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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Sep 28. 2017

27

6시 15분쯤 아일랜드인은 나를 수용소로 데리고 갔다. 건물은 구빈소 구내 한 편에 있었는데, 음침해 보이는, 빛바랜 노란색의 벽돌로 된 정육면체 건물이었다. 창살로 막힌 창문들이 줄지었고, 높은 벽과 철문이 도로로부터 건물을 격리시켰다, 감옥과 매우 비슷해 보였다.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나이 때가 있었다, 앳되보이는 소년은 16살이었고, 가장 늙은 사람은, 이빨 빠진 미라 같은 75세의 남자였다. 몇 명은 부랑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었다, 씻지 않아 새까매진 얼굴, 지팡이와 작은 주전자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몇몇은 공장 노동자이거나, 농업 노동자들이었고, 한 명은 옷깃이 있는 옷에 넥타이를 맨 사무원이었으며, 두 명은 분명 정박아들이었다. 전체로 보면, 그곳에 서서 노닥거리며 쉬고 있는 그들은, 하나의 혐오스러운 광경이었다. 위험하거나 악랄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볼품도 없고 초라한, 거의 다 해진 옷에 사람들은 못 먹은 티가 확연했다. 그들은 친절했다, 그렇지만, 어떤 질문도 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권-그게, 꽁초들이긴 했지만. 


우리는 담장에 기대어 담배를 태웠다, 부랑자들은 자신들이 최근에 갔던 수용소들에 관해 떠들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모든 수용소들은 다른 듯했고, 각 수용소는 괴상한 장점과 단점을 가진 듯했다, 이는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영국에 있는 모든 수용소의 특색을 읊어 줄 수 있다, 어떤 거냐면 , A에서는 흡연이 허락되지만 방 안에 벌레가 있다, B는 침대가 편하지만 문지기가 고약하다, C는 아침 일찍 들여보내 주지만 사람이 마실 수 없는 차를 준다. D에서는 한 푼의 돈이라도 있다면 관리인들이 훔쳐간다- 등 등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한쪽 수용소에서 다른 수용소로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는 부랑자들이 내놓은 경로가 있다. 듣기로는 바넷 성 알반스 경로가 최고라고 했고, 빌러리키과 쳄스포드 그리고 켄트의 아이드 힐은 피하라고 했다. 첼시는 가장 호화스러운 수용소로 정평 나있었다. 어떤 사람은, 첼시 수용소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으며, 그곳의 담요는 수용소의 담요와는 달리 교도소의 담요에 더 가깝다고 했다. 부랑자들은 여름이 오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갔고, 겨울이 되면 가능한 한, 더 따뜻하고 자선행사가 많은, 큰 마을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한 수용소에서, 런던에서는 한 개 또는 두 수용소,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머물 수 없었기에, 일주일을 갖혀지내기 위해선, 그들은 계속 이동해야만 한다.


여섯 시가 넘자 철문이 열렸고 우리는 줄을 지어 차례로 입장을 시작했다. 마당에는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의 이름과 직업, 나이 게다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까지 직원이 장부에 기입하고 있었다-부랑자들의 이동을 확인하려는 의도에 때문이었다. 나는 내 직업을 '화가'로 대었다. 일전에 수채화를 그려 본 적이 있다-안 그려 본 사람이 있을까? 직원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물었고, 모두 없다고 대답했다. 8펜스 이상을 들고 수용소에 들어가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만약 그 이상이 있다면 정문에서 넘겨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부랑자들은, 소리가 나지 않게 동전을 헝겊 오라기에 꽉 매어서는, 몰래 가지고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모든 부랑자들은 가지고 다니는 홍차 가방이나 설탕 가방 속에 돈을 넣거나, 그들이 들고 다니는 '신문' 속에 감춘다. '신문'은 신성시되기에 절대 검색을 받지 않는다. 


신고가 끝이 나고 우리는 부랑자 대장(그의 임무는 일용직 감시이고, 대개 구빈소의 극빈자였다)으로 알려진 사람과 푸른색 정복을 입은, 고함을 지르며 우리를 소떼처럼 다루는 악당 같은, 문지기의 지도에 따라 수용소로 이동했다. 수용소는 화장실과 욕실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제외한 전부는, 양 쪽으로 줄지어 이어진 돌로 된 방들 뿐이었는데, 총 백개 정도 되었다. 돌로 된 우울한, 텅 빈 공간은,  대충 닦은 듯한 백색 도료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냄새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겉모습을 보고 판단을 했었는데, 녹색 비누, 표백제 그리고 변소 냄새가 섞여 있는 듯했다- 사람을 비의욕적으로 만드는 이 냉랭한 냄새는, 감옥의 냄새 같았다.


문지기는 우리 모두를 통로로 몰아넣고는, 한 번에 여섯 명씩 욕실로 오라고 명령했다, 씻기 전에 몸수색을 당해했다. 몸수색은 담배와 돈을 찾기 위함이었다, 롬튼 수용소는 담배를 숨겨 들어가기만 하면 담배를 필 수 있는 곳 중 하나였지만, 발각되면 모두 압수를 당했다. 이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일러주기를 문지기는 절대 무릎 밑으로는 수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우리는 욕실로 들어가기 전 신고 있던 부츠 발목에 담배를 감추었다. 그 뒤에, 옷을 벗을 때, 재빠르게 외투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외투는 지닐 수 있게 허락되었는데, 베개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욕실의 광경은 심하게 구역질이 났다. 50명의 더러운 남자들이, 두 개의 욕조와 끈적끈적한 돌아가는 두 개의 공용 목욕수건뿐인 그 비좁은 공간에서, 완전한 나체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지독한 발 냄새를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실상 절반도 안 되는 부랑자만이 목욕을 했다(뜨거운 물이 그들의 '면역성'을 약화시킨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을 감싸는 지독히도 기름진 발가락 감싸개 헝겊과 얼굴 그리고 발은 전부 씻었다. 깨끗한 물은 욕조 하나를 완전히 차지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발을 씻은 물로 목욕을 해야 했다. 문지기는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밀쳤고, 누군가 굼뜨기라도 하면 야단을 쳤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사용하기 전, 때로 뒤덮인 욕조를 한 번 닦아 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딱 잘라 대답해 주었다, '닥치고- 씻기나 해!' 그의 태도는 수용소의 분위기를 알게 해주었고, 나는 다시 묻지 않았다. 


우리가 목욕을 끝내자, 문지기는 우리들의 옷을 한 꾸러미로 묶고는 구빈소 옷을 나누어 주었다-회색면으로 된, 긴 잠옷을 짤막하게 만든 것 같았고, 세탁을 했는지도 불확실했다. 우리는 단번에 방으로 보내졌고, 곧이어 문지기와 부랑자 대장이 건너편의 구빈소에서  간소한 저녁을 가지고 왔다. 각 사람의 배급량은 마가린이 발린 반 킬로그램의 빵 한 조각과 양철 주전자에 담긴 맥주 한 잔 양의 설탕 빠진 코코아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오분만에 게걸스레 먹어치워 버렸고, 일곱 시가 되자 방들의 문은 밖에서 잠겼다, 다음 날 아침 여덟 시까지는 열리지 않았다. 


각 방 하나에 두 명이 자게끔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머물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혼자 온 다른 남자와 함께 방에 배정되었다, 깡마르고 볼품없는 얼굴에 약간은 사시끼가 있었다. 돌로 된, 이 방의 크기는 딱 두 명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고, 창살이 쳐진 조그마한 창문은 벽 높은 곳에, 작은 구멍은 문에 하나 있었다, 감옥과 다른 게 없었다. 방안에는 여섯 장의 담요, 요강 하나, 온수관, 이것들이 전부였다. 나는 무언가 부족한 듯해서 애매한 기분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놀람과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이 없는지 인식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근데, 제기랄, 침대는 어딨지?'


'침대?' 놀랐다는 듯이, 함께 있던 남자가 돼 물었다. '침대 따위는 없어! 뭘 기대한 거야? 여긴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자는 수용소 중 하나라고. 아직도 적응이 안됐나?'


수용소에 침대가 없는 일은 놀랄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외투를 말아 온수관 쪽에 두고,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더럽게 답답했지만, 모든 담요를 바닥에 깔 정도로 따뜻하지는 않았기에, 바닥을 푹신하게 만들기 위한 담요는 한 장 밖에 쓰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숨을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붙어 누웠다, 맨 살의 팔과 다리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잠이 들라치면 하면 다른 사람 쪽으로 몸을 굴렸다. 좌우로 몸을 뒤척여 보아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쪽으로 몸을 돌리면 처음에는 몸이 배겼고, 그러다 바닥의 딱딱함이 주는 날카로운 고통이 담요를 뚫고 올라왔다. 잠을 잘 수는 있었다, 하지만 10분을 넘기진 못했다. 


자정즘에는 같이 잠을 자는 남자가 내게 동성애적 행동을 시도했다-칠흑같이 어두운, 문이 잠긴 방에서 겪은 고약한 경험이었다. 남자는 매우 허약했기에, 나는 아주 쉽게 그를 제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둘 다 잠을 다시 청하기는 불가능했다. 남은 밤 동안 우리는 잠을 자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기술자였지만, 3년 전 실직을 했다. 아내는 그가 직장을 잃자마자 바로 그를 버렸고, 그 뒤로 여자가 어떤지도 잊어버릴 만큼 여자로부터 떨어져 지내 왔다고 한다. 긴 세월의 부랑자들 사이에서는 동성애가 흔하다고, 그가 말했다. 


여덟 시가 되자 문지기는 복도를 따라 문을 열어주며 '모두 나와!'라고 외쳤다, 문이 열리자, 퀴퀴한 악취가 진동하며 빠져나갔다. 복도는 단번에, 각 손마다 요강을 든, 지저분한 회색 형체들로 가득 찼고, 욕실로 가기 위해 서로를 밀치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에는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조 하나에 담긴 물만이 허락되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무 명의 부랑자들이 세수를 한 뒤였고, 물 위에 뜬 검은 거품을 힐끔 보고, 씻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이 뒤에 어제저녁과 정확히 똑같은 식사가 나왔다, 우리들은 옷을 되돌려 받고 나서, 마당으로 나가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은 극빈자들의 저녁에 쓰일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었지만, 우리를 진찰할 의사가 올 때까지 붙잡아 두려는, 단순한 형식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부랑자들은 대충대충 했다. 열시즘이 되어 의사가 나타났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옷을 벗고 복도에서 검사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알몸으로, 몸을 떨며, 복도에 일렬로 섰다. 한 없이 위축되고, 피폐한 똥개마냥, 자비라고는 없는 아침 태양빛 아래 서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게다. 부랑자들의 옷들은 상태가 나쁘다,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들은 감추어 준다, 이들의 상태를 진정으로 보기 위해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 헐벗은 그들을 봐야만 한다. 평발, 툭 튀어나온 배, 움푹 꺼진 가슴, 처진 근육-모든 종류의 망가져 부패한 육체들이 그곳에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몇몇은 한눈에 봐도 질병을 앓았으며, 두 명의 남자는 탈장 대도 차고 있었다, 75세의 미라같이 생긴 노인에 대해 말해 보자면, 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걷는 게 가능했는지 경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면, 면도도 하지 않고 밤잠을 설쳐 극도로 지쳐 보였는데, 일주일 동안 술에 절어 있다 깨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검사는 천연두만을 찾고자 했기에, 전반적인 상태는 무시했다. 젊은 의학도는, 담배를 입에 물고, 빠른 걸음으로 줄을 따라 걸으며 우리들의 위아래를 훑었다, 누가 어디가 아픈지 괜찮은지는 묻지도 않았다. 나와 같이 방을 쓴 남자가 옷을 벗을 때, 그의 가슴을 뒤덮은 붉은 발진이 보였다, 나는 그의 옆에 딱 붙어서 하룻밤을 보냈기에, 혹여 천연두는 아닌가 싶어 무서웠다. 그러나, 의사는, 발진을 검사하고 그저 영양실조 때문이라 했다.


검사를 마친 우리는 옷을 입고 마당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문지기가 우리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사무실에 맡겨둔 소지품들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식권을 나눠주었다. 식권은 장당 6펜스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어제 이야기했던 부랑자들의 경로에 위치한 커피숍들이 적혀 있었다. 다수의 부랑자들이 문맹이라는 것과, 나와 다른 '배운 사람들'이 지원하여 그들의 식권을 해독해 준건 꽤나 흥미로웠다. 


정문이 열렸고, 그 즉시 우리들은 흩어졌다. 수용자 신세와 똥보다 못 한 악취로 절은 수용소 후에 맡은 공기는-촌구석 뒷골목의 공기마저도 달콤했다- 어찌 그리 달콤하던지! 이제는 동료도 있었다, 감자 껍질을 벗기는 동안 패디 자크라는 아일랜드인과 친구를 맺었는데, 창백하고 우울한 얼굴의 그는 깔끔하고 예의 있어 보였다. 그는 에드버리 수용소에 가려던 참이었고, 함께 가지 않겠냐며 제안했다. 우리는 출발했다, 오후 세시까지 도착할 요량이었다. 12마일 거리였지만, 런던 북쪽 어느 황량한 빈민가에서 길을 잃어 14마일을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식권은 일포드에 있는 한 커피숍을 지명하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자, 이 건방진 직원 계집은, 식권을 보고 우리가 부랑자임을 파악하자, 경멸하는 태도로 고개를 홱 돌리고 긴 시간 주문을 받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큰 차' 두 잔과 빵 네 조각 그리고 기름을 식탁 위에 던져 놓았다- 이 정도면, 8펜스어치 하는 음식이었다. 이런 가게들은 상습적으로 각 식권에서 2펜스씩 등쳐먹었다. 돈이 아닌 식권을 들고 있는 이상, 부랑자들은 반발할 수도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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