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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May 13. 2017

비 완벽이 완벽을 추구할 때

"너 자신으로" 시작하는 그리스의 명언을 기억하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는데도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들은 느끼지 못 하지만 말이다. 그 사람의 성품, 인성, 얼굴 표정, 말투, 외모, 지식, 지혜, 체력, 마음가짐, 가치관, 재력, 능력, 신뢰 등등 다양하다. 분명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호감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대지 못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감정이 너무 복합적이고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녔기 때문이겠다.


싫어하나 비호감을 가질 때도 비슷하다. 하지만 호감과 좋아함에 비해 누군가를 싫어함에는 좀 더 명확한 이유를 대거나 근거를 대기도 한다. 특히나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권태기에 빠졌거나,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을 때 특정한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유를 드는 본인도 모를 때가 있기도 하다.


사랑이나 호감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통해 갖게 되는 것은 보통이고, 단점은 통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제외되기 마련이다. 눈에 무언가가 씌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안아주고받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완벽하게 받아주고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몇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이 미워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 사랑이 식고 눈에 씌었던 무언가가 벗겨지면 사랑이 식지 않아도 그 사람의 단점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 번 뜨인 이 단점들은 식어가는 사랑에 찬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면 보통 이 단점들은 수증기로 변해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뜨거운 불이 식고 나면 수증기와 공기로 존재하던 단점들이 물로 변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변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 물이 불을 꺼뜨리게 될지 아닐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불을 아무리 살리려고 애써보고 갖은 노력을 해도 불이 꺼질 때가 있기도 하다. 


불이 꺼져가는 것을 막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한들, 노력했다 한들 결과는 불이 꺼져가고 있다거나 불이 꺼졌다는 것이다. 사랑이 식어 그 사람을 향하던 애정이 무감각으로 변하거나 최악은 증오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누가 이런 일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겠는가. 사랑을 하는 사람이나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겪어 본 매우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에 누가 비난의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물론 한쪽의 불이 꺼졌다고 해서 다른 쪽의 불도 꺼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은 쪽이 상처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 옆에 있어준다는 건 이 또한 못 할 짓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랑하던 사람 곁을 사랑이 아닌 연민으로 지키려 노력한다면 불행하거나 비참한 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이 꺼진 쪽이 떠난다 한들 비난할 수 없고 불이 꺼지지 않은 쪽이 남겨졌다고 해서 마냥 불쌍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의 사랑은 남기도하고 누군가의 사랑은 살아지는 건 흔하디 흔한 일상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불이 꺼지는 쪽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상대방의 단점을 빌미로 자신의 불을 꺼드리려 한다면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나의 단점은 그 사람의 불을 꺼뜨리고 있는가, 나의 단점이 눈에 보이고 있음에도 상대방은 마음속 불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지도 못 하면서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고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고 도를 넘어선 이기심이다. 상대방 또한 자신의 단점을 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단점까지도 안고 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단점이 아닌 의지와 마음 그리고 노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은 하지 못 하는 일을 상대방이 해주고 있음을 알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을 요구하면 단점이 보일 수밖에 없다.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허상을 쫓으며 상대방에 대한 비밀스러운 비난을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비현실적이고 지독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완벽을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말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실수를 하거나 평생 가지고 있는 단점에 "나도 사람이야"라는 변명을 가져다 붙이고 있다면 상대방도 사람임을 인정하고 우리들의 단점을 보고 이해해주고 감싸 안아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았는데 저래서 싫어졌어 라는 말은 쉽게 하지 말자. 우리 모두 완벽하지 못 하기에 슬퍼하고 아파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고 함께 해주려 노력하지 않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그런 사람이 돼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해 줄 수 있을까 보다 먼저여야 한다.     


비완벽이 완벽을 추구했을 때 얻는 결과는 아마도 고립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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