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성, 국민성이라는게 정확히 존재하는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사는 나라 문화권에 따라 사고,행동 그리고 가치관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1-2시간이면 도착 할 수 있는 근방의 나라 일본이나 중국사람만 보아도 언어, 문화가 다르며 행동방식에 차이가 있다. 일본사람들의 국민성은 진정한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살아 본 경험도 없고 일본사람과 친분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까지 가까워 본 적이 없어 한국사람으로서 갖는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편견 또는 고정관념들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는 못 하다. 하지만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은 일본에 가보지 않았어도 확신할 수 있을 듯 하다.
일본에서 살아 본 경험이 없기에 일본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의 말은 간단했다. "통상 일본에서는 열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라는 말은 잘 통하지 않는다." 아닌 것은 아닌 것.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서구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했고 서양의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극동 3국중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온 가장 오래 된 국가다. 개인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일본인 만큼 서양화 된 동양인이 없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교, 한자 문화권에 종속되어 있는 일본이기에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전혀 안 한다고 볼 수도 없다. 서양인과 같은 사고방식이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동양인적인 마음가짐과 생활양식이 개개인들에게 남아 있는게 아닐까 한다. L군은 이미 그 일본인 친구에게 거절의 말을 들었다. 돌려서 말 했을 뿐 L군과는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 할 수 없다는 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말을 돌려서 했을 뿐 L군의 고백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죄송합니다' 였다.
서양인들은 직설적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예와 아니오에 관한 의사표현을 돌려서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No means no' 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아닌건 아닌거다 이다. 한 번 아니라고 했다면 그건 거기서 끝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의미를 갖을 수 없다는 뜻 정도 되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니오가 가끔은 예가 될 수도 있고, 예가 아니오가 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싫은 부탁을 받아도 딱 잘라 거절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나라에는 많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도 두번 세번 거절한 상대에게 똑같은 부탁을 하는 것은 실례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인들은 한국인이나 중국인에 비해 더 서구화가 많이 진행된 국가가 아닐까 라는 전제를 깔아 두었다. 일본인들의 거절은 서양인의 거절과는 분명 다르다고 한다. 딱 잘라 아니요, 라고 거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직설적 표현 보다는 말을 돌리고 정중한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말들로 표현 한다고 한다. 일본인이 다른 극동 국가보다 더 서구화 되었다는 전제가 맞다면, 그녀의 뭉뚱그려진 거절의 표현 속에는 No means no 가 함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변화하고 있기에 예전만큼 남자들이 안 넘어 가는 나무 열번 찍을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런 정신과 문화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쉽게 포기하는 남자는 남성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거절을 받아도 저돌적으로 다시 고백을 하고 설득을 시도하는 일이 정도만 심하지 않다면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번 거절을 한 상대에게 계속해서 똑같은 고백을 반복하고 설득을 하려는 노력이 폐를 끼치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고 한다.
L군은 이미 거절을 받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확고한 거절의 답변을 받았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설득하려는 노력이 변질되고 곡해되어 그녀에게 받아 들여질 확률이 있다. 아니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럴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더 높아 보인다. L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사실상 남은 것이 없다. 그녀를 놓치기 싫은 순수한 마음에 연속적으로 그녀에게 사귀자는 말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한 여자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비춰 질 수도 있다.
L군이 그 여성을 포기하지 못 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우선 친구로서 남아 보는 건 어떨까 한다. 그녀의 곁에서 친구로서 지내면서 무엇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고 꾸준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마음이 열릴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녀가 L군에게 언제 올지,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녀의 마음을 열지 못 하고 평생친구로만 남게 될 지 알 수는 없다. 그녀의 옆에서 친구로 지내며 기약없는 날들을 기다릴 자신이 없다면 사실상 L군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 상황에서 또 고백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관계가 멀어 질 수도 있다. 완벽하게 남이 되어 친구는 고사하고 그녀가 L군을 피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연인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녀의 옆에 있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친구로 남아 그녀에게 정성과 노력을 쏟는다고 해서 L군의 마음을 그녀가 언제 알아줄지, 아니 알아나 줄지는 장담 할 수 없다. 그저 좋은 친구로 평생을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친구로라도 남는 선택을 해야 얼마되지 않는 가능성과 확률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젠가는 그녀의 마음이 열릴 수 있는 확률도 동시에 생기는 것이다.
지금 당장 힘들고 마음이 아파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인정해야 될 때가 있다. 인정하기 쉽지않고 가끔은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과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였을 때 문제의 본질이 보이게 되고 이성적인 해결방안을 생각 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이고 지금하고 있는 노력이 어떤 성과와 결과를 가져 올지도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그저 포기가 정답은 아니다. 현실을 받아 들였다고 해서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님을 인정하고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한다. L군이 좋아하고 있는 그 일본인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 한 L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가끔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하지 않더라도 목적지까지 돌아서 가야 할 상황도 생기고 천천히 가야만 할 때가 벌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