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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Jul 24. 2019

게사자

꽃게철을 기다리며

  언제부턴가 꽃게철이 되면 엄마 아빠는 나에게 꽃게탕을 해주셨다. 정확하게 말하면 꽃게탕을 만드는 것은 엄마였고, 아빠의 역할은 ‘오늘부터 2-3일간 꽃게탕만 먹더라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꽃게탕 단일화 식단 재가’에 가까웠다. 이틀 이상 같은 국이 상에 올라오면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 엄마에게 각종 언어 공격을 하시는 아빠와, 그런 아빠의 공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메뉴 상관없이 늘 휴가 나온 이등병 같이 집 밥을 우걱우걱 먹어대는 아들과 늘 하굣길 여고생같이 떠들면서도 먹어대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시던 엄마가 그런 극적 타협을 하시는 주 이유는, 내가 꽃게탕을 정말 끝내주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나를 부르는 수많은 별명 중 ‘게사자’가 있는데, 해산물을 섭취하지 않는 사자의 취향(의 문제 일지 가능의 문제 일진 모르겠지만)에도 불구하고 붙은 이 별명은 내가 꽃게를 잔인하게 뜯어먹는 모습에서 기인했다. 사실 멸종시키다시피 뜯어먹는 모양만 놓고 보면 ‘게 하이에나’에 가깝긴 하다.


  엄마의 꽃게탕은 구수한 된장 국물에 푹 익은 무와 고추가 충분히 들어간, 꽃게 된장찌개에 가까운 탕이어서 국물만 먹어도 그 시원함이 말로 다 하기 힘들 정도다. 거기에 제철이라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를, 게딱지를 제거하고 십자 모양으로 잘라서 넣고 끓이면 완성이었다. 물론 엄마에겐 양념이니 국간장이니 뭐 그런 구체적인 레시피가 있으셨겠지만, 굶주린 게사자에게 꽃게와 그것이 몸을 담그고 있는 국물 말고는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꽃게는 부위별로 살의 배치가 미묘하게 다른데 한 마리를 네 등분했을 때 집게발이 있는 부분과 나머지 다리들이 있는 그 아래 부분을 비교하면 아래 부분의 살이 월등히 많다. 닭고기로 말하면 닭다리의 봉과 같은 느낌의 쫄깃한 살이 몸통에서 다리 연결 부위까지 빼곡히 차 있다. 이 쫄깃한 살을 게 껍질 채 와앙, 씹어 물면 물론 구강기적 만족감이야 훌륭하지만 껍질 때문에 살 부분은 씹혀서 밀려 나온 부분만 먹게 되는 단점이 있다. 이것은 힘들게 게를 사서 손질하고 요리해주신 엄마에 대해서도, 수 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경매를 통해 게를 낙찰받은 상인에게도,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이 게를 잡아 올렸을 어부에게도, 수 십일의 시간 동안 밤낮없이 파도로 품어가며 게를 키워냈을 서해바다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다분히 대승적 차원에서, 나는 게의 모든 부분의 살을 젓가락으로 일일이 발라내 밥그릇에 소복이 쌓아 올린다. 다리가 달린 상태에서만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몸통과 다리가 연결된 모든 관절을 해체해서 그 사이에 있는 살과 다리(그렇다, 집게발 바로 밑에 있는 젓가락만 한 얇은 다리도 포함한다)의 살들을 모두 긁어내고 뽑아낸다.


  여기에서 또 아빠의 지난 역할이 빛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취학도 하기 전부터 소위 말하는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젓가락질을 엄하게 배웠다. 숟가락 끝에 살짝 갈퀴가 나 있는 숟가락 포크의 사용은 3-4살에서 끝났고, 그 이후로는 밥상이 얼마나 난장판이 되는가는 상관없이 온전히 숟가락과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해야 했다. 대여섯 살 어린이가 아무리 어린이용을 쓴다지만 보조도구의 도움 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빠는 ‘할아버지가 힘들게 농사지으신 쌀을 남기거나 흘려서는 안 된다’ 하시며 흘리거나 튄 밥알도 모두 주워 먹게 하셨다.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은 그 밥상머리 교육을 몇 년 받고 나니, 나는 콩자반 하나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가끔 반찬에 있는 머리카락을 젓가락으로 집어내는, 젓가락질을 제일 잘하는 초등학생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배운 젓가락질로 게의 살만을 꼼꼼하게 발라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은 뿌듯함과 신기한 것을 보는 호기심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한심함이 섞여 있다. 한 숟가락 정도의 게살을 발라내는 건 생각보다 긴 시간과 손의 더럽혀짐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이기에, 나는 웬만큼 배고프지 않은 이상은 밥 한 공기에 비벼먹을 만큼의 게살을 모두 발라낸 뒤에야 식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상식적인 수준의 꽃게탕 섭취-꽃게 껍질 채로 와앙, 깨물어 먹는-로 한국인의 평균적인 식사 시간을 지킨 다른 가족들은 아직 밥 한술도 뜨지 않고 게만 파고 있는 나를 향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식탁을 떠난다.


  방망이 깎는 노인의 고집과, 거친 바닷속 상어와 싸우던 노인의 모습으로 꽃게를 분해했고 마침내 쇼생크 탈출에 성공한 빗속 탈옥수의 모습으로 나는 수북이 쌓인 게살에 꽃게탕 국물을 가득 적셔 밥과 야무지게 비비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사라졌던 가족들이 어디선가 다가와 다시 식탁 앞에 앉으며 나에게 대단하다, 역시 게사자는 다르다, 그거 참 맛있겠다며 말을 걸기 시작한다.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게살 비빔을 쫩쫩거리며 한 술씩 떠먹는 나에게, 그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한입만을 외치며 얼굴을 들이민다. 아기 제비들 같은 모습에 한 숟가락씩 먹여주고 나면 다들 엄지와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나머지 식사를 풍족하게 즐긴다. 짭조름한 된장 베이스 국물 사이로 게살의 쫄깃한 식감, 달큰한 향, 청양고추의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까지-. 한 숟갈 한 숟갈이 예술이고 배가 불러오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다.  


  어린 시절에 배운 대로 밥공기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게살 된장 국물과 함께 싹싹 긁어먹고 나면 그제야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내 밥그릇 주변과 내 옆에 산처럼 쌓여있는 게 껍데기가 보인다.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어만 놓아도 훌륭한 일반쓰레기가 될 수 있을법한 비주얼이다. 한 술 얻어먹고 사라진 줄 알았던 엄마는 다시 식탁 앞을 지나며 그 위용에 감탄하면서, 게랑 원수진 거 있냐는 칭찬인지 악담인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웃곤 하셨다.


  함께 살던 삽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한번씩 본가에 들를 때와 꽃게철이 맞으면 엄마, 아빠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꽃게탕을 권유하신다. 한 때 ‘쟤는 잘하는 것이 게 파먹는 거밖에 없는 건가’ 싶은 시선도 있었지만, 떨어져 사는 만큼 더 애틋해지는 건지 가족들은 내가 게를 해체하는 모습을 마치 먹방 보듯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맛집들을 많이 알게 되고, 엄마의 꽃게탕보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맛보았고, 사회적 지위도 있겠다, 이젠 예전처럼 목숨 걸고(?) 게를 파먹을 욕심은 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기대 가득한 눈웃음으로 식탁에 앉는 가족들을 보면 ‘그래, 여기 아니면 어디서 식탁에 이거 저거 다 튀겨가며 꽃게를 파먹어보겠나’ 하며 젓가락을 열심히 놀리게 되는 것이 참 웃기면서도 애틋하다.


  올해도 가을이 되면 부모님은 꽃게탕을 먹자며 수줍은 연락을 해오실 것이다. 나는 이젠 어른이고 게 한 마리 먹겠다고 한 시간씩 손가락에 쥐날 정도로 젓가락질할 의지가 없다고 괜히 한 번 튕겨보다, 늘 그랬듯이 식탁에 앉아 목과 손을 풀 것이다. 먹고 싶은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꽃게 살을 발라내서, 맛있게 비벼 사랑하는 이들과 한 입씩 나눠먹을 것이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렇게 꽃게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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