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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Oct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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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가 머무르는 싸구려 여인숙은 하룻밤에 9펜스였다. 크고,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곳은, 거지, 부랑자, 잡범들이 자주 모이는 유명한 단골 장소였다. 모든 인종들이, 흑인과 백인 조차도, 평등한 관계로 뒤섞여 있었다. 인도인들 있었다, 내가 그중 한 명에게 짧은 우르두어로 말을 걸었을 때, 만약 인도였다면, 몸 서리 치는 단어로 나를 칭했다. 우리는 피부색이 가진 편견의 범위 아래에 있었다. 기묘한 삶들을 짧게나마 경험했다. 늙은'할아버지'라고 불리는 70세의 부랑자는, 담배꽁초에서 모은 담뱃잎을 1온스에 3파운드에 팔아 생계를 꾸렸다, 아니 그 일이 삶의 거의 전부였다. '의사'는-진짜 의사였는데 위법행위로 의사직을 잃었다,  신문을 팔면서 푼 돈에 진찰을 해주었다. 조그만 치타고니아 사람 동인도인 선원은, 맨 발에 굶주린, 배에서 도망친 뒤 며칠 동안 런던을 헤매고 있었다, 너무 멍청하고 속수무책이어서 자기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 여기가 리버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걸편지작가는, 보조의 친구였는데, 자선단체에 아내 장례식의 비용을 위한 애처로운 호소문을 썼다, 편지가 효력을 발휘하면, 혼자 빵과 마가린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는 형편없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이었다. 말을 걸어보니, 다른 사기꾼들이 그렇듯, 그도 자신이 하는 거짓말의 대부분을 믿었다. 이 여인숙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알사시아였다.               


보조와 있는 동안 그는 내게 런던의 구걸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구걸 기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많다. 거지들은 대단히 다양하다, 단순히 구걸하는 거지와 돈을 받고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 거지 사이에는 명백한 사회적 경계가 존재한다. 거지들이 벌어 들이는 돈의 양도 가진 '기술'에 따라 다양하다. 선데이 신문에 실린 2000파운드를 바지춤에 꿰매 두고 죽은 거지들 이야기는,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몇 주치 생활비를 한 번에 벌기도 한다, 더 나은 계층의 거지들은 운이 따라준다. 가장 잘 사는 거지들은 거리의 곡예사와 사진작가들이다. 곡예사들은, 가장 좋을 때에는,-극장 관객들이 줄 선 곳에서는,- 일주일에 5파운드 정도는 자주 번다. 거리의 사진작가들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은 좋은 날씨에 좌우된다. 이 사람들은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교묘한 술수가 있다. 제물이 될 법한 사람이 다가오면, 카메라 뒤로 달려가 사진을 찍는 척한다. 그리고 희생자가 다가오면, 이렇게 외친다.


'여기 있습니다, 손님, 사진이 아주 멋지게 찍혔습니다, 1실링입니다.'


'사진 찍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 희생자는 저항한다,


'아니, 찍히기를 원치 않으셨다고요? 손으로 신호를 주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건판 하나 날아갔구먼! 한 판에 6펜스나 하는 건데.'


이 순간 제물들은 보통 연민을 느껴 어찌 됐든 사진을 사기로 한다. 사진작가들은 건판을 확인하고 빛이 들어가 못 쓰게 됐다 하며, 사진을 무료로 새로 찍어 준다 한다, 제물이 거절하면, 손해를 볼게 아무것도 없다.


거리의 악사는, 곡예사들이 그렇듯, 거지가 아닌 예술가로 여겨진다. 쇼티라는 거리의 악사이자 보조의 친구는, 자기 직업에 대해 소상히 알려 주었다. 그와 그의 동료는 화이트 채플이나 커머셜 거리의 선술집이나 커피숍 앞에서 '일'을 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거리에서 돈을 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이 버는 돈은 열에 아홉은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나온다-오직 저렴한 술집들에서만 가능한데, 괜찮은 술집에는 입장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쇼티의 방법은, 한 선술집 밖에 멈추고, 한 곡을 연주한다, 그러고 나면, 나무 의족을 한 그의 동료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모자를 들고 술집 안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동전'을 받고 나면 다른 한 곡을 꼭 더 연주하는 걸로 쇼티의 체면을 지켰다-말하자면, 앙코르 같은 거다. 진정한 거리의 악사이지 돈을 받았다고 그냥 떠나지 않는 철학이었다. 그와 동료는 일주일에 2-3파운드 사이 정도 벌었지만, 오르간의 일주일 대여료로 15실링을 내야 했기에, 각자가 가져가는 돈은 평균 일주일에 1파운드 정도 됐다. 이 둘은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거리에 있었고, 토요일에는 더 늦게까지 있었다.


보도화가들은 예술가라 불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보조는 내게 '진짜' 화가를 소개하여 주었다-그는 파리에서 실제로 예술을 공부한 사람으로 파리에 있는 동안 예술가들의 미술관에 그림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의 주된 그림들은 옛 거장들의 복제품들이었다, 돌바닥에 그렸음에도, 경탄할 만큼 정도로 잘 그렸다. 자신이 어쩌다 보도화가가 되었는지 말해 주었다.


'아내와 아이가 배를 곯고 있었다네. 판매상들에게 보여주려고 가지고 나갔던 그림 무더기들을 들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어떻게 하면 망할 1실링이나 2실링을 벌지 골몰해하면서. 그러다, 스트랜드 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림을 친구를 보았어, 사람들이 페니를 던져주더군. 내가 지나가는 순간 그 남자가 일어나서 술집으로 들어갔어. '망할, '생각하기를, 저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 게 있나.' 그렇게 충동적으로 자리에 앉아서 그가 두고 간 분필로 그림을 그렸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분명 배고픔으로 정신이 몽롱했던 게야. 이상하게도 한 번도 색분필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서 기술을 익혀야 했지. 그래도, 사람들이 멈추기 시작하더군 내 그림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거야, 9펜스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주더군. 그때 이 사내가 술집에 나왔어. -지금 내 자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한테, 배가 고파서 뭐라도 해서 벌어야 한다고 설명했어. 그러니까, '오', '나랑 술이나 한 잔 하지.' 그렇게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그 뒤 보도화가가 되어 살아왔네.' 내가 일주일에 1파운드 정도 버는데, 일주일에 1파운드로는 여섯 자식들은 못 키워, 그래도 운 좋게 내 아내가 삵 바느질로 약간이라도 벌고 있어.'


'이 생활의 최악은 추위이고, 그다음이 참아내야 할 참견들이지. 처음에는, 내가 이 분야를 잘 모를 때였는데, 나체 그림을 바닥에 베껴 그리고는 했었어. 처음 그렸던 곳이 성 마틴의 평야 성당 앞이었지.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수도 복인지 뭔지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길길이 화를 내며 나와서는. '성스러운 신의 집 앞에 그런 외설적인 그림을 그려도 되오?'라고 소리쳤어. 그래서 지워버렸지. 그림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였어. 한 번은 똑같은 그림을 템스 강둑에 그렸는데. 한 경찰이 지나가면서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지르밟고는 발바닥으로 문질러 버리더군.'


보조도 경찰들의 방해에 대한 똑같은 말을 했다. 당시 내가 그와 있을 때 하이드 공원에서 '비도덕적 활동' 사건이 있었다, 경찰들이 상당히 악독하게 행동했던 사건이다. 보조는 경찰들이 하이드 공원 나무 뒤에 숨어 있는 풍자화를 꺼내 들었다, 쓰여있기를, '문제, 경찰을 찾아라, ' 나는 '문제, 비도덕적 행위를 찾아라, '라고 쓰는 게 더 많은 걸 말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조는 듣지 않았다. 보조는 어느 경찰이라도 그렇게 쓰인 풍자화를 보면 자신을 다른 자리로 옮길 것이고, 평생 자리를 잃을 것이라 했다.


보도화가 밑으로는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 또는 성냥팔이, 또는 구두끈 팔이, 아니면 라벤더 꽃잎이 약간 담긴 봉투를-이 봉투는, 완곡하게, 향수라고 불린다- 파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사실상 전부 거지들이다, 빈곤의 외향을 착취함에도, 이 중 누구도 하루에 평균 반 크라운 이상은 벌어가지 못한다. 이들이 왜 대놓고 구걸을 하지 않고 성냥이라도 파는 척이라도 하냐면 구걸에 관한 영국의 터무니없는 법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법에 따르면,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2펜스를 달라하면, 낯선 사람은 경찰을 부를 수 있고 경찰은 구걸의 대가로 7일간 잡아넣을 수 있다. 하지만 끔찍이도 앵앵되는 목소리로 '나의 주는, 당신, 가까기에'라고 노래를 부르며 거리의 분위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분필로 도로 위에 낙서를 하고, 성냥이 담긴 상자를 들고 근처에 서서- 한 마디로, 누군가를 성가시게 해도, 구걸이 아닌 합법적인 장사가 된다. 성냥팔이와 거리공연은 전적으로 합법화된 범죄다. 이득이 남는 범죄들은 아니다, 왜냐면 런던에서는 거리의 가수들과 성냥팔이들 중 단 한 명도 1년에 50파운드를 벌지 못 한다- 가난한 누군가는 차도와 인도를 나누는 경계석으로 돌아가, 등 뒤로는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일주일에 84시간을 서있는다.


그들과 교제를 해 보고,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임을 깨닫고, 사회가 그들을 향해 가지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충격을 받았던 누군가로서, 거지들의 사회적 위치에 관해 한 마디 하는 건 가치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은 거지들과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근본부터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거지들은 종족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다-창녀나 범죄자들 같이, 버림받는다. 일하는 사람은 '일'을 한다, 거지들은 일을 안 한다, 그들은 기생충이고, 완전히 무가치한 존재들이다. 벽돌공이나 문학비평가들이 생활비를 '벌 때', 거지들은 생활비를 '벌지' 않는다. 그저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들이며, 참아주는 이유는 우리가 인도적 시대에 살기 때문이다, 근본이 천박하다.


하지만 그들을 가까이서 본다면 거지들의 삶과 수없이 많은 존경받는 사람들의 삶 사이에는 본질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거지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들을 한다, 하지만 일이란 게 뭘까? 건설인부는 삽과 곡괭이를 휘두르게 일이다. 회계원들은 숫자를 계산하는 일을 한다. 거지들은 어떤 날씨에도 문 밖에 서 있음으로 정맥류성 정맥과 만성 기관지염 그리고 다른 질병들을 얻는다. 다른 것들과 같이 하나의 직업이다. 당연히, 확실히 쓸모가 없긴 하다. 하지만, 평판 좋은 다른 많은 일들도 쓸모는 없다. 사회계급 형태로 거지들도 다른 많은 유형들과 비교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특허 의약품 판매상들에 비해 정직하고, 선데이 신문사의 주인에 비해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암표상에 비해 정감이 간다-요컨대, 이 기생충은, 전혀 무해한 기생충이다. 거지는 지역사회에서 먹고살 만큼 이상은 거의 뜯어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들을 고통으로 거듭 반복하며 갚고 있음을, 우리 네의 도덕률에 따라 무엇이 이를 정당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거지의 그 어떤 것도 그 외의 사람들과 다른 계층으로 분류시킨다거나, 현대인들이 그들을 천대할 권리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거지들은 왜 천대받을까?-세계적으로, 무엇이 그들을 천대받게 하는 것일까.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얻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현실에서는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생산성이 있는지 기생충 같은지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요구되는 딱 한 가지는 이윤이 남아야 된다는 거다. 현대사회가 떠드는 자원, 효율성, 공공사업 그리고 그 외 모든 것들이, '돈을 얻고, 적법하게 벌고, 더 많이 번다'를 제외하면 무슨 의미가 남는가? 돈은 준엄한 도덕검증이 되었다. 이 검증에 의하면 거지는 실패했다, 그래서 경멸받는다. 누군가가 구걸로 일주일에 10파운드를 벌 수 있다면, 거지도 바로 존경받는 직업이 될 것이다. 거지는,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돈을 번다는 점에서, 그저 한 명의 사업가다, 생활비를 버는 다른 사업가들처럼. 거지는, 다른 대부분의 현대인들 보다는, 명예를 팔지 않는다. 단지 부자가 절대 될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한 실수를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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