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즈의 딜레마와 밤하늘
어느 날, 한 여성이 희귀한 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약은 단 하나, 같은 도시에 사는 한 약사가 개발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 약은 제조 비용의 열 배가 넘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남편 하인즈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렸지만, 약값의 절반밖에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약사에게 간곡히 부탁했어요. “아내를 살릴 수 있도록, 제발 약을 싸게 주시거나 외상으로라도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나 약사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결국, 하인즈는 약국에 몰래 들어가 약을 훔쳤고, 그 약으로 아내는 생명을 되찾습니다.
무더운 여름은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한다. 나는 저녁의 색과 냄새가 좋아, 요즘은 매일 밤을 걷는다.
어릴 적 나는 ‘사람을 살릴 수 있어도 규칙을 어기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아내가 위독한데 약값을 감당할 수 없다면 약을 훔치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옳을지라도, 규칙을 어기면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그 규칙 안에 머물러 있는 감정은 누구의 책임일까.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나에게 너무 무거운 질문이었다.
지금 다시, 그 이야기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외면받는 세상 속에서,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누군가의 존재가 무너지기 전에, 나는 그 고통을 알아차리고 건너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고통이 말해져도 괜찮은 공간을 허락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 배웠던 하인즈의 딜레마를 떠올리며, 다시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2003)』에서, 아만다 암스트롱의 글이 신문에 실린 뒤 그녀의 안부를 걱정하던 캐서린 앤 왓슨의 물음에 동료들은 이렇게 답한다. "웰즐리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눈에 띄지 않는 거에요."
언어와 문화는 달라졌지만, 1950년대나 2025년이나 집단 속 상호작용은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정답이 없어 보이는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윤리적 감각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면, 꿈 같은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저녁 하늘, 구름이 달을 가렸다가 흘러가고, 다시 달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달은 밝아졌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나는 그 하늘을 정말 오래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하늘을 오래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문득, 구름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던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Cloud Study(1822)」가 떠올랐다. 19세기에도 인간은 구름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그것을 그려냈다.
‘나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밤하늘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이 달을 가릴 정도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처음 경험했다. 비행기를 타고 수많은 구름을 보았고, 그 안을 지나온 시간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 인간의 영혼과 감각은 여전히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너무 특별한 경험일까? 아니면 너무 흔한 감상인 걸까? 혹은, 늘 거기 있었지만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그대로, 밤하늘을 바라본다.
저녁밤, 숲속에 나는 그렇게 서 있다. 땅 위에 조용히 발끝으로 선을 그어보고, 그 선을 가볍게 건너간다. 그리고 건너오기 전의 자리를 바라본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Emilio Piano의 곡 『Maison』(ft. Lucie)는, 이런 내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그들의 질문이 그 공간에 머무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감정이 오래도록 그 안에 머물러도 괜찮기를 바란다.
오늘날은 고통조차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런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은, 한 존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고통이 말해져도 괜찮은 공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공간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삶을, 조용히 이어가고 싶다.
밤의 풀숲을 천천히 바라본다.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와 하늘 사이를 바라본다. 그 위에 별 하나가 떠 있다. 소나무, 밤하늘 그리고 별 하나는 마치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용히 놓여 있다. 지금 내가 반복하고 있는 이 일상의 루틴은, 내가 직접 만들어가고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눈을 다시 감아본다. 소나무와 밤하늘, 그리고 별 하나가 여전히 떠오른다. 이 장면은 이제, 눈을 감아도 그려질 만큼 내 안에 깊이 머물러 있다.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나는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당신도, 이런 질문 앞에 서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