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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Dec 06. 2019

산티아고 가는 길 - 셋째 날

Viskarret - 비야바(Villava) (30Km)



  새벽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지만 밖의 풍경은 너무 어둡고 또 추워서 집을 나선건 7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까미노 표지판을 보기엔 너무 어두워서인지 마을을 나서며 길을  잃을 뻔했다. 뒤 따라올 JH를 위해 내가 잘못 들어간 지점에 돌멩이로 화살표를 만들어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희미한 새벽빛 속에서 걷다 Lintzoain 근처의 낮은 담벼락 위에 앉아 뜨는 해를 바라보며 어제 만들어둔 샌드위치와 물로 아침을 먹고 또 걷기 시작했다.


옛말 틀린 거 없다. 해뜨기 전이 제일 어둡다.
이른 새벽엔 헤드렌턴으로 제대로 비추지 않으면 까미노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뒤 따르는 다른 순례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돌멩이로 화살표를 만들어본다



  어둠은 그리도 무서웠건만 등 뒤에 있을지언정 태양이 비춘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행복해졌다. 햇볕의 열기에, 오르막을 오르는 숨 가쁨에, 언제 추웠나 싶게 더워져서 겹겹이 껴입은 옷들을 하나씩 벗어 허리에 걸치고 배낭에 묶었다.


  소나무 향 가득한 능선길을 걷다 내리막으로 걸을 때쯤 왼쪽 발등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첫 부상(?)인가 싶어 발을 봤는데 긁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신발에 뭔가 끼어 걸린 건가 싶어 탈탈 털어봐도 뭔가 나오는 게 없다. 앉은 채로 발을 까딱거릴 때는 아픈 증상이 하나도 없다.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만 아픈걸 보니 발가락 건이 좀 놀란 것 같았다. 쉬면 낫는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의사들의 주 레퍼토리가 떠올랐지만 다음 예약해둔 숙소까지 20km 넘게 남은 상황에서 쉬는 건 무리다. (그리고 가까운 마을까지 가려고만 해도 두 발 외엔 수단이 없다) 임시방편으로 신발의 발등 부분에 손수건을 끼워 넣어 약간의 쿠션을 만들고 최대한 덜 절뚝거리며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갔다.


  어제 출발한 사람들의 목적지, 주비리(Zubiri)에 도착해서 간단히 요기를 하러 공립 알베르게 맞은편의 bar에 들어갔다. 구글 후기에 닭날개 구이가 맛있다는 (치킨 전문 민족) 한국인의 리뷰가 있어서 주저 없이 그걸로 시켰는데 사장님의 표정이 약간 미묘했다. 아마 ‘다들 아침으로 오믈렛, 빵, 커피 같은 가벼운 걸 먹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치킨을 먹는 이 녀석은 뭐지...?’의 눈빛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먹은 치킨은 정말 훌륭한 맛이었다! 굽네치킨보다 조금 더 맛있는 맛? 맥주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테지만 아직도 갈길이 구만리라 참았다.


 

맥주 안주로 먹었다면 더 훌륭했을 닭튀김


  가게 앞에  있는 작은 식수대에서 물 받아 물통에 가득 채우고 또 걷기 시작했다. 좁은 오르막길을 한참 걷다 보니 나온 작은 마을 입구의 쉼터에 바스크 지방이라는 안내판과 스페인어-영어-바스크어 단어가 적힌 안내문이 수십 장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페인 땅에 들어온 지 삼일째, 이제 겨우 눈 마주치면 Hola 하고 인사하고 계산하고 나서 Gratias 하는 게 입에 붙기 시작했는데 이 동네에선 또 다른 말을 해야  한다니.... 일단 종이를 잘 챙기고 잠시 물 마시고 쉬면서 동네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며 햇볕 받는 걸 구경했다. 까미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대로변, 길가에서 어떤 위협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어서 왠지 안심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스페인의 고양이들. 귀찮아하는건 한국의 고양이들과 같았다.




까미노 옆에 있는 집의 마당에 있던 순례자 조각상.

 

   역대 가장 많은 거리를 걷고 있다. 무려 30km의 여정. 그것도 바로 전날 5km 걷고 그 전날엔 25km를 걷고서. 햇볕이 쨍쨍한 오후 1시가 되어도 목적지는 한참 멀리 남아있고, 먹은 것은 많이 없는 상태라 점점 집중력이 떨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쓰러지진 않아야 하기에 물과 초코바를 가끔 섭취하며, 삐그덕거리는 발등을 달래기 위해 1시간 30분~2시간마다 쉬어가면서 목적지 직전의 마지막 오르막길(에 이은 내리막길)을 울다시피 걸어 해가 점점 넘어가는 5시를 넘겨 예약해둔 숙소가 있는 비야바(Villava)에 도착했다.




  팜플로나의 근교 도시인 비야바는 아르가 강가의 작고 예쁜 마을. 도시의 깔끔함과 시골의 여유로움을 다 가지고 있는 동네였다. 체크인하려고 들어간 숙소의 리셉션엔 엄청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고 내 앞, 앞에 서 있던 사람들부터 숙소에 자리가 없다고 택시를 태우기 시작했다(마지 그저께의 나처럼!). 이런 사태를 우려해 미리 숙소를 예약했더 나는 아이 해브 어 레저베이션을 외치며 리셉션에 여권과 돈과 크레덴시알(순례자여권)을 바쳤다.


  규모가 꽤 큰 알베르게였고 씻고 빨래하고 나왔을 때 어제 같이 묵었던  JH와 길에서 몇 번 마주쳤던 대만인 쑤위엔을 다시 만났다. 가는 길이 한 길이고 하루에 걷는 양이 비슷하다 보니 이렇게 자주 만나게 되나 보다.


  까미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목표했던 지점에서 잘 수 있게 된 기쁨에 낯선 순례자들과 와인잔을 기울이다 밤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유튜브에 영상이 있어요~)




https://youtu.be/tjqPkhxTy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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