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정신없이 보냈던 1~2년이 지나가고, 내게도 첫 인생 노잼 시기가 찾아왔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내가 추구하는 삶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삶이 이루어지자 1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졌고, 하루가 충만하지 않고, ‘앞으로 이런 하루를 반복하며 살다가 죽는 걸까?’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인생의 목적이 없는 것 같고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이 나라는 사람을 지우고 사회를 이루는 작은 나사못 49238번으로 만드는 듯했다. 인생 자체에 대한 번아웃이라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시기는 그게 나에게 찾아왔던 것처럼, 어느 순간 없어져 있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찾아오곤 했다. 그러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나의 인생 노잼 시기가 오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나의 경우는 적당히 많은 양의 해야 할 일들이 반복될 때 노잼 시기가 시작된다. 예를 들면, 화요일의 분리수거, 수요일의 욕실청소, 목요일의 부모님께 안부전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들이 이어졌다.
이런 일들의 특징은 그날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처리해도 딱히 티가 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쉽게 미루게 된다. 그렇게 하루가 밀리면 다음날과 다다음날은 더더욱 밀리게 된다. 9월 중순에 ‘가을 옷으로 옷장정리를 해야지.’하고 마음먹었지만 할 일을 미루다 보면 계절이 지나가 패딩을 꺼내게 된다. 화요일에 분리수거했어야 했지만 목요일로 미루고, 목요일도 놓쳐서 일요일로 미룬다. 이 과정이 모든 일상생활에서 일어난다. 그럼 아침부터 머릿속이 ‘해야 할 일 리스트’로 꽉 차게 된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잠자리에 누워서 ‘해야 했는데 못 한 일 리스트’를 곱씹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는 매일 ‘못 한 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오늘 하루가 정말로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못 했던 일을 다시 내일 몇 시 즈음에는 꼭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눈을 감는다. 눈을 뜨면 다시 보이는 집안일, 머릿속엔 해야 할 일, 그리고 이미 질려버린 내가 있다.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질렸다는 것은 곧 살아간다는 일에 질린다는 것과 같다. 해야 할 일(그러나 하지 않은 일)만 가득한 인생은 노잼인 것이 당연하다.
이 시기를 탈출하고자 친구들과 약속을 잔뜩 잡는다. 친구들과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하면서 지금 인생 노잼 시기라고 이야기하면 위로와 조언을 듣고는 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해 봐. 운동은 어때?” 나는 그러한 조언에 담긴 따뜻한 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조언으로 정말 새로운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다. 그땐 그저 인생 노잼 시기엔 모든 것이 다 노잼이라 새로운 것도 노잼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존의 일상을 나의 맘에 드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동력조차 잃어버렸기에 새로운 것을 알아보고 시작할 동력 또한 없었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렇다고 그 모든 ‘해야 할 일 목록’을 어디로 던져버리고 자유와 인생 예스잼을 찾을 순 없었다. 눈을 뜨면 먼지와 머리카락이 보였고, 사회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결국 나는 ‘해야 할 일 목록’을 끌어안고 살다가 일이 너무 바빠져서 인생이 재미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게 나의 유일한 노잼 시기 극복 방법이었다. 어느 날 아침 필사를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래서 인생이 재미없어. 근데 그게 왜 재미가 없는 이유가 되지?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인데.’
내가 ‘해야 할 일 목록’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해야 하는 일과 살아가는 일은 다른 것인데, 나는 그것을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가 해야 할 일로 가득 차버리니 그렇게 착각하고 말았다. 이를 혼동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삶도 해야 할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해야 할 것은 대체로 하기 싫지만 사회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마치 어린 시절의 구몬 학습지와 같은 일이다. 앞으로의 삶이 모두 구몬 학습지로 가득하고 나는 영원히 구몬 학습지로부터 도망가는 삶이라면 당연히 재미없을 것이다. (구몬에 악감정은 없다.)
해야 할 일과 살아가는 것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해야 할 일과 삶이 같은 일이라면, 굳이 서로 다른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깨달은 이후, 나는 해야 할 일과 살아가는 일을 분리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머릿속 혹은 나에게 보내는 카톡에 정리하던 ‘해야 할 일 목록’에 슬쩍 ‘오늘 하루 꼭 하고 싶은 소소한 일 목록’을 끼워 넣었다. 예를 들면 [해야 할 일: 세탁소 가기, 우체국에 가서 택배 접수하기 / 하고 싶은 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차 한 잔 마시며 창문 쪽에 서서 뭔가 있는 척 하기 5분]이라고 메모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루 싶은 일은 아주 소소하고 평소 하지 않았던 엉뚱하지만 제법 멋져 보이는 일일 때 효과가 좋다. 5분에서 10분 내외로 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더더욱 좋다. 그렇게 뭔가를 하고 나면 남은 하루가 의외로 즐거워진다.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해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다음엔 무엇을 해볼까?라는 생각에 집중하게 해 준다. 이런 식으로 나는 아침에 커리어 우먼인 척하기, 흰색 선만 밟고 출근하기, 나에게 5첩 밥상 차리기, 인형 머리털 빗어주기, 일부러 한껏 눅눅하고 달달한 시리얼 먹기 등을 시도하였고 그 덕분에 하루하루가 한결 즐거워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런 것을 좋아했구나’하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 방법이 언제까지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과 살아가는 일을 분리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