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호 Oct 04. 2017

29

 

에드버리로 가는 길에 나에게 얻어 낼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수용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보다 런던으로 바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패디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패디는 근래에 에드버리 수용소에 가지 않았었고, 역시 부랑자였던지라, 수용소의 무료 숙박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에겐 반 페니 밖에 없었지만, 패디에게는 2실링이 있었다, 우리에게 침대와 몇 잔의 차를 안겨 줄 수 있는 돈이었다. 


에드버리 수용소는 롬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안 좋은 점은 입구에서 담배를 몰 수 당하고, 흡연 시 적발당하면 즉각 퇴소당한다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부랑자 법률에 따라 수용소에서 흡연을 적발당한 부랑자는 고소당할 수 있다- 사실, 부랑자들은 거의 어떤 죄목으로도 고소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용소는 보통 반항적인 부랑자들을 퇴소시키고 고소를 하는 골칫거리를 피한다. 할 일은 없었고, 방은 그럭저럭 편안했다. 한 방에 두 명이 잠을 잤는데, '한 명은 위, 한 명은 밑'인데- 설명해 보자면, 한 명은 선반 위에서 자고 한 명은 짚으로 만든 돗자리에서, 더러웠지만 해충은 없었다, 많은 양의 담요를 깔고 자야 했다. 코코아 대신에 차를 받은 것 말고는, 음식은 롬튼의 것과 똑같았다. 아침에는 추가로 차를 마실 수 있었는데, 부랑자 대장이 반 페니에 차 한 잔을 팔았다, 말할 것도 없이 불법이었다. 부랑자들은 점심에 먹으라며 주는 빵 한 덩이와 치즈를 나눠 받았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싸구려 여인숙이 열 때까지 8시간을 죽쳐야만 했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인지 못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런던을 무수히 다녀 본 사람이다, 하지만 그 날까지 런던의 비상식적인 일들에 대해 한 번도 인지했던 적이 없었다-실상 런던에서는 앉으려고만 해도 돈이 든다. 파리에서는, 돈도 없고 거리에서 긴 의자를 찾을 수 없다면, 바닥에 앉으면 된다. 런던에서는 거리에 나앉으면 어딘가로 안내받을 수 있음을 그 누가 어찌 알았겠는가-감옥이다, 감옥으로 안내가 될 수 있다. 네시가 될 때까지 다섯 시간을 서 있었고, 우리들의 발은, 바닥의 딱딱함 덕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배도 고팠다, 받아 든 배급은 수용소를 나오자마자 먹어치웠고, 게다가 나는 담배도 없었다-바닥 꽁초를 줍는, 패디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두 교회를 들렸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공공도서관에 갔지만 자리가 없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로튼 하우스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패디가 제안했다. 일곱 시까지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안 걸리고 슬쩍 들어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장대한 정문 앞으로 갔다(로튼 하우스는 정말로 웅장하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일반적인 숙박객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정문에서 느긋하게 있던 사람이, 날카로운 얼굴에, 관리자 정도 같았다,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 


'어제 여기서 주무셨습니까?' 


'아니요.'


'그럼 꺼져.' 


우리는 그의 말에 복종했고, 두 시간을 더 거리에서 서 있었다.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길모퉁이의 부랑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아야 함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도 뭔가를 배울 수 있었다.


여섯 시에 구세군 보호소에 갔다. 여덟 시까지는 잠자리를 예약할 수 없었고 빈자리가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우리를 '형제님'이라 부른 한 직원은, 차 두 잔을 사 마신다는 조건하에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흰색으로 도색된 거대한 본관은 크기만 한 볼품없는 장소였고, 난로도 없는 그곳은, 숨이 막힐 정도로 깨끗하고 텅 비어 있었다. 꽤나 제대로 갖춰 입은 듯한, 200명가량의 사람들이 긴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제복을 입은 한두 명의 직원들은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녔다. 벽에는 부스 장군의 그림들과, 조리, 음주, 침 뱉기, 욕설, 싸움, 그리고 도박을 금지한다는 경고문들이 걸려 있었다. 여기 경고문들 중 하나의 견본이다, 글자 그대로 베껴 왔다. 



누구라도 도박 또는 카드놀이를 하다 적발될 시 추방을 당하고 다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입장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조항을 어긴 사람들에 적발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신 분께는 사례를 해 드립니다.


이 쉼터를 도박에 빠진 가증스러운 악한들을 몰아낼 수 있도록 담당 직원에게 협조해 주시기를 모든 방문객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도박 또는 카드놀이'는 마음에 드는 문구다. 내 눈에는, 이 구세군 보호소가, 깨끗하기는 했지만, 흔한 싸구려 여인숙 중 최악보다 더 음울해 보였다. 몇몇의 사람들에게는 끝도 없는 절망감이 녹아 있었다- 품위를 갖추고, 무일푼에 옷깃은 이미 저당 잡혔음에도 여전히 사무직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구세군 보호소에 오는 이유는, 적어도 깨끗하기라도 한 이 곳에서, 체면을 움켜쥘 수 있는 마지막 장소기 때문이다. 내 옆 탁자에 앉은 사람들은 외국인들이었다, 넝마를 입었음에도 명백한 신사들이었다. 입으로 체스를 두었는데, 말들의 움직을 옮겨 적지도 않았다. 한 명은 장님이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둘은 5실링 반 가격의 체스판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던 중이지만, 절대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저기 핼쑥하고 침울한, 실직한 사무원들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뭉쳐 있는 한 무리 중에, 깡 마른 체형에, 키가 크고,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이상하게 광적인 말투로 자랑을 늘어놓았다. 직원들이 이 남자의 목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멀어지자 놀랄만한 신성모독을 토해냈다.


'그거 아나, 이 사람들아, 내일이면 나는 일자리가 생긴다고. 난 너희들 같은 빌어먹을 실패자들이 아니야, 나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어. 저걸 봐- 저 문구를 보라고, '주께서 주실 것이다!' 주께서 빌어먹게 많이도 주셨지. 내가 주를 믿게 하려고 하지 마. 난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직장을 얻을 거야'                   


극도로 흥분해서는, 불안해하며 떠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듯했다, 아니 약간의 취기였을 수도 있다. 한 시간 뒤, 나는 어떤 작은 방에 들어갔다, 독서를 위한 장소였다, 본관에서도 책은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몇몇의 숙박객만이 그 방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무릎을 꿇고 홀로 기도를 하고 있는, 한 젊은 직원이 보였다. 문을 다시 닫기 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고통에 차 있었다. 불현듯, 그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배를 곯고 있었다.


숙박료는 8펜스였다, 나와 패디에게는 5펜스가 남아, '식당'에서 써버렸다,  음식이 싸기는 했지만 싸구려 여인숙만큼은 아니었다. 차는 홍차 가루로 끓여지는 듯했다, 내 예상에는 구세군이 기부받았을 것이다, 한 잔에 3펜스 반을 받고 팔았지만 말이다. 악취가 나는 차였다. 열 시에는 직원이 본관을 돌아다니며 호각을 불었다. 모든 사람들이 즉시 일어났다. 


'이건 뭐지?' 매우 놀라서는, 패디에게 물었다.


'잠자리로 가야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칼 같이 지켜야 한다는 거지.'


순한 양처럼 순종하며, 직원들의 지휘 아래 2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번에 침대를 향해 떼를 지어 움직였다. 


공동 침실은, 60개에서 70개의 침대가 들어간 군인들의 막사 같은 거대한 다락방이었다. 침대는 깨끗했고 상당히 편했다, 하지만 너무 좁았고 침대와 침대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옆 사람 숨결이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두 명의 직원은 함께 잠을 잤는데, 소등 후의 담배나 수다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패디와 나는 거의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우리 근처에 누워 있던 사람이 신경장애를 앓고 있었기 때문인데, 전쟁 신경증 같았다, 남자는 '발사!'라고 뜬금없는 주기를 두고 외쳤다. 잠을 깨우는, 이 시끄러운 소리는 작은 자동차 경적의 빵 소리 같았다. 언제 소리가 터질지 절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확실한 수면 예방제였다. 알고 보니 발사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 보호소에서 단골로 자는 사람이었고, 분명 매일 밤마다 10명에서 20명의 사람들을 뜬 눈으로 보내게 해놨을 거다. 이 남자는, 이런 숙박장소로 몰이를 당해 들어오면, 사람들이 충분한 잠을 못 자게 막는 전형적인 사람들 중 하나였다. 


7시가 되자 또 호각이 울렸고, 직원들은 단 번에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며 돌아다녔다. 그 뒤로도 적지 않은 구세군 보호소들에서 잠을 자 보았는데, 각 보호소마다 약간은 달랐지만, 군대에 준하는 원칙은 모든 보호소들이 똑같이 지켰다. 틀림없이 가격은 저렴하다, 하지만 내 취향에는 지나치게 구빈소 같은 느낌이다. 몇몇 보호소에서는 종교행사가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은 열렸는데, 숙박객들은 무조건 참여하거나 보호소를 나가야만 한다. 실제로 구세군들은 자신들이 자선단체라는 생각에 너무 집착해서 자선의 악취를 내지 않고서는 숙박소 하나도 운영하지 못한다.


열시즘에 B의 사무실을 찾아 1파운드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2파운드를 주며 또 필요할 때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렇게 패디와 나는 적어도 일주일은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날은, 결국 나타나지 않은 패디의 친구를 찾으며, 트라팔가 광장을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다, 밤이 되어 스트랜드 인근에 있는 뒷골목의 싸구려 여인숙을 찾았다. 숙박료는 11펜스였음에도, 어둡고,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낸시 보이(여성스럽게 생긴 동성애자)'들의 단골 장소로 악명 높았다. 밑 층의, 어두컴컴한 주방에는, 고급진 푸른색 정장을 입은 정체불명의 세 청년들이, 다른 숙박객들의 무시를 받으며, 한쪽에 떨어져 있는 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낸시 보이'였던 것 같다. 구레나룻은 없었지만, 그들의 겉모습은 파리에서 볼 수 있는 깡패 소년들과 똑같았다. 불 앞에서는 나체의 남자와 옷을 전부 입은 남자가 흥정을 하고 있었다. 이 둘은 신문 판매상들이었다. 옷을 입은 남자는 벌거숭이 남자에게 옷을 팔려했다. 그가 말하길: 


"보게, 네가 본 옷 중 최고 일 거야, 외투는 은화 한 닢[반 크라운], 바지는 12펜스, 구두는 1실링 6펜스 모자와 목도리는 12펜스. 총 7실링이네.'


'꿈도 야무지군! 1실링 6펜스에 외투, 바지에 12펜스, 24펜스에 나머지 전부. 4실링 6펜스 주지.'


'이봐, 5실링 6펜스에 전부 가져가게.' 


'받아, 어서 벗고, 석간을 팔러 나가야 돼.'


옷을 입고 있던 사내는 옷을 벗었고, 삼 분 뒤 두 사람의 위치는 반대가 되었다, 나체의 남자는 옷을 입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신문지 한 장으로 몸을 감쌌다. 


공동 침실은 어둡고 좁았으며, 50개의 침대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불쾌하고 뜨끈한 오줌 냄새가 났는데, 너무 지독해서, 처음에는 숨을, 폐부가 찢어질 듯했다, 얕은 호흡으로, 끊어 쉬었다. 내가 침대에 눕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서서히 나타나서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반쯤은 취한 교양 있는 어투로, 횡설수설을 시작했다. 


'전통의 공립학교 졸업생이라고, 응? [내가 패디에게 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여기서 동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나도 이튼 졸업생이네. 자네도 아는, 12년 후의 이런저런 우여곡절 말이지.' 떨리는 목소리로 이튼의 뱃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듣기 안 좋을 정도는 아니었다. 


노젓기 좋은 날


그리고 건초 한 묶음- 


'그만 해- 시끄럽잖아!' 여러 숙박객이 고함을 질렀다,


'저급한 것들', 이튼 졸업생이 말했다, '아주 저급한 것들이야. 나와 자네에게는 재밌는 장소 아닌가, 응? 내 친구들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이렇게 말하더군, 'M-, 넌 구제불능이야.' 맞는 말이기는 해, 나는 구제불능이야. 나는 바닥까지 추락했어, 이런 것들처럼은 아니지만, 더 이상 내려갈 것도 없는 것들이지,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함께 어울려야 할지 않겠나. 아직 우린 젊지 안 그런가. 내 술 한잔 권해도 되겠는가?' 


그는 체리브랜디 한 병을 꺼냈고, 동시에 균형을 못 잡고 내 다리 위로 넘어졌다. 옷을 벗고 있던, 패디가 남자를 끌어당겨 세웠다. 


'네 침대로 돌아가, 이 실없는 늙다리야-!'


이튼 졸업생은 침대로 비틀거리며 걸어가서는 옷을 입은 채 침대보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신발도 벗지 않았다. 'M, 넌 구제불능이야'라고 잠꼬대하는 소리를 밤 동안 몇 번이나 들었다, 마치 그 구절이 그에게 호소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술 병을 꼭 안고, 아침까지도 옷을 다 입은 채로 자고 있었다. 고상한 얼굴에 피곤함이 내려앉은 50 즘 되는 남자였다, 옷도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더러운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질 좋은 가죽구두를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체리브랜디 한 병 가격은 2주 숙박료와 맞먹는다, 분명 돈에 쪼들리는 게 아니었을 거다. 이 남자는 '낸시 보이'들을 찾으려 싸구려 여인숙들을 돌아다녔을 수도 있다. 


침대 사이의 간격은 반미터가 조금 넘게 떨어져 있었다. 자정즘, 내 옆에서 자던 남자가 내 베개 밑에 있던 돈을 훔치려는 기척에 잠을 깨었다. 돈을 훔치려 하던 남자는 잠자는 척하며, 손을 쥐처럼 조심스레 베개 밑으로 밀어 넣던 중이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그가 유인원 같이 긴 팔을 가진 꼽추인 것을 알았다. 아침이 되어 절도미수를 패디에게 말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제 그런 건 적응해야지, 이런 곳에는 도둑 천지야. 입고 잔 옷 빼고는 안전한 게 없는 여인숙도 있어. 나무 의족까지 훔쳐간 걸 본 적이 있다고. 한 번은 거구의 남자가-90킬로그램 정도였는데- 4파운드를 가지고 들어 오더군. 돈을 침대 밑에 쑤셔 넣고는. '자' 그가 말했지, '감히 내 몸에 깔린 이 돈들을 만지기만 해 봐'. 그럼 뭐하나 똑같이 당했지. 아침에 남자는 바닥에서 잠을 깼어. 네 명이 각 침대 끝을 잡고는 깃털처럼 들어 올렸지. 남자는 그 4파운드를 다시는 못 보게 됐고.'               






작가의 이전글 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