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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Mar 31. 2021

산티아고 가는 길-스물아홉 번째 날

오 세브레이로 -트리아카스텔라(20km)



등 뒤의 산으로 뜨는 해라 일출이 더딘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산길에 오르막이 왜 나와..?



  5시 30분 알람이었지만 오늘도 알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꿀잠을 자버렸다. 이틀째 먹고 있는 베드 버그 약이 정말 대단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 마을 구경하면서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데사유노(아침메뉴)를 제공한다는 가게를 보아둔 참이라 거기로 갈까 했는데 6시 반에 나와도 문을 안 열었길래 다시 숙소로 돌아와 가지고 있던 빵에 마요네즈를 간단히 찍어 먹고 6시 50분쯤 출발했다.

  어제 이 산의 정상(?)까지 올라왔으니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이다. 하산 길이긴 해도 도로가 나 있어 위험하진 않았지만 어두운 숲 사이를 걷는 데다, 어쩐지 하산길인데도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니 금세 지쳐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첫 번째 마을인 리냐레스에서 문 연 바가 있었지만 평도 별로고 아직 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지나쳤다. 그 뒤로 해가 뜨고 바도 없는 아주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쳐서 파도르넬로에 8시 50분경 도착했다. 드디어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두 번째 아침을 먹는다. 그런데 산동네라 그런지 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커피와 또르띠야만 시켰는데도 가격이 4.5유로라 내 뒤에 줄 선채로 내 주문을 듣고 있던 한국 순례자분들이 다들 뜨악해하셨다. Z커플, H 그리고 JS과 L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다른 지역에 비해 꽤나 비쌌던 또르띠야와 카페. 물론 맛있었다.



   가게에서 키우는 것 같았던 아주 큰 개와 잠깐 놀면서 쉬다가 다시 짐을 싸매고 출발했는데, 마을에서 갈라지는 길에서 나 혼자 산길을 선택했다. 다른 분들은 차도 옆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셨는데, 산 쪽으로 가는 길이 더 뷰도 좋고 전통적이라는 가이드북의 설명(?)에 난 주저 없이 그 길을 골랐다. 덕분에 구뷔구뷔 산이 펼쳐지는 파노라마틱한 뷰를 혼자 감상하며 갈 수 있었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햇살이 내려와 밝고 맑은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었다.





갈리시안 수프에 고춧가루(아마 파프피카) 추가 한 사발. 이 길을 지나는 한국인이면 멈춰설 수밖에 없다.

 

  한참을 혼자서 걷다 11시 반쯤 비요발에서 아까 헤어졌던 한국사람들을 다 다시 만났다. 두어 번 마주치기만 했지 통성명은 하지 않은 한국 남자분 두 분과도 다 같이 합석해서 이 바의 특산품(?)으로 파는 시래기 국과 밥을 함께 먹었다. 갈리시안 수프는 어제도 한 번 먹었지만 밥과 같이 먹으니 정말 시래기 된장국 느낌이 난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비록 한국의 찰진 쌀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쌀로 밥까지 해서 함께 내어 준다. 칼칼하고 매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많았는지 , 바의 직원은 내게 '고춧가루?' 하고 한국어 발음으로 물어주기까지 했다.  Z가 들고 다니던 후춧가루와 바에서 받은 고춧가루 같은 파프리카 가루까지 시래기국에 뿌려서 밥에 말아먹으니 꽤나 훌륭한 점심식사가 되었다.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아 만족스러운 점심식사와 발 말리기까지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같이 걷던 사람들과는 걷는 속도 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난 빨리 걷고 자주 쉬는 편이라, 걸을 땐 앞서가다가도 쉴 때 앞에서 제쳐온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올라, 부엔 까미노를 가끔씩 반복하며 아름다운 오솔길을 한참 걸어 드디어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했다.  







  까미노상에 있는 많은 마을과 비슷하게 이 마을도 길을 따라 길게 형성이 되어 있었다. 내가 예약했던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하고, 1층 베드를 배정받고서 샤워 빨래하고 짧은 낮잠을 잤다. 동네 산책 겸 구경 나왔다가 점심을 빨리(?) 먹어 배가 허해진 것 같아 마을의 평점 좋은 바/레스토랑에 들어가 뽈뽀에 맥주 하나를 간단하게 마셨다. 누군가는 갈리시아의 뽈뽀를 두고 한국의 가볍게 데친 문어회와 비교하며 쫀득한 식감이 없어 맛없다는 평을 남겼지만 이가 약한 나는 푹 익혀 부드러워진, 그리고 많이 맵지 않게 양념한 뽈뽀가 꽤나 맛있었다. 바에 앉아 문어를 먹으며 남은 일정, 산티아고까지의 알베르게를 모두 예약했다! 이제 남은 일정 큰 무리 없이 걷기만 잘하면 된다. 



늦은 점심 겸 첫 번째 저녁. 뽈뽀(문어)요리





  작은 마트에서 물과 미니 양주 몇 개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는데, 숙소 문 앞에 미사 시간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마을 구경하면서 슬쩍 본 성당이 그냥 유적지가 아니고 성당으로 쓰고 있는 성당이었던 거다! 웬만한 일은 다 해놨고 저녁 식사도 급하지 않아 잠시 기다렸다가 미사에 참석했다. 


  반주자도, 성가대도, 해설도, 심지어 독서도 없어서 1 독서 직전에 신부님이 지원자를 받아서 독서를 봉독 했다. 복음 전에 '알렐루야'하는 부분에서 신부님이 혼자 화음을 넣으셔서 속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가톨릭 어플에 그날그날의 매일 미사가 있어서 난 그걸 보고 독서와 복음을 들었는데, 강론만큼은 (당연하게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산티아고 아포스톨,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아 야고보 사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것 같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어 그냥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바로 뒤편에 있는 개천 옆의 넓은 공지를 잠깐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러 아까 그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늦은 점심(혹은 간식)으로 먹었던 뽈뽀가 맛있었기도 했지만 다른 정식 메뉴들이 괜찮다는 구글 평이 있어서,  잘 먹고 간다고 인사한 지 2시간 만에 다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스타터와 메인디시. 그리고 인심좋은 와인 한 병까지 모두 순례자 코스다.





  전채로 시킨 건 시푸드 수프였는데, 얼핏 봐선 해물탕에 짧은 칼국수를 넣은 느낌이었다. 국물은 정말로 꽃게탕 맛이었다! 소주가 생각나는 국물이었지만 이곳에선 구할 수 없으므로 눈앞에 있는 와인잔을 홀짝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메인 디시로 나온 건 소 혀 스튜였다. 낯선 음식을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고, 리뷰에서 굉장히 맛있다는 평이 있어서 용감하게 시켰는데 쓸데없이 뛰어난 상상력이 자꾸 머릿속에서 소의 혓바닥을 떠올리고 있어서 눈앞의 맛있는 요리와 매치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몹시 힘들었다. 물론 평대로 맛은 있었지만, 역시 사람은 평범하게 먹던걸 먹어야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틀 연속 저녁밥이 뽈뽀와 정식 코스요리다. 제 아무리 하루에 20km 넘게 걷는다고 해도 이 정도로 계속 먹어대면 살이 잘 오른 채로 산티아고에 도착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동영상을 보시는 부모님은 제대로 못 먹고 고생하며 걷는다고 걱정은 덜 하시겠단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유튜브 동영상도 있어요~




https://youtu.be/GYuhTTCFOE0


https://youtu.be/2rpIgS27c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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