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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Oct 06. 2017

30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패디의 친구를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보조라고 불리는 친구로서,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거리의 예술가다. 패디의 세상에는 주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보조를 램베스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그 친구와 마주치게 된 곳은, 그가 자리를 잡은 워털루 다리에서 멀지 않은 템스강 북쪽 강둑이었다. 그는 분필 한 통을 두고 무릎 꿇고 앉아, 싸구려 공책에 그려진 윈스턴 처칠을 베끼고 있었다. 그림은 꽤나 비슷했다. 보조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덩치가 작았고, 매부리코에 머리 밑 까지 기른 곱슬머리였다. 오른쪽 다리는 몹시 흉하게 일그러져있었다, 발뒤꿈치가 앞으로 뒤틀려있어 보기에도 심해 보였다. 외향만으로는 그를 유대인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언제나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매부리코를 '로마인'이라는 증거라며, 어떤 로마 황제와 닮았다며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베스파시아노 황제 같았다. 


보조는 말투가 독특했다, 런던 토박이 노동자들의 말투임에도 굉장히 명료하고 표현력이 좋았다. 양서는 많이 읽었지만 문법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패디와 나는 한 동안 강둑에 남아, 대화를 나누었고, 보조는 보도화가의 삶을 알려주었다. 거의 그가 사용한 단어들만으로 반복해 보도록 하겠다.


'내가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보도화가야. 나는 여기 다른 사람들처럼 칠판 분필로 그리지 않아, 화가들이 사용하는 올바른 색깔로 그림을 그리지. 이거 우라질 비싸다고, 특히나 빨간색들이 더 그렇지. 오랫동안 7실링짜리를 썼어,  절대 2실링 밑은 안 쓰지*. 풍자화가 내 분야야-정치나 크리켓 같은 것들 있지 않나- 이거 한 번 보게- 내게 공책을 보여 주었다-여기 이 정치가 녀석들 똑같은 것 좀 보게, 신문지에서 모두 베껴 그린 거야. 나는 매일 같이 다른 그림을 그리지. 예산에 관한 문제가 터졌을 때는 윈스턴이 '빚'이 새겨진 코끼리를 밑에서 밀려고 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써 두었지, '그가 움직일 수 있을까?' 알겠지 않나? 어떤 정당이라도 풍자는 해도, 절대 사회주의 편을 들어서는 안 돼, 경찰들이 봐주 질 않으니 말이야. 일전에 자본이라 불리는 거대한 보아뱀이 노동자라 쓰인 토끼를 삼키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지. 경찰이 지나가다 그림을 보고는, 명령을 하더군, '지워버려, 그리고 앞으로 조심해, ' 그렇게 말하더 라니까. 그림을 지워야만 했지. 경찰들은 한 곳에서만 배회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데로 가라고 명령할 힘이 있거든, 경찰들에게 말대꾸는 좋지 않아.'


[*거리의 화가들은 분말가루 형태로 된 색들을 사서, 연유에 넣고 섞은 뒤 딱딱하게 굳힌다.]


나는 보조에게 거리에서 얼마나 버는지 물어보았다.


'연중 이 맘 때는, 비가 안 오면,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3파운드 정도 가져 가지-알겠지만, 사람들이 금요일에 급료를 받지 않나. 비 오는 날은 일을 못 해, 빗 물이 그림을 바로 씻어 버리니. 일 년으로 보면, 일주일에 1파운드 버는 꼴인데, 겨울에는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거든. 조정 시합이 있는 날이나, 축구 결승전이 있는 날이면 4파운드 가까이 가져가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날들은 빼야 돼, 알겠지만,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면 1실링도 못 벌어. 반 페니 정도는 거저 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말이라도 조금 걸어야 얻을 수 있어. 내 말에 대꾸를 하고는 동전 한 닢도 안 주면 창피하니까. 그림을 계속해서 바꿔 그리는 게 최고로 좋은 방법이야, 그러면 사람들이 멈춰 서서 지켜보게 되니까. 근데 문제는, 이 거지들이 모자를 들고 돌려고 하면 바로 흩어져. 이 머리싸움에서는 바람잡이[조수]가 필요할 수밖에 없어. 나는 계속 그림을 그려서 구경꾼들의 눈을 잡아 두고, 바람잡이가 시치미를 떼고 구경꾼들 등 뒤로 돌아오는 거지. 사람들은 그가 바람잡이라는 걸 몰라. 그러다 갑자기 모자를 벗어 들지, 앞뒤로 협공하는 것 비슷해. 상류층한테는 절대 한 푼도 뜯어 낼 수 없어. 뜯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추레한 부류의 놈들이거나 외국인들이지. 일본 놈한테는 6펜스를 받아 봤고, 흑인들도 그랬었고, 다른 외국인도 비슷하지. 외국인들은 영국인들 같이 빌어먹게 인색하지는 않아. 그리고 또 기억해야 될 건 모자 속에 1 페니 정도만 빼고, 돈은 계속해서 감춰 두어야 해. 이미 1실링 나 2실링을 보면 사람들이 한 푼도 안 줘.'


보조는 템스 강둑의 보도화가들에 대한 깊은 멸시 감을 가지고 있었다. 보조는 그들을 '연어 판때기들'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거의 20미터마다 보도화가들이 앉아 있었다-20미터는 보도화가들 간의 최소 거리로 인정되고 있었다. 보조는 50미터 정도 떨어진 흰 수염이 난 늙은 보도화가를 경멸하며 가리켰다. 


'저 늙은 멍청이 보이나? '충실한 친구'라는 똑같은 그림을 매일 같이 10년째 그리고 있어. 개 한 마리가 소년을 물속에서 꺼내 주는 그림이야. 저 늙은 놈은 10살짜리 꼬마 빼고는 그릴 수 있는 게 없어. 어디서 저 그림 하나만 눈대중으로 배워 가지고는, 조각 맞추듯이 그리는 거지. 여기엔 저런 놈들이 깔렸어. 내 그림을 훔쳐보려고 오기도 하는데, 신경도 안 쓰지, 이 멍청한 놈들은 스스로 생각도 못 해, 그러니 내가 항상 앞서 가는 거지. 풍자화는 언제나 최신의 일을 다루는 게 핵심이야. 첼시 다리 철책에 한 꼬마의 머리가 끼인 적이 있었지. 어찌 됐겠나, 꼬마 머리가 철책에서 빠지기도 전에 내 바닥엔 그 내용이 그려져 있었지. 그 정도로 빠른 거야, 내가.'


보조는 흥미로운 사람 같았다, 나는 그를 더 만나 보고 애가 달았다. 저녁에는 다시 그를 만나려 강둑으로 향했다, 그는 패디와 나를 강변 남쪽의 싸구려 여인숙으로 데려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조는 바닥의 그림을 지우고 그 날 번 소득을 세었다-소득은 16실링 정도였고, 그는 12실링에서 13실링 정도는 이득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는 람베스 쪽으로 걸었다, 보조는 발을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꽃게 같은 이상한 걸음으로, 반은 옆으로 걸었는데, 짓이겨진 발은 뒤에서 질질 끌렸다. 그는 양 손에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염료 가방은 어깨에 걸쳤다. 다리를 건너 던 중 보조는 잠시 쉬자며 다리 위에 있던 아치형 쉼터 중 하나에 멈췄다. 그는 1 분에서 2 분 정도 침묵했다, 놀랍게도 나는 별들을 올려보는 그를 보았다. 그는 내 팔을 치고는 그의 막대기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 봐, 저 알데바란이 보이나! 저 광채를 봐! 마치-검붉은 오렌지색 같구먼!' 말투로만 보면 그는 어느 화랑의 미술 평론가였던 것 같았다. 나는 크게 놀랐다. 나는 어느 별이 알데바란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사실, 별들이 다른 광채를 띠는 것도 몰랐다. 보조는, 주요 성좌들을 가리키며, 천문학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들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나의 무지를 염려하는 듯했다. 감화된 채 그에게 말했다. 


'별에 관해 아는 게 많은 것 같네.' 


'많이 아는 건 아니지. 조금은 알지만 말이야. 유성에 관한 편지를 써주어 감사하다는 편지를 왕실 천문학회에서 두 통이나 받았었지. 때때로 밖에 나가 유성들을 관찰하고는 해. 별들은 공짜 공연이야, 눈을 쓰는데 돈이 들어가지는 않으니까.' 


'그거 정말 그렇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렇지, 흥미를 가질 무언가가 있어야 돼. 도로 위의 사람들이 무조건 차 한 잔에 빵 두 조각 밖에는 생각 못 하는 건 아니거든.


'이런 삶을 살면서 뭔가에 흥미를 두는 건 -별 같은 것에 말이야- 너무 어렵지 않나?'


'바닥에 그림 그리는 삶 말인가? 꼭 그런 건 아니지. 자신을 멍청한 토끼가 되게 할 필요는 없어-그게, 그렇게 되려 작정만 안 하면야.'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된 것 같기는 해.' 


'그렇긴 하지, 패디를 봐- 홍차에 환장한 오래된 거지야, 담배꽁초나 찾아다니는 게 딱이지. 저게 대부분의 부랑자들이 가는 길이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 하지만 공부만 한다면 저렇게 될 필요까지는 없어, 그러면 네 남은 인생을 도로에서 보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아니야.'


'그렇지만, 난 정반대로 보는데, '  내가 말했다, '사람에게서 돈을 앗아가는 그 순간, 사람들은 어디에도 필요 없게 되는 것 같아'


'아니지, 꼭 그런 건 아니지.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부자든 거지든, 똑같은 인생을 살 수 있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사상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어. 너 자신에게 이렇게만 말해주면 돼, '이 안의 나는 자유인이다' -그는 이마를 톡톡 쳤다-그러면 되는 거야.'


보조는 같은 논조로 더 나아갔고, 나는 주의를 기울여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흔치 않은 보도화가였다, 게다가, 그는, 빈곤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듣게 해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 날 이후 며칠 동안 그를 자주 보았다, 몇 번을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그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보조는 자신의 역사를 말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파산한 책장수의 아들은, 18살에 도장공이 되어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전쟁 통에 인도와 프랑스에서 군인으로 3년을 복무한다. 전쟁이 끝난 뒤 파리에서 도장공 되었고, 몇 년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영국보다는 프랑스가 그에게 더 맞았다(그는 영국인을 경멸했다), 파리에서는, 저금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갔고, 프랑스 처자와 약혼도 했다. 어느 날 처자가 버스 바퀴에 깔려 죽게 되었다. 보조는 일주일 동안 술을 들이부었고, 온전하지 못 한 정신으로, 일자리로 돌아갔다. 같은 날 아침 일 하던 중 그는 딛고 있던 발판에서 떨어졌다, 발판에서 바닥까지는 12미터였다, 오른발이 으깨 뭉그러지도록 박살이 났다. 무슨 까닭인지 단지 60파운드만이 보상금으로 주어졌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직업을 찾기 위해 돈을 쓰기도 했고, 미들섹스 거리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책을 팔아 보려 노력도 했으며, 장난감을 상자에 담아 팔아 보려고도 했다, 그러다 결국 보도화가로 정착했다. 그 후로 근근이 먹고 살아오며, 겨울의 반은 굶었고, 주로 수용소나 엠뱅크먼트 거리에서 자주 잠을 자왔다.   


내가 보조를 알았을 때 그가 소유한 것들은 입고 있던 옷과, 몇 권의 책들 그리고 그림 재료들 뿐이었다. 옷은 여느 거지들과 다름없는 넝마였지만, 옷깃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었다. 1년 또는 더 오래된 듯한, 옷깃은, 그의 목을 '뱅뱅' 끊임없이 돌았기에, 보조는 셔츠 끝단을 잘라 옷깃을 고정시켜 두어야 했다 그래서 셔츠의 끝단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 상처 입은 다리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절단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릎은,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하는 대가로, 구두 밑창만큼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여지없이, 거지 신세나 극빈소의 죽음 말고는 그를 위한 미래는 없었다. 


이런 모든 악조건과 함께여도, 그에게는 두려움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그리고 자기연민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직시했고, 본인을 위한 철학을 만들어냈다. 거지로 지내는 것은, 그가 말하길, 본인의 잘 못이 아니며, 이에 대한 죄책감을 거부하며 자신을 괴롭히게 두지도 않았다. 보조는 사회의 적이었다, 적절한 기회를 보면 범죄를 실행할  준비도 더없이 되어 있었다. 보조는 원칙에 따라 검소함을 거부했다. 여름 동안에는 한 푼도 저축하지 않고, 모든 돈을 술에 들이부었다, 여자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고 그에게 남은 동전이 한 닢도 없다면, 사회가 그를 돌봐 줘야만 했다. 그의 감사하단 말 한마디 기대하지 않고 제공되는, 자선단체의 구호금 동전 하나라도 뜯어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종교단체의 자선은 피했다, 빵을 위한 찬송가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양한 곳에서 명예를 중시했다. 예륻들면, 그가 가진 인생의 자랑거리였는데, 살면서 심지어 배가 고플 때도, 거리에서 단 한 개의 담배꽁초도 절대 줍지 않았다. 보조는, 본인 자신을, 그의 표현으로는, 배은망덕이 뭔지도 모르고 예절도 없는, 비굴한 무리들인, 거지 떼들 보다는 상위 계층이라고 여겼다. 


보조는 프랑스어도 그럭저럭 능숙했고, 걸리버 여행기, 다수의 수필, 졸라의 소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극들을 전부 읽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모험담을 기억에 남는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예로, 그가 말 해준, 장례식에 관한 일화다.


'시체 태우는 걸 본 적 있나?' 난 있지, 인도에서 말이야. 사람들이 늙은 시체를 불위에 올렸는데, 그러자마자 나는 혼이 빠질 정도로 깜짝 놀랐어, 시체가 발을 차기 시작하더라니까. 열기에 근육들이 수축한 거였지-그래도, 충격은 여전했지. 뜨거운 목탄 위의 훈제 청어처럼 잠시 동안 꿈틀거리더군, 그리고 배가 부풀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떨어지 곳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빵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어. 화장을 달갑지 않게 만드는 충분한 경험이었지.'


아니면, 또, 그가 겪은 사고도 있다. 


'의사가 이렇게 말하더군, '한 발로 떨어졌어요, 이 친구야. 두 발로 안 떨어진 게 지랄 맞게 운이 좋은 거예요.' 이렇게 말했어. '만약 두 발로 떨어졌다면 짜부라진 아코디언처럼 접혔을 거예요, 그리고 허벅지 뼈는 귀 쪽으로 튀어나왔겠지!' 


당연히 의사가 아닌 보조가 쓰는 단어들이었다. 보조는 문장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두뇌를 언제나 온전하고 기민한 상태로 유지시켜냈고, 어떤 것도 그를 빈곤에 굴복시키지 못했다. 보조는 넝마를 걸치고, 춥고, 심지어 굶주리고 있을지라도, 글을 읽고, 생각하고, 유성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가 말했듯, 그의 생각만큼은 자유로웠다. 


그는 적의를 품은 무신론자였다(개인적으로 신을 미워하면서 신을 아예 안 믿진 않는 무신론자다.), 그리고 인간만사가 절대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가끔은, 강둑에서 잠을 자면서, 목성이나 화성을 올려다보며 강둑에서 자는 사람들이 저곳에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를 위로해주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별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말했다, 지구 위의 삶이, 가혹한 이유는 생존 필수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화성은, 추운 날씨와 부족한 물 때문에, 분명 더없이 가난하고, 따라서 삶은 더 가혹할 것이다. 지구에서는 6펜스를 훔치면 감옥에 가겠지만, 화성에서는 산채로 삶아질 수도 있다. 나야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생각은 보조를 힘나게 해주었다. 그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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