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기: 소리 없이 휘파람 따라 부르기

힘이 날 때까지, 힘을 빼고 싶을 때가 있어요

by 호수를 걷다




“왜 이렇게까지 힘이 빠진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며드는 날— 나는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는 숲속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한때는, 거칠게 없었고 무모하기까지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고, 그 사실 자체가 두려웠다. 이런 이야기들은, 좀 더 나이가 지난 후에야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들어왔고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지금까지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들은, 도리어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나는 지금,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때로, 말로 서로를 너무 많이 다치게 한다. 그 말들이, 오히려 마음을 더 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를 통한 연결 외의 가능성을 닫지 말아야 한다. 슬픔이 지나간 뒤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다른 감정이 필요하다. 그런 감각이 필요하다. 그 감각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존재가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붙잡고 있는 나— 그런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말해주어야 한다. ‘나의 감각은, 다른 사람의 감정적 소용돌이와 똑같지 않다.’고.



답답한 마음에, 집안을 천천히 걸어본다. 한때는 편히 쉬던 이 공간이, 이상하리만치 쉽게 위로되지 않는다. 어느 공간에 갇혀보지 않고는, 시간이 이렇게 길고 아프게 흐를 수 있다는 걸 몰랐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그 장면 속에서 소리 없이 절규하는 모습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방에 한 번쯤 들어간다. 나는 그 감정들을, 닿을 수 없는 언어들로 애써 설명하고 해석하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감정들 앞에서 솔직해지고 싶다.


문밖 뜰로 나가본다.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기 위해, 천천히 호흡을 따라 내 안의 무게를 아래로 흘려보낸다. 얽히고설킨 머릿속을, 가만히 아랫배 아래로 내려보낸다. 지붕 아래로, 얇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곳에 있었던걸 행복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곳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나는, 이 절망감을 풀어낼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다. 피할 수 없는 시간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그곳에 있었기에, 비로소 경험하게 된 것들을 조심스레 이해해보기로 한다.


부슬비가 내리는 숲속을, 이 마음과 함께, 천천히 걸어본다. 이제는,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건 어쩌면—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조용한 선언 같기도 하다. 소외와 고독 속에서 조금씩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들, 그 안에서 천천히 삶의 결을 찾아가는 ‘카모메 식당’처럼. 나도, 힘이 날 때까지, 충분히 힘을 빼고 싶다.



정말, 영화와 숲은 마음을 쉬게 해주는 힘이 있다. 가끔은, 배우들이 스크린 위에서 보여주는 그 한 장면 속 연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사람은, 그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해낸 걸까?’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 와일더가 혼자 거리를 걸으며 휘파람을 불던 장면을 떠올리며, 나도 조용히 휘파람을 따라 불러보기도 했다. 입모양을 따라 하다 보면, 감정이 조용히 투영되는 것 같다. 휘파람은 불지 못하지만, 그 감정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가 바깥으로 흩어지고, 또 흘러간다. 그 장면은, ‘왜 하필 지금,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질문에 조용히 응답하는 것만 같다. “사람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을, 살아낼 수도 있어요.” 마치 그렇게,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다.

또, 『귀를 기울이며』에서 시즈쿠와 유코가 함께 부르던 ‘Country Roads’의 리듬에 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기도 했다. 그 노래의 박자처럼, 그 장면의 여유로운 공간에 나를 조심스레 겹쳐본다. 그리고 나면,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페르마타의 느린 선율이 마치 인생의 한 챕터를 조용히 마무리해주는 듯하다. 감당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 그렇게 조용히 흘러나간다.



그렇게, 외면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이해해본다. 그건, 그 선택을 한 사람에게는 분명 그 나름의 맞는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선택이 실패한 경험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천천히 이해해본다. 이건 어쩌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같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외면하지 않고, 앞으로의 나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려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감정의 파도가 조금은 잔잔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필요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저 잘해보려 애쓰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것이. 그리고 그 마음을 바라보는 지금— 이 느낌은 참 따뜻하다. 어쩌면 우리는, 수긍하는 척이 아닌, 정말로 함께 걷는 것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나는 이제, 텅빈 공감의 말보다는 감각으로, 슬픔보다는 따뜻함으로— 다시 연결되고 싶다. 그렇게, 내 곁의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진다. 이제야, 가깝지만 멀어졌던 사람들과 팔짱을 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무들을 바라본다. 내가 걷고 있는 뜰 앞 숲속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서 있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다. 큰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느티나무 두 그루. 이제는, 그 나무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아, 나는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이 세 그루의 나무에 관심이 가는구나. 가장 앞에 서 있는 이 느티나무를 나는 좋아하는구나.’ 비 오는 날, 촉촉하게 젖은 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이해하게 된다. ‘아, 나는 좋아하는 것이 있고, 마음이 머무는 대상이 있구나.’


조금 더 넓은 숲속 길을 걸어본다. 매미소리가 가득한 그 숲에서 눈을 감고 천천히 내 감각을 느껴본다. 고요하다. 여름날 촉촉한 숲의 향기가 코끝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눈을 뜨면,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빛이 반짝인다. 나는 잠시, 그대로 멈춰본다. 그렇게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걸 조용히 인정해보는 것만으로도, 풍경이 나의 감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나의 감정을 투영하지 않아도 풍경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고요히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러 본다. 가만히, 숲속의 소리를 들어본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빗방울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숲의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도 더 고요해진다.








“감정은 말보다 앞서 떠오르고, 감각은 표현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그 사이의 시간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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