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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Dec 07. 2016

사람이 바뀌는 것일까 사랑이 바뀌는 것일까

사랑과 현실

연인들끼리 싸움을 하게 되다 보면 자주 하게 되는 말이 있다. "너 변했어"와 "넌 절대 변하지 않아" 이 두 가지의 말로 싸움을 반복하고 서로에게 반복하는 횟수가 많아지게 된다. 어느 쪽의 이유를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싸우던 사실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어떤 특정한 행동이 사람을 미워 보이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미워 모든 행동이 미워 보이게 되는 것인지를 묻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우리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답을 찾지는 못 했지만 여전히 닭을 먹고 달걀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행동 때문에 미워진 것인지 미워져서 행동이 미워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사랑하는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왜 자주 다투는 연인 사이에서는 너 변했어라는 말로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고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일까. 연애 초반, 모든 것이 달달하고 세상이 호황 찬란한 시기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 물론 한 두 가지 보이는 단점이 있어 절대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정도 작은 단점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연애를 처음 시작한 두 사람은 사회에서 학습하고 배운 대로 완벽하게 행동한다. 서로의 말을 조심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웃는 모습만 보여주며 어두운 모습은 저 뒤로 숨겨둔다. 이런 행동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하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가식을 섞은 행동들. 당연히 서로가 조심하고 서로가 먼저 배려를 하려고 하니 연애가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없다. 





고무줄에는 탄성이라는 것이 있다. 고무줄을 아무리 길게 늘여도 원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성질과 같은 것을 탄성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도 탄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본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연초에 부풀었던 희망으로 계획했던 목표들이 탄성이라는 성질로 인해 희망이 줄어들고 부풀었던 마음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연애도 똑같다 결국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고 할 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본래 성질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진다. 연애를 하면서 긴장하는 정도와 횟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툼과 싸움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의 마음이 가진 탄성이 연애에 가져오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변했다 그리고 변하지 않았다 


사실 둘 다 똑같은 말이다. 변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은 연애 초기 보여주던 그 자상함 연애를 위해 발로 뛰던 그 부지런함,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해 주었던 마음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변했다고 말한다. 변한 건 변한 것이 맞다. 그 화려하고 휘황 찬란했던 연애 초기를 이끌던 남자 친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채색할 것 같았던 여자 친구의 사랑스러운 눈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크기는 줄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상황이 그때와 같지 않고 사람의 마음이 그때와 같지 않은데 어찌 연애 초기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랴. 그때 그 아름답고 캐러멜처럼 달콤하고 끈적끈적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 옆에 앉아 있는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보면 세상이 이미 세네 번은 바뀐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연애 초기부터 싸웠던 커플들이 자주 사용한다. 원래 그랬던 그 사람의 모습에 실망을 했을 수도 있다. 그 기억이 뇌리에 박혀 있던 상태에서 연애 초기의 설렘이 사라지고 서로 아껴주고만 싶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을 때 이런 모습만이 눈에 띄게 된다. 왜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변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 변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나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은 도를 넘어 그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집착이 생기고 종국엔 그 사람이 미워 보이는 단계까지 가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 바뀌지 않는 것은 사기에 가까운 언행 불일 치적 행동이며 나를 기만하는 행동이라고 믿기 시작하며 그 사람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 그 자체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특정한 마음가짐과 행동 때문에 사랑하고 좋아하게 됐음에도 그 부분까지 미워하는 단계까지 가게 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꾸려 하는 것이 사랑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바꾸려 하는 것이 정말 사랑일까? 쉽게 생각해 보자.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이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류의 기사를 읽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니 얼마나 좋은 것들을 해주고 싶고 질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은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런 기사를 읽을 때 어떤 기분과 생각으로 읽게 되는가? 보통은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읽어 나가지 않게 되나 싶다. 연애도 똑같다. 상대방이 가진 단점을 지적하고 고치기를 강요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못 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는 것과 똑같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단점을 고쳐주고 싶은 점이 전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무관심보다는 백배는 나은 사랑 표현 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의 단점을 고치지 못하거나 그 사람이 스스로 고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할 때 느끼는 그 좌절감 또는 고치고야 말겠다는 집착이 미움을 키우고 그 미움이 사랑을 뒤엎을 뿐이다. 


집중은 사랑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되지 않으며 현실을 배제한 사랑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사랑이 아닌 사람을 쫓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좋다. 더 나은 차를 타고 더 넓은 집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 심리다. 이왕 만나는 사람의 능력이 더 좋았으면 하는 것도 합리적인 생각이다. 언젠가는 사그라들 사랑 때문에 자신의 원하는 것을 모두 포기하고 고생의 길을 선택할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사랑만을 강조하는 로맨티시스트가 젊은 날에는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없어지는 일이 생기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사람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건 사람의 마음은 결국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돼도 어느 순간부터 단점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사람을 바꾸고 싶다는 집착을 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 본연의 마음, 누군가는 바뀌어야 더 완벽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돌아간다. 이런 마음가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우리의 몸이 늙고 가지고 있는 시간이 소멸되어 가는 게 모두의 공통분모이듯.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저 비슷한 차를 타고, 비슷한 월급을 받는 일을 하며, 비슷한 수준의 식사를 하고, 비슷한 이유로 사랑하고 싸우며 살아간다. 결국 연애를 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현실 현실을 이야기하며 이별과 사랑을 이야기해도 현실로 선택한 이별과 새로 찾아오는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랑하고 이별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임은 잘 인식하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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