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호 Jun 15. 2021

그냥 헤어진 이유



차갑게 말한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 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네가 좋아라고 고백한 나의 한 마디가 시작이 되었듯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이 둘의 끝이 되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어째서냐고 캐물어도 해줄 대답이 없다고 했다. 그럴 것 같았다. 왜 좋아졌냐고 그렇게나 많이 물었을 때도 내 대답은 언제나 그냥 이였으니까. 


그러니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 할 것 같았다. 세세하게 찾아내면 수백 수천만가지가 있겠지만 그 모든 말을 하나로 합친 말 “그냥.”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몇 년의 함께 한 시간이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으레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으레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듯,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았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도 시간이라는 약이 얼마나 쓸지 얼마나 오랜기간 복용해야 되는지는 알지 못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라는 약을 먹는 수 외에는 다른 아무 방도가 없었다. 

밤이면 슬픈 노래에 청승을 떨고 낮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하루 하루가 그냥 그냥 그렇게 흘렀다. 


시간이 얼추 지났다 싶을 때서야 상처가 흉터가 됐음을 깨달았다. 만져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흉터까지 지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그냥 내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라는 약이 상처까지는 치유해줘도 흉터는 어떻게 해주지 못 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끔 흉터를 멍하니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 상처가 생기기 전의 일들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랬었던 일이 있었지 하고 흉터를 본다. 


그냥 그렇게 멍하니 볼 때가 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보게 될 때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상처가 아물기를 바랄 때가 있었던 것을 잊었나 보다. 


지긋지긋한 상처가 흉터가 된 지금에야 그 때를 돌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흉터가 남았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지 아니면 흉터까지도 지우는 법을 찾고 싶은 건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떠나간 그 사람이 잊혀지지 않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