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럽 조지아 여행 8일차
45층에서 본 바투미

2025년 5월18일부터 6월12일까지 26일간의 조지아 자유여행

by 해피매지션 정호선

5월 25일.

늦은 아침과 숙소 문제 해결

여행 8일차, 일요일. 새벽에 잠들어 알람에 깨어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어제 술을 마시고 푹 잤기에 몸은 거뜬했다. 부킹닷컴과 호텔에 예약 취소를 요청하는 연락을 했으나 답장은 없었다.

어제 작성하지 못한 여행일지를 정리하고, 아파트형 호텔의 장점을 살려 죽을 데워서 아침 식사를 했다. 조리가 가능한 숙소라 편리했다.


[ 45층 숙소에서 바라본 바투미 전경 ]

image.png?type=w966

45층에서 바라보는 바투미 해변 모습이 너무 멋져 사진을 연신 찍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큰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흑해의 장관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예약 취소와 위약금의 아픔

씻고 바투미 여행을 준비한 후 12시 40분에 밖으로 나왔다. 숙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텔 C 리셉션에 갔다가 D2 리셉션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다시 C 리셉션으로 가라고 했다.

C 건물에 가서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13층 사무실에 가서 위약금을 물고 기존 예약을 취소했다. 억울했지만 4박 예약을 취소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숙소 문제는 완전히 정리되었다.


첫 바투미 점심과 해변 산책

[ 점심 식사를 한 레스토랑 ]

image.png?type=w966

인근 호수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참치 샐러드와 파스타, 생맥주를 주문했다. 경치는 정말 좋았지만 음식 맛은 기대에 못 미쳤다. 관광지 레스토랑의 한계인 듯했다.

[ 블러바드 산책로 ]

image.png?type=w966

바투미 바닷가로 가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블러바드 산책로를 따라 3킬로미터 정도 걸으며 바투미의 해안 풍경을 만끽했다. 넓은 해변과 소나무가 늘어선 산책로가 인상적이었다. 소나무들이 해안선을 따라 쭉 늘어서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바다 내음과 소나무 향이 어우러져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수산시장의 아쉬움과 아르고 케이블카[ 수산 시장에서 파는 다양한 생선 ]

image.png?type=w966

구글 지도에 바투미 수산시장이라고 검색해서 찾아간 곳이었는데, 한 도시의 수산시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에 실망했다. 바투미가 흑해의 항구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수산시장이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 다만 인근 수산물 레스토랑은 꽤 컸다. 볼트를 타고 아르고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아르고 케이블카는 2.5킬로미터 길이로 천천히 가니 꽤 길게 느껴졌다. 케이블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이라서 그런지 묘지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조지아의 산악 지형 특성상 묘지들이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바투미의 날씨와 아나우리산에서의 전망

기온이 26도로 더웠는데, 어제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낮에는 지중해성 기후 특유의 강한 햇살과 높은 기온 때문에 야외 활동이 힘들었다. 바투미 사람들이 밤에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 패턴인 듯했다.


[ 아르고 케이블카 ]

image.png?type=w966

[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며 본 바투미 전경 ]

image.png?type=w966

아나우리산 정상에서 바투미를 내려다보았다. 도시 규모는 트빌리시와 조금 차이가 나는데 인구수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바투미는 트빌리시보다 훨씬 작지만 해안 도시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높은 곳에서 보니 바투미가 좁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발달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일드한 바투미의 매력 발견

5시 20분, 더위에 지쳐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정돈된 느낌의 트빌리시와는 다른 와일드하고 변화무쌍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투미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 바투미 까르푸 내부 모습 ]

image.png?type=w966

호텔 앞 까르푸에서 휴지, 물, 과일, 술 등 필요한 것들을 장봤다. 현지에서 구입한 감자와 마늘을 한국에서 가져온 간편식 닭볶음에 넣어 만든 닭볶음탕은 맛이 일품이었다. 아파트형 숙소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흑해 일몰과 바투미의 화려한 밤

8시 30분, 바투미 일몰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해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먼저 바닷가로 나가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흑해를 바라보며 일몰을 보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들께서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 바투미의 일몰 ]

image.png?type=w966
image.png?type=w966

해가 지고 나자 바투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낮의 더위가 가시자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도 바투미 해안대로를 걸었다. 낮보다 밤에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낮에는 26도의 뜨거운 날씨로 거리가 한산했지만, 밤이 되니 걷기에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바투미의 밤은 정말 화려했다. 해안대로를 따라 설치된 LED 조명들이 다양한 색깔로 변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높은 빌딩들의 네온사인과 야경이 흑해의 잔잔한 물결에 반사되어 마치 라스베이거스의 밤을 연상케 했다. 카지노와 호텔들의 화려한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야외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삼삼오오 모여 밤의 바투미를 만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전자기타를 치는 소녀와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어린 소녀 ]

image.png?type=w966

길을 걷다가 통기타와 전자기타로 팝송을 연주하는 어린 소녀를 보았다. 한참을 듣다 감동하여 동전을 통에 넣었다. 이런 거리 공연이 바투미 밤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분수대 주변에서는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해변에서는 연인들이 달빛 아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바투미의 밤은 단순히 어둠이 내린 시간이 아니라, 도시가 진정으로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더위를 피해 실내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삶을 즐기는 모습에서 지중해성 기후 도시의 독특한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바투미의 밤, 그리고 45층에서의 긴급 대피

바투미의 밤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해안대로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거리와 흑해에 반사된 불빛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여행의 설렘과 만족감에 흠뻑 젖은 채 10시 무렵 호텔로 돌아왔다. 45층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노트북을 펴고 하루의 기억을 정리하던 중, 어디선가 조용히 방송 소리가 들렸다. 조지아어라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호텔 내부 안내인가 싶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몇 분 후,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영어 방송이 이어졌다.

“실제 상황입니다. 대피하십시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마시고, 계단을 이용해 대피해주십시오.”

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했던 상황이 실제라는 사실에 머릿속이 하얘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말없이 작은 가방만 챙기고 복도로 나왔다. 이미 여러 투숙객들이 복도에 나와 있었고,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이는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 어떤 이는 잠옷 위에 급히 외투를 걸친 모습이었다.

45층 계단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각 층마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계단은 붐비기 시작했다. 불안한 얼굴들이 이어졌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조용히 움직였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짐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 상황에서도 끌고 내려갈까 싶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인간적인 본능처럼 느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차도르를 입은 여성이었다. 긴 천이 계단에 걸려 자꾸만 발을 막았지만, 그녀는 묵묵히 한 걸음씩 내려가고 있었다. 조용하고 절제된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30층, 20층, 10층… 숫자가 줄어들수록 발은 무거워지고 심장은 빨리 뛰었다. 1층에 가까워질수록 ‘이제 곧 끝난다’는 안도감과 ‘아직 불이 나고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드디어 로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호텔 직원이 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진짜 이유는 예상 밖이었다. 한 투숙객이 방에서 담배를 피워 화재경보기가 울렸다는 것이다. 진짜 불은 없었다.

순간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고생이 담배 한 대 때문이었다니.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45층이라는 높이는 평소엔 감탄을 부르지만, 비상 상황에선 공포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45층으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어떤 여행이든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상황에서 침착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바투미의 첫날 밤, 아름다운 야경과 더불어 잊지 못할 긴박한 기억 하나가 더해졌다.


#조지아여행 #해피매지션 #디지털시니어 #자유여행 #바투미첫날 #아르고케이블카 #흑해일몰 #바투미까르푸 #긴급대피경험 #바투미야경

keyword
작가의 이전글#9 유럽 조지아 여행 7일차 트빌리시에서 바투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