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기: 그늘찾기

나는 누구와 시선을 나누고 싶었던걸까

by 호수를 걷다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산산조각 난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씩 줍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악마에게 묻습니다.

“왜 그들을 막지 않지? 왜 진실을 줍는 걸 그냥 두는 거지?”

그러자 악마가 조용히 대답합니다.

“오히려 그게 좋아. 진실은 완전할 때 가장 위험하거든.

그래서 진실을 줍게 내버려 두는 게 더 좋아. 그게 마음에 들어.”








비난의 감정이 너무 커질 때, 나는 무심코 모니터를 켠다. 그렇게 나 자신의 시간을 단절시킨다. 단절된 시간이 쌓일수록 마음의 공허감은 점점 짙어진다. 그런데 사람은 연속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단절감에는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결국 지치게 된다. 단절감이 단지 개인의 피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오래전 우솝 이야기에도,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등장한다.


영화 『송곳니』(2009)에서는 단절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드러난다.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가족 안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왜곡된 언어와 세계관을 주입하는 내용이다. ‘진실’과 ‘경계’, 그리고 ‘성장’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통제된 상태에서 억압된다. 진실이 없는 세계, 혹은 진실이 금지된 세계에서 긴장감이 비롯된다.


나는 존재가 어떻게 연속성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오래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들어, ‘어떻게 하면 왜곡된 세계 속에서 진실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을 안고 터미널을 걷다가 문득 비둘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지 않고,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부리를 쪼지 않는 비둘기들. 도심 속 비둘기는 군집으로 모였다가, 누군가 다가가면 시끄럽게 흩어진다.




나는 꽤 오랫동안,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했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고속버스와 전철을 탔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그땐,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길에서 매일 보고서와 논문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그때는 그게 즐거웠다.


문득, 똑같은 어느 요일, 정류장에서 내리던 어느 날. 가게 앞 판매대에 걸려 있는 도시 속 고양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정류장 앞, 캠퍼스 맞은편 거리에 작가가 그린 고양이 그림을 파는 가게였다.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풍경과 고양이 그림들이 전시된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림이 너무 예뻐요." 나는 감탄했다.

내 말에 가게 주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봐요" 그녀는 작지만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열 걸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안엔, 천천히 그림을 바라보는 나와 조용히 웃는 주인이 있었다. 나는 밤하늘 풀밭에서 책을 읽고 있는 고양이 그림, 달이 뜬 도심 지붕 위에 누워 있는 고양이 그림, 그리고 엽서 몇 장을 샀다. 그렇게 가게를 나오던 길. 그림이 구겨질까봐 가방 안에 조심스럽게 넣고, 수업을 들으러 가던 그 길. 괜스레 뿌듯했던 마음.


그때를 떠올려보자, 이성적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여겼던 마음에 감정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 뒤로도 나는 캠퍼스 건너편 그 길을 걸었고, 처음엔 그 가게를 의식했고, 그다음엔 스쳐 갔고,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길은 나의 한 장면이 되었다. 내 일부가 되었다.


고양이를 그리던 화가, 조용히 웃던 가게 주인, 그림 앞에 멈춰 선 나. 이들은 내 마음의 풍경이자, 시간 속에 자리 잡은 내 일부였다. 시간이 쌓이고, 지금의 나는 그것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지친 몸을 이끌고 산책하던 내 옆을 조용히 따라왔다. 그렇게 이 고양이는 나와 함께 걷게 되었다.



숲과 고양이는 시선을 부수려 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꺼내도록 강요하지도 않았다. 숲 속의 고양이는 자기 속도에 맞춰, 살며시 뒤로 다가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집 앞 풀숲의 고양이 같기도 할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비둘기와,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 이 생명들 사이에서, 나는 누구와 시선을 나누고 싶었던 걸까?


나는 햇볕이 뜨거운 한여름날, 그것을 피할 그늘을 찾고 있었다. 고양이가 지나는 숲처럼, 말없이 곁에 머물러 주는 공간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제서야,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앞만 바라보는 비둘기 같은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야 시간을 걷기 시작한다. 그래서 힘들다고 느끼는 지금의 나, 타인 그리고 세상을 지나치게 비난하지 않고 싶다. 힘든 일은 곧 지나간다. 그때를 그리워하게 되고, 회상하게 되고, 그리고 결국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어쩌면, 비둘기의 날개짓과 부리질은 사라진 능력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에게 돌아가는 길은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랫동안 걷지 않았던 길은 아닐까.



자신을 이해하고 다정하게 안아주는 연습은 고양이의 걸음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게 나다워지는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감각을 느껴보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언어로 풀어내는 중인 것 같다. 그렇게 하나씩 언어를 붙잡고 나면, 그동안 손에 잡히지 않던 어려운 의문들이 조용히 손안에 들어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직 모든 말이 다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조용히 흔들림을 인정해 본다. 흔들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이, 사실은 감정의 파도였다는 것을 이해해 본다. 흔들림이 있다는 건, 아직 내 안에 감각이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그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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