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드 구역에서 나는 대략 일 년 반 정도 살았다. 어느 날, 여름이었다, 나는 450 프랑만이 남겨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 외에는 영어 과외를 해주고 1 주일에 벌 수 있는 36프랑이 전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직장을 찾아 보기로 결정했다. -아주 운이 좋게도, 잘 된 일이 되었다- 나는 예방차원에서 200 프랑을 한 달치 집세로 지불했다. 영어 과외로 버는 돈을 제외하고, 남은 200 프랑으로 한 달은 살 수 있었기에 한 달안에 일감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여행 회사의 가이드나, 통역 자리를 노렸다. 하지만 한 조각의 불행이 이를 가로막았다.
어느 날 이탈리아 청년이 호텔에 나타났는데 그는 스스로를 인쇄공이라 칭했다. 그는 정말 애매한 사람이었다,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는데, 지성인 아니면 깡패의 특징이다, 어느 쪽 부류에 넣어야 할지 확실치 않았다. 마담 F는 그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치 방세를 선불하도록 했다. 그 이탈리아인은 선불을 내고 육일 간 호텔에 머물렀다. 그가 머무는 동안 그는 몇 개의 열쇠들을 복사했고, 마지막 날 밤에는 여러 방을 털었다, 내방을 포함해서 말이다. 운이 좋게도 그는 내 주머니들에 있던 돈은 찾지 못했기에 나는 완벽한 빈털터리가 되지는 않았다. 47프랑이 남겨졌다, 그리고 - 7 그리고 10펜스도 남았다.
이 사건이 내 구직계획에 종지부를 찍어 버렸다. 나는 약 6프랑으로 하루를 살아야만 했다. 다른 것들을 위한 생각을 남겨두는 건 시작부터 어려웠다. 이렇게 내 빈곤의 경험이 시작되었다. 하루 6프랑, 진짜 빈곤이라 할 수는 없더라도, 빈곤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6 프랑은 1 실링 정도 된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만 알면 파리에선 1 실링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복잡한 일이다.
빈곤과의 첫 번째 만남은 진실로 난감하다. 가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을 것이다- 누군가는 일생동안 무서워해봤을 것이고, 언젠가는 닥친다는 걸 이미 알 수도 있다, 그리고, 예상과는 천지차이로 다르다. 가난하게 사는 건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복잡하다. 끔찍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렇지 않고 단순히 지저분하고 지루할 뿐이다. 처음에는 가난의 기묘한 비루함을 발견한다. 변화들은 복잡하게 쪼잔하고 빵 까루를 긁어모으게 한다.
무엇을 발견하냐면, 예를 들어, 가난에 붙어있는 비밀을 발견한다. 갑작스러운 타격에 하루 생활비가 6 프랑으로 떨어지게 된다. 당연히, 감히 인정해서는 안 된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는 척을 해야만 한다. 가난은 시작부터 감당조차 안 되는 거짓이라는 그물에 얽히게 만든다. 세탁물을 세탁소에 보내기를 멈추게 된다, 거리에서 마주친 세탁소 여주인은 이유를 묻는다. 말을 얼버부리면, 세탁소 여인은 다른 세탁소에 세탁물을 보낸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제 나는 평생의 적이 된다. 담배가게 주인은 왜 담배를 줄였냐고 계속 물어본다. 답장을 하고 싶은 편지가 있지만 답장을 못 한다 우표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음식이야 말로 모든 곤란한 것 중 최악이다. 매일 식사시간마다 밖으로 나간다, 겉보기엔 식당에 가는 거다, 그러고는 룩셈버그 공원에서 비둘기를 보며 한 시간 동안 빈둥거린다.
그 뒤 음식을 주머니에 숨겨 집으로 돌아온다. 음식은 보통 빵과 마가린 아니면 빵과 와인이다, 음식의 종류 조차도 거짓말로 관리된다. 보통 식빵 대신에 호밀빵을 사야 되는데, 호밀빵은, 더 소중하기도 하나, 덩이가 둥근 모양 덕에 주머니에 잘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체면치레를 위해 60 상팀을 술에도 써야 한다, 술값에 상응하는 만큼 음식은 줄어든다. 속옷은 더러워지고 비누와 면도날도 바닥이 난다. 머리를 잘라야 해서, 직접 자르지만 결과가 너무 처참해 결국 이발소를 가게 된다, 거기에 하루치 식사를 위한 돈을 쓴다. 하루 종일 거짓말을 하고 있게 된다, 비싼 거짓말들이다.
하루 6프랑의 극심한 불안함을 발견한다. 심술궂은 재앙이 일어나 음식을 강탈해 간다. 마지막 남은 80 상팀을 반리터의 우유에 썼다, 알코올램프에 올리고는 우유를 끓이는 중이다. 끓이는 와중에 벌레 한 마리가 팔에 와서 붙는다, 손끝으로 튕겨낸다, 벌레는 퐁! 우유 속으로 곧바로 빠진다. 우유를 버리고 굶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1파운드의 빵을 사러 빵집에 간다, 여주인이 다른 손님에게 빵을 잘라주는 동안 당신은 뒤에서 기다린다. 그녀는 매우 어설퍼서, 1파운드보다 더 많이 자른다. "손님, 죄송합니다.' 그녀가 묻는다, '두 푼 정도 더 내시는데 문제가 없으시겠지요?' 빵은 1파운드에 1프랑이다, 정확히 1프랑을 가지고 있다. 두 푼 정도 더 낼 수 있냐는 질문을 나도 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럴 수 없다고 고백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면, 당황하며 달아난다. 감히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다시 빵가게로 들어가기 전까진 몇 시간이나 된다.
1 킬로에 1 파운드 하는 감자를 사기 위해 야채가게에 간다. 하지만 동전 중에 하나가 벨기에 동전이다, 점원은 동전을 거절한다. 가게를 조용히 빠져나와 다시는 절대 그곳에는 못 가게 된다.
길을 잘 못 들어 잘 사는 동네에 들어서게 되고, 잘 사는 친구가 다가오는 것을 본다. 그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게 된다. 카페에 들어선 이상 무언가를 사야만 한다, 결국 죽은 파리가 들어간 블랙커피를 위해 마지막 50상팀을 쓰게 된다. 한 번의 재앙들이 백번 곱해지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이 쪼들려 가는 과정들이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마가린과 빵으로 찬 배를 가지고 거리로 나가 가게들의 창안을 들여다본다. 어딜 가나 막대한 양으로 쌓인 남아도는 음식들이 조롱을 해온다. 죽은 돼지의 몸뚱이, 뜨거운 빵으로 찬 소쿠리, 샛노란 사각 버터 덩어리들, 주렁주렁 달린 소시지들, 감자로 이루어진 산, 맷돌처럼 거대한 그루예레 치즈. 많은 음식을 보고 있자면 훌쩍거리며 보채는 자기연민이 든다.
가난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지루함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할 게 없고, 배를 곯고 있는 시간은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지 않게 만든다. 반나절은 침대에 누워있으면, 보들레어의 시에 나오는 준 스퀘테 같은 기분이 든다. 오직 음식만이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다. 빵과 마가린만으로 일주일을 지냈던 남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단지 액세서리 같은 몇 개의 내장만 가진 배라는 걸 발견한다.
이게 - 다른 누군가는 더 자세히 묘사할 수 있겠으나, 전부 비슷할 것이다.-하루 6프랑의 삶이다.- 파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모든 종류의 열심히 사는 예술가, 학생 그리고 행운이 다한 창녀들 , 직장을 잃은 모든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빈곤의, 원래 그랬었듯, 외각지역이다.
나는 약 3주 동안 이런 방식을 이어갔다. 47프랑은 금방 사라졌고 영어 과외로 일주일에 버는 36프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했다. 경험 부족으로, 나는 돈 관리를 나쁘게 했고, 어떤 날은 음식이 없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내 옷가지를 내다 팔고는 했는데, 조그만 가방에 숨겨 호텔에서 몰래 가지고 나와 성 제니베 몽타녜 거리에 있는 중고가게로 가지고 갔다. 점원은 빨간 머리의 유태인이었는데, 그다지 지독히 무례한 남자였고, 손님 면전에 불같이 화를 내고는 했다. 그의 태도를 보면, 가게에 들어간 것으로 그에게 상처라도 입혔나 하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었다. "젠장!" 그는 소리를 치곤 했다, "또 당신이야? 여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무료 급식소야?" 그리고 엄청나게 낮은 가격을 치러줬다. 25실링을 주고 산 내 얼마 쓰지도 않은 모자에 5프랑을 쳐줬고 괜찮은 구두 한 켤레에는 5프랑, 셔츠는 각 1프랑을 줬다. 그는 언제나 물건을 사기 보단 교환하기를 선호했다. 쓸데도 없는 물건을 뽐내며 손님의 손에 쥐어주고는 그 사람이 허락한 것처럼 해버렸다. 한 번은 어떤 할머니에게 괜찮은 코트를 받고선, 흰색 당구공 두 알을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그러고는 할머니가 저항하기 전에 가게 밖으로 재빠르게 몰아내버렸다. 이 유태인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할 수만 있었다면 말이다.
지난 3 주는 불편하고 즐겁지 못했다, 명확하게도 더 나쁜 일이 찾아오고 있었다, 긴 시간을 지나 방 값을 지불해야 할 날이 온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상황이 내가 예상한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가난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어떤 무엇들보다 더 대단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지루함, 기가 막힌 문제들 그리고 배고픔의 시작을 발견하지만, 다른 결점을 보충해줄 대단한 가난의 장점도 발견하게 된다. 미래를 완벽하게 파괴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어느 선까지는, 실제로 돈이 적을수록 걱정도 덜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세상 속에서 백 프랑을 가지고 있을 때는 정말 비겁해지기 쉽다. 하지만 단지 3프랑 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3프랑으로 내일은 먹을 수 있다, 거기까지만 생각한다. 따분하긴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애매모호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일이나 모레 즘에는 굶주릴 수도 있겠는데 - 큰일인데, 그렇지 않나?' 그러고는 다른 주제들로 생각이 옮겨간다. 빵 한 덩이와 마가린 식단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만의 진통제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은 빈곤 속의 위안이다. 돈에 쪼들려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라 믿는다. 안도감이 든다, 거의 기쁨에 가까운데, 자신이 진정으로 빈털터리가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얻는 것이다. 개들이랑 말하고 싶어 한다고 말해 왔었다, 그리고 뭐, 여기 개가 있다, 개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기다린다. 모든 고민이 날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