 근방의 분들과 이야기하면 요샌 맨날 바뀌는 입시 제도, 아이들은 내신 따느라 힘듦, 그 와중에 돈 들어갈 데는 왜 이렇게 많니. 가 이야기의 대부분이다.
그러면 나는 들어준다. 사실 이제는 입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나마 조카들이 고등학생이 되니 친척들 모일 때 대충 말을 얹을 정도로만 이해한다. 자유도 없어지고, 힘드시겠어요. 요새 물가는 왜 이렇게 올랐는지. 나는 대체로 추임새와 리액션을 맡는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가끔 예의상 나의 근황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반갑다기보다는 오히려 당황스러울 때도 있을 정도다. 그들의 근황과 나의 근황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저는 요새 달리기 10km 목표로 해서 그거 연습하고, 테니스 랠리 하러 나갔는데 너무 안돼서 고민이에요.라고 하기에는 내 상황이 너무 꽃밭인 것 같지 않은가.
내가 20대에 40대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오히려 별생각 없이 사생활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주로 많이 했던 건 연애 이야기. 그분들도 나의 연애에 관심이 많았고, 나도 나의 연애에 관심이 많았다. 이따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닌지 대화 후에 후회도 했다.
원래 제일 재미있는 것이 남녀 상열지사. 그리고 무엇보다 20대와 40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공통 관심사가 연애. 판 깔고 deep talk를 할 것도 아닌데, 동료와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유대 관계를 높이기 위해 사생활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결국 연애와 자녀, 이야기의 굵은 줄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여기에서 딩크는 점점 주류에서 멀어져 간다. 이미 연애를 마치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보았으니 그릇된 관계를 가지겠다 결심하지 않는 이상 연애라는 주제에 머무를 수 없다. 게다가 자녀라는 과업을 포기해 버렸으니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 무지하다. 자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녀가 가장 큰 관심사이자 인생의 목표일지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그걸 내 과업으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주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관심 없다, 별로다 표현할 수는 없다. small talk에서는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 주류 주제를 먼저 말할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누가 먼저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는 건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나를 감정의 쓰레기통 정도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small talk를 통해 내가 모르던 세상을 알 수도 있다. 나는 그 일을 하지도 않을 거니 관심도 없다.라고 살아간다면 결국엔 소통 불가인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 모든 일들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세상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 된다. 내가 속세에서 벗어나 구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의 주제를 다른 사람들이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나름 흥미롭게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 적당한 선에서라면, 결국 이것도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