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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Jan 16. 2020

산티아고 가는 길 - 여섯째 날

푸엔테 라 레이나 - 비야투에르타 (16km)

 



빗 속을 걷는 순례자



 전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하며 일어났는데 다행히 비는 오고 있지 않았다. 씻으러 나와 바라본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둔기로 써도 될 만큼 딱딱한 빵을 우걱우걱 씹어 아침으로 먹고 먼동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전날 지친 상태로 기어가듯 걸어지나간 레이나 다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구경하고 뒤 돌아 까미노를 걷는다. 잠깐 평지를 걷나 싶었는데  어김없이 경사로가 나타났다. 그것도 급경사! 땀이 훌쩍 났지만 겉옷을 벗으면 더 추울 거라 그대로 걸었다. 


  첫 번째 마을 마녜루에서 물통에 물을 다 채우고 거리 구경하며 걷다 두 번째 마을 (여기도 언덕 위의 마을이었다)시라우키에서 비가 시작되는 걸 보았다. 재빨리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서 휘릭 덮어쓰고 계속 걸었다. 폼만 보면 우비 여러 번 착용해본 사람 같았겠지만 사실 순례길 여정중 처음 만난 비였다. 


  시라우키의 시청 건물의 터널 같은 통행로를 지나며 스탬프를 찍고 요새 느낌의 언덕 언덕인 마을을 구비구비 돌아 역시 급경사인 내리막을 (비가 오니) 조심히 내려가서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 바깥엔 로마 다리라는 오래된  다리가 있다는데  쏟아지는 비에 발 밑만 살피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길가의 포도밭에서 포도 한두 개씩 따먹거나 기념사진 찍는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와인이 유명하다는 리오하 지방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포도나무가 있는 집. 열매가 매달린 채로 썩어가는 걸 보니 먹으려고 키우는 포도는 아닌 듯했다.


  11시쯤 되어 로르카라는 마을에 도착했는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한국어 안내문구가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 중인 알베르게가 있었다. 호세라는 남편분과 함께 반갑게 맞아주시며 방금 만들었다는 리조또를 권해주셨다.



로르카의 호세네 알베르게 1층 bar에서 점심으로 먹은 빠에야. 큰 솥에 있던 빠에야 한 주걱을 턱 하고 덜어주셨다.




 따뜻한 밥(... 이라기엔 스페인 쌀이지만;) 와이파이, 가게 안에 울리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유튜브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가 오늘의 목적지 비야투에르타로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오른쪽 고관절이 조금씩 삐그덕 거렸고 다 그친 줄 알았던 비는 한두 방울씩 또 떨어지기 시작했다. 힘겹게 도착한 알베르게는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고 배정받은 방은 단층 침대라 편하게 쉬다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야투에르타에서 묶은 숙소. 단층침대라 여유롭게 쉴수 있었다. 저녁식사자리. 메인디쉬를 기다리고 있다.



  아기자기한 알베르게에선 순례자메뉴도 제공하고 있어서 그걸 먹기로 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라고 말은 들었지만 생각만큼 양이 많지 않아 조금 슬픈 마음....을 와인으로 달래기로 했다. 옆자리에 앉아 와인을 나눠마시며 이야기를 하게 된 나이 지긋한 미국인, 영국인 부부 순례자는 재미있었고 매너도 좋았다. 종교 이야기, 제주도 이야기, 런던의 물가와 집세, 전 세계적인 경제적인 세대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분명 나의 영어수준은 아임파인땡큐 정도인데 어떻게 저런 복잡한 대화가 가능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역시 스페인 와인은 일시적 언어능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는게 분명하다.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

https://youtu.be/Pt2RIfEN_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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