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만큼 소중하고 아끼는 사람이 있을까. 넓은 의미로 보자면 가족들 또한 한 인간의 인간관계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겠지만, 가족을 자신의 인간과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듯 하다. 가족은 그저 가족이고, 언제나 함께하는 당연한 존재들이다. 나에게 같은 피를 물려주신 부모님, 그 부모님께 나와 똑같은 피를 나눠 받은 형제들, 그런 부모님을 낳아주신 조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의 가족들과 자식들. 피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단인 가족은 인간관계로 생각하는 건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아마 가족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절친한 친구들일 것이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과는 가족과 다를바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되고 유지하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몇 번 만나지 않아도 가족과 진배없는 친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고 그들을 위해 같은 자리에서 머물러 주게 된다. 피로 엮이지는 않았지만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아마 절친한 친구들이겠다. 그렇다면 애인은 어느 부류에 속하게 될까.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서,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 사람의 위치는 어느 정도에 자리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위치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친구 보다는 위, 가족보다는 아래 정도로 여기지 않을까 한다.
잠수를 탄 남자친구에게 기다려주겠다, 힘든 일이 있으면 대화로 풀자고 먼저 제의를 하고 제안을 한 부분은 매우 좋게 보여진다. O양에게 있어 2년을 만난 남자친구의 잠수가 충격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O양의 침착하고 아량넓은 행동은 본 받고 싶을 정도이다. 아무 말도 없이, 이유도 없이 잠수를 탄 남자친구에게 여전히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O양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지 않을까 한다.
O양과 남자친구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O양의 말만 들어서는 두 사람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예상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O양이 지금 상황에서 너무 힘이 들고 겪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괴롭기만 하다면 단호한 결정은 내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예상하지도 못 했던 남자친구의 행동을 무조건 견디는 것이 능사만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말 못 할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이해해주려는 마음은 높이 평가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이어 나가기 힘들 수 있다. 상호간에 이해와 희생이 있어야 연인관계가 지속이 되고 그 다음을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 사람은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해 왔다, 장거리 연애가 아닌 평범한 연애를 2년간 해도 권태기가 찾아오고 연인간의 감정이 무뎌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잠수를 타 버린 남자친구에 대한 이해는 쉽게 결정하기 힘들 듯 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O양의 이해와 아량은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이미 메일을 받은지 1주일이 넘어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진척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지금까지도 같은 상황이라면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오지 않았나 싶다. 딱 잘라, 잠수를 탄 남자친구를 못 믿으니 헤어져야 한다라고는 말 할수 없다. 다만 O양의 마음에 남자친구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고 미래에 대한 열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직접 남자친구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지만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끔은 한 쪽에서 먼저 희생을 해야 될 필요도 있다. 물론 잘 못을 하지 않은 쪽이 먼저 나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무조건 잘 못 한 쪽이 먼저 나서서 잘 못을 인정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이 아닌 연인관계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할 점은 있지 않을까 한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천가지 다른 실수를 저지를 수는 있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은 이는 실수가 아닌 의도된 행동으로 봐도 무관하다. 만약 현재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다면 이것만큼 잘 된 것도 없겠지만,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대한 마음의 대비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와 상황이 각자의 삶에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얼만큼의 부분에 포함이 되고 있는지 말이다. 함께 해야 준비해야 할 미래가 있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필요해 보인다. 연인관계도 그저 좋아서 만나는 단계에서 조금은 진지한 단계로 넘어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연애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원하는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그 동안 해 온 연애를 통해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향으로 함께 걷고 싶은지에 대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조금 더 솔직한, 조금 더 진솔한, 친한 친구와 하는 허울없는 대화를 남자친구와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본질적인 문제들은 가끔 다른 사소한 문제들에 가려 안 보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