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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어느 날 내 영어 과외가 갑작스레 중단됐다. 날씨는 더워지고 있었고 학생 중 한 명이, 수업을 하기엔 너무 귀찮다고 나를 해고했다. 12프랑이 밀려있는 다른 한 명은 숙소에서 아무 통지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에겐 30 상팀만이 남겨져 있었고 담배도 없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할 것도 필 것도 없었고, 배가 너무 고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남은 옷가지를 여행가방에 쟁여 넣고 전당포로 가져갔다. 이는 윤택한 척한 나의 가식을 끝나게 했다, 마담 F에게 묻지 않고는 옷들을 호텔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은밀히 옷들을 빼돌리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을 때 크게 놀라던 그녀가 기억이 난다, 야반도주는 이 구역에서 일상다반사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의 전당포를 찾은 건 처음이었다. 벽돌로 된 웅장한 정문을 통과해서, (물론, '자유, 평등, 박애'라고 새겨져 있다, 프랑스 경찰서 위에도 똑같이 쓰여있다) 고등학교 교실처럼 크고 텅 빈 방으로 들어갔고 계산대와 몇 줄의 벤치가 있었다. 40에서 50명 정도가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담보물을 계산대 너머로 넘기고 앉는다. 점원이 물건을 감정한 후 호출을 한다, '번호 몇 번 몇 번, 50 프랑을 받으시겠습니까?' 어떤 물건이든 가끔은 가격이 15 프랑, 아니면 10 프랑, 아니면 5프랑 밖에 하지 않는다- 모든 방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점원은 모욕적인 태도로 호명했다, 83번- 여기!' 휘파람 소리와 함께 손짓했다, 마치 개를 부르는 것처럼. 83번은 계산대로 다가갔다,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목까지 단추를 채운 외투와 단이 닳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점원은 아무 말도 없이 꾸러미를 계산대 너머로 던져버렸다 - 보기에도 아무 가치가 없던 것들이었다. 바닥에 떨어지자 꾸러미가 풀렸다, 남성용 모직 바지 네 개가 드러났다. 누구도 웃음을 참지 못 했다. 가엾은 83번은 바지를 주워 모으고 비틀거리며 나갔다,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말이다.


내가 담보 잡히려는 옷들은, 여행 가방 포함해서, 20 파운드 정도 했었고, 상태도 괜찮았다. 10 파운드 정도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분명 10 파운드의 가치는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전당포에서는 대부분 사분의 일 가격을 예상한다) 프랑스 돈으로 치면 사분의 일은 250 또는 300 프랑 정도였다. 큰 걱정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200 프랑은 예상하고 있었다.


마침내 점원이 내 번호를 불렀다: '97번!'


'네'.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70 프랑?'


10파운드 가치의 옷에 70 프랑이라니! 하지만 반박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반박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점원은 그 사람에게 저당금을 바로 거절해 버렸다. 돈과 저당표를 들고 나왔다. 이제 외투 안에-팔꿈치가 심하게 헤져 있었다- 입고 있는 옷 말고는 , 담보 잡힐 만한 건 여분의 셔츠 한 장뿐이었다. 후에, 이미 늦었었지만, 전당포에는 오후에 가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배웠다. 점원들은 프랑스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듯,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기분이 언짢아 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마담 F는 식당의 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와 나를 만났다. 내 방세를 걱정하고 있음을 그녀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저, '그녀가 말했다, '옷으로 얼마나 받았어요?'얼마 안 되겠지? 응?'


'200프랑입니다, ' 바로 말했다.


'괜찮네!' 놀란 그녀가 말했다; '그거 나쁘지 않네. 분명 비싼 영국 옷들이었나 보네!'


그 거짓말은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게도 해줬고, 충분히 기묘하게도. 사실이 되어버렸다. 며 칠 뒤 뉴스 기사 덕분에 정확히 200 프랑을 받게 되었다, 쓰리긴 했지만,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방세를 냈다. 다음 주에 굶게 될 처지였지만, 지붕이 없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진짜로 일을 찾아야 될 때가 되었다, 친구 중 한 명이 기억이 났다, 보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웨이터였는데,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 병원의 병동에서 처음 그를 만났는데 그는 그곳에서 왼쪽 다리의 관절염을 치료받고 있었다. 그는 내가 곤란한 상황에 있을 때 찾아오라고 말했었다.


보리스가 가진 이상한 기질과 나의 오랜 기간 가까운 친구라는 점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는 35세 정도의 덩치 큰 군인다운 남자였다, 그리고 잘 생긴 외모였었다, 하지만 병에 걸린 후로 침대에만 누워 있으며 엄청나게 살이 쪄버렸다. 다른 러시아 망명자들처럼 그는 흥미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의 부모는, 혁명 중 살해당했다, 부자였었다. 그리고 그는 제 2 시베리아 소총 연대에 복무하며 전쟁을 치렀다, 그의 말로는, 러시아 군대에서 최고의 연대라고 했다. 전쟁 이후 처음으로 빗자루 공장에서 일을 했고, 하예스에서 짐꾼이 되었고, 접시 딱기가 되었으며, 결국 웨이터로 승진하게 된다. 그가 병으로 누웠을 때는 호텔 스크라이브에 있었는데, 하루에 팁으로만 100프랑을 받았었다. 그의 야망은 호텔의 책임자가 되어, 몇 천 프랑을 모으고, 라이트 뱅크 거리에서 작지만 고급의 식당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보리스는 전쟁에 대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언제나 말했었다. 군생활과 전쟁은 그의 열정이었다.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전략과 전쟁사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는 나폴레옹, 쿠투조프, 클라우세비츠, 몰케 그리고 포흐에 관한 이론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도 있었다. 군인과 관련된 모든 건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카페는 몽파나르세에 있는 글로세리 데 릴라스 였는데, 단순히 네이 원수의 동상이 밖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보리스와 나는 커머스 거리에 종종 함께 가고는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는, 커머스 역 대신에 캄브론역에서 내렸다, 커머스 역이 더 가깝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캄브론 장군과 관련된 것들을 좋아했다, 장군은 워털루에서 항복을 요구받을 때 그저 '개똥 같은 소리!'라고 답했다고 한다.


혁명이 그에게 남긴 거라고는 단지 훈장들과 그의 연대 사진들 뿐이었다, 모든 다른 물건들이 전당포로 향했을 때 이것들만은 지니고 있었다. 거의 매일 그는 사진들을 침대 위에 흩뿌려 놓고는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보게, 나의 친구. 맨 앞줄에 있는 내가 보이지, 괜찮은 남자야, 그렇지? 생쥐 같은 프랑스 놈들이랑은 다르지. 20 살에 대위라- 나쁘지 않아, 그렇지? 그래, 제 2 시베리안 보병 연대의 대위; 내 아버지는 대령이셨지.


'아, 그렇지만 말이야, 친구, 인생의 기복이란! 러시아 군대의 대위였는데 후! 혁명 다음에 땡전 한 푼 없다니. 1916년에는 호텔 에두아루드 셉에 머물렀지; 1920년에는 거기서 야간 경비원 자리를 찾는 중이었었네. 경비원, 창고지기, 바닥 청소부, 접시 딱기, 짐꾼, 화장실 청소부로 지냈지. 웨이터에게 팁을 주다가, 웨이터에게 팁을 받게 됐네.


'아, 하지만 나는 신사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지, 친구, 자랑하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하루는 내 인생에 몇 명의 연인이 있었나 계산해 봤지, 200명 이상과 사랑을 나눴더군. 그래, 최소 200명 이야... 아, 그래, 언젠간 돌아올 거야, '승리는 끝까지 싸운 사람의 것이야. 용기를 내야 해! 이런 식이었다.


보리스는 기묘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이었다. 그는 언제나 군대로 돌아가길 바랐었다, 하지만 역시 웨이터의 모양새를 갖출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웨이터로 지내왔다. 그는 단 한 번도 몇 천 프랑 이상을 모아 본 적이 없지만, 그가 결국엔 식당을 시작하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믿고 있었다. 모든 웨이터들은, 후에 알게 됐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심이 그들이 웨이터로 지내는 것을 받아 들 수 있게 해줬다. 보리스는 호텔의 삶에 대해 흥미 지게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기다림은 하나의 도박이야.'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빈곤하게 죽던가, 일 년 안에 부를 만들 수도 있지. 월급을 받지는 않아, 팁에 기대야만 돼- 계산서의 십 퍼센트나 샴페인 코르크 마개마다 얻는 와인 회사의 수수료 말일세. 가끔은 팁이 엄청나게 대단하지. 맥심의 바텐더 같은 경우, 하루에 500 프랑을 벌었어, 한 창 때는 말이야... 나는 하루에 200 프랑을 벌어봤지. 비아리츠 호텔이었어, 한 창 때 말이야. 전체 직원, 관리인부터 말단 직원까지 하루에 21시간을 일했어, 21 시간을 일하고 두 시간 반은 침대에 누웠지, 한 달 동안 그렇게 계속했어. 그래도 할 만한 가치가 있었지 하루에 200 프랑을 번다면 말이야.


'행운의 한방이 언제 찾아 올진 절대 모르는 일이야. 한 번은 로열 호텔에 있었을 때지 한 미국 손님이 나를 부르더군 저녁 전에 말이야 그러고는 24 잔의 브랜디 칵테일을 시켰어. '자, 이봐.' 손님이 말했지, (그는 취해있었네), 내가 열두 잔을 마시고 자네가 열두 잔을 마시게, 그러고도 걸어서 밖으로 나가면 100 프랑을 받게 될 걸세.' 난 문으로 걸어갔고, 그는 나에게 100 프랑을 주었어. 6일 밤 동안 그는 똑같은 짓을 했다네; 열두 잔의 칵테일, 그리고 100 프랑. 그렇게 몇 달 뒤 그가 미국 정부에 인도되었다고 들었지.-횡령이었다나. 미국 사람들은 말이야 특별힌 괜찮은 뭔가가 있어, 그렇지 않나?


난 보리스가 좋았다, 체스를 두기도 하고 전쟁과 호텔에 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재밌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보리스는 자주 내가 웨이터가 되라고 권하고는 했었다. '그 삶이 자네한테 맞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자네가 일을 시작하면 하루에 백 프랑은 벌고 괜찮은 연인도 생기고 나쁘지 않은 거라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 글 쓰는 건 허튼소리야. 글을 써서 돈 버는 법은 딱 하나가 있지, 출판사 사장 딸이랑 결혼하는 거야. 하지만 자넨 좋은 웨이터가 될 수 있어 그 콧수염만 밀어버리면 말이야. 키도 크고 영어도 하지 않나-그런 게 웨이터들이 필요로 하는 최고의 미덕들이야. 내가 이 빌어먹을 다리를 구부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게, 친구, 언제라도 직장을 잃으면, 나에게 찾아오게.'


이제는 방세가 부족해졌다, 게다가 배도 고파지고 있었다. 보리스의 약속이 기억이 났다, 바로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가 약속한 것처럼 쉽게 웨이터가 될 거라 희망하진 않았다, 하지만 주방에서 접시 정도는 닦을 수 있다, 그가 주방에 한자리 얻어줄 수 있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여름 동안에는 묻기만 해도 접시닦이 자리는 얻을 수 있다고 그가 말했었다. 의지 할 만한 영향력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기억나니 크게 안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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