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감정의 거리에서, 나로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병원에 들렸다. 혈액 검사를 기다리며 입원실에 앉아 있던 중, 맞은편에 앉은 또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환복을 입은 채, 노트북 앞에서 분주하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한 달 전의 내가 겹쳐졌다. 지쳐 있었고, 글로 풀어내기까지 버텨야 했던 날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여러 나를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는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까.
우리는 존재의 시간 속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 타인, 그리고 세상이 힘겹게 느껴지더라도, 그 감정만으로 모든 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힘든 시간은 지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나조차도 지나간다. 어느 순간에는 그 시간들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의 나도, 그때를 그리워하는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다.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존재의 시간을 단절시킨다. 그래서 스스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안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매일 조금씩 자신에게 다가가는 연습, 그건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조용한 방식이다.
세상엔 조용히 자신의 시선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닿아야만 알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안에도, 그런 기억들이 꽤 많이 남아 있다. 눈 쌓인 언덕길을 오르던 어느 날, 인도로 손짓하며 걱정해주던 운동 중의 노부부. 전철 안, 옆자리가 비자 서서 가는 내게 눈짓으로 앉으라 건네던 사람. 지친 몸으로 걷는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오는 고양이. 이 모든 것은, 닿아야만 알 수 있는 감정들이다.
하지만 퇴근길, 헤드라이터를 깜빡이며 경고하던 뒷차의 불빛은 나를 앞으로 숙이게 만들고, 타인의 시선을 자꾸 줄이게 만든다. 우리는 거리를 걷고,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이 산이 되어 타인이 넘어가야 할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관계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지금의 나는, 슬픔이 아닌 어떤 이야기로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을지를 조용히 생각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아픔을 담담히 독백하는 주인공을 보다 보면, 공감되면서도 쉽게 빠져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감정을 온전히 담지 못한 채 줄거리만 검색하는 나를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의 팜플렛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는 넷플릭스도, AI도 없던 세대였다. 영화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극장에 가야 했고, 영화 시작 전에는 팜플렛을 한 장씩 챙기곤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그 팜플렛 속 사진들과 자극적인 문구들이다. 그 기억은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는 동안에도 겉돌듯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쉬운 자극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깊은 몰입을 바라게 되었다. 줄거리를 미리 알고 나면 오히려 집중이 더 잘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AI는, 어쩌면 그 시절의 팜플렛처럼 빠르게 줄거리를 건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그 이야기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들어낸 장면들이었다. 팜플렛 속의 문구도 떠오르지만, 더 오래 남은 건 극장을 나와 함께 걸었던 풍경,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어느 날 내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팜플렛은 이야기의 곁에 있을 때에만, 구조와 형식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 시절엔 팜플렛을 들여다보며 몰입을 준비했다면, 지금의 나는 AI의 요약을 통해 감정의 문을 조용히 열어본다.
치료를 마친 뒤, 빵집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거리 위를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조용히 외면해 본다. 동시에, 그 순간의 신체 감각에 천천히 귀 기울인다. 돌려진 고개, 긴장된 목, 굳어진 등을 조용히 느껴보고, 그냥 그대로 두어본다.
자신을 믿고, 안정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면에 안전기반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내 감정에 보행자용 안전바를 하나 조용히 세워본다. 처음엔 눈을 감으면 쉽게 사라지지만, 오래도록 떠올리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다 보면 어느새 그 심상이 또렷이 자리 잡는다. 이제는 눈을 감기만 해도 떠오를 만큼, 그 이미지는 내 안에 깊게 남아 있다. 마치 감각의 지도를 따라 표식 하나를 새긴 듯, 내 안에 감정의 고정점이 하나 생겨났다. 다시 흔들릴 때, 나는 내 안에 만든 그 바를 붙잡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여준다. “지금은 고요한 순간이야. 나는 내 감정을 조용히 표현했어. 나도, 타인도 다치지 않았어.”
그렇게 거리를 걷다 문득, 엄마가 걸었던 세상을 이제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나는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고, 시간의 흐름과 타인의 선택에 따라 나도 모르게 밀려나는 순간들을 겪는다. 그 안에서 조용한 불안을 느낀다. 뺐길 수 없는 마음과, 빼앗기는 고통. 그리고 쉽게 내어줄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 속을 걸어야 하지만, 이제는 달리기는 멈추고, 나의 속도로 걸어야 할 때라고 느낀다.
이 빵집은 익숙하면서도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주인과 인사를 나누진 않지만, 오늘은 새로운 빵을 권해온다. 그 말투엔 따뜻함이 있다. 그 또한, 닿아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빵집을 나서며, 한적한 오후의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 일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마음 한켠에 머물던 감정 하나를 이제야 천천히 꺼내어 바라본다. 서두르지 않고, 그저 고요한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