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다정한 리듬을 배우는 시간
“산책을 해 본적 있나요?
햇살, 바람, 나무의 흔들림, 고양이의 리듬에 발맞춤…
나는 지금 이곳에 있어요.
함께 걸어요“
나는 두려움과 걱정의 시선이 힘들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바라보는 일은, 내게 정말 아픈 경험이다.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연민으로 바라보기’라는 시도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연민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실천이었다. 그 어려운 시선은 지금의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폭력 대화법(Marshall B. Rosenberg, 1999)’은 연민을 실천하는 다정한 말들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 말들을 나에게도 적용해,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한동안 나는, 나의 뿌리와 세상의 여러 흐름을 바라보며 깊고도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시선들이 들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시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선만 응시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 시선을 바라보는 나를,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나를 바라보기 위해, 나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연민을 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또,
세상에서 유용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또 다시 나를 잃게 된다.
세상은 ‘유용함’을 곧 ‘생산성’으로 측정하고, 그 자체를 삶의 의미로 삼는다.
이상하게도, 노력할수록 갈망은 커지고, 만족은 점점 멀어진다.
나는 그 지점에서 잠시 멈추었다.
‘만약 이 멈춤이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조용히 스쳐간다.
의외로, 사회에는 멈춤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공간도 꽤 많았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의 다른 모습들과 삶의 고유한 리듬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빠르게 달려야만 하는 시기도 분명 있다.
하지만 달리기를 멈췄을 때, 삶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더 솔직하게 풀어가기 위해, 나는 이제 생산성만을 삶의 의미로 두지 않기로 했다.
삶과 존재에서 의미를 찾는 ‘의미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생산성’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두 감각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다.
이런 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시선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두려움과 걱정의 시선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가끔, 나를 향한 그 걱정이 정말로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더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건지 혼란스러웠어요. 그 걱정 안에 담긴 사랑은 느껴졌어요. 그런데 가끔은, 그 사랑이 당신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는 슬펐어. 그건 내 감정이야.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이야.’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어려운 질문들을 혼자 품고 가는 일은 내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그 마음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잠시 멈추고 싶어진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그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는 조용히,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선다.
나는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바라보며 작은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무 기둥을 손끝으로 만져본다.
평소에 눈인사만 건네던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를 따라온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면, 매일 불빛 속에서 어지러웠던 눈에 조용히 스며들어 눈을 감게 만든다.
그 따뜻한 온기—
산책하는 숲속엔 낮의 평화로움이 고요히 머물고 있다.
그저 산책에 충실한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느껴진다.
매일 산책을 하다 보면, 조금씩 그것들과 가까워진다.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숲속을 걷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나를 따라오고 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고양이의 발걸음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그 걸음에 조용히 나를 맞춰본다.
고양이와 함께 걷는 숲속은 참 여유롭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숲속에 그냥 머물고 싶어진다.
그럴 땐 잠시 벤치에 앉아본다.
고양이들이 내 앞에 다가와, 말없이 자리를 잡는다.
발밑에서 햇살을 맞으며 바닥을 뒹구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렴풋하게 잃어버렸던 자유로운 감각들이 서서히 떠오른다.
가령, 어릴 적 두 발 자전거를 타다가 처음으로 두 발을 떼었을 때 느꼈던— 그 자유로움 같은 것.
그렇게, 나는 조용히 위로받는다.
책상 앞에 돌아와 앉아, 멀리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숲속을 걷던 그 감각이, 조용히 나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이 있을까?’
나는 조용히, 작고 다정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그러니 산책하며, 함께 의미를 찾아보자—. 우리만의 리듬으로.”
“말 없이도 걷는 걸음 안에서, 의미는 천천히 찾아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