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튜브라이트 Oct 10. 2015

피부로 느끼는 그 계절이 오면

뚝딱뚝딱 몸마음공장 프로젝트 5

아, 이건 정말 몹쓸 병인 것 같다. 나는 딱히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데 어딘가에 무조건 목적이 있으면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인 탓에 해외 경험이 몇 번 생겼다. 얼결에 여행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고, 대개는 처음의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지만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니 겸사겸사 시간을 만들어 여행으로 끝맺기 마련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가끔 몸서리치게 그 곳이 그리운 때가 있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 그 바뀐 공기와 바람을 피부로 직접 느낄 때. 혹은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의 냄새를 어디선가 맡았을 때 이런 증상이 정말 심각해진다. 어떤 때는 그리움의 증상이 너무 커서 울렁거림 마저 일어서 아, 나에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마살의 기운이 있는 것인가 하고 의심케 한다.


그래서 가끔 생긴 버릇이 여행 에세이를 찾아 보는 것이다. 사진집이 이럴 때마다 정말 내게 큰 위안을 준다. 더불어 좋은 글들을 만나면 마음은 어느새 포근해지고 그 곳으로 다시 떠나고 싶다는 거의 불가능한 욕망은 조금 수그러든다.


가끔 의문도 든다. 여행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조차 없는 여행 국가 수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 때도 여전히 내가 정말 지금 당장 다시 가고 싶은 곳을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을까. 만약 같은 곳이 반복된다면 그 지역이 도대체 다른 곳과 어떤 차이가 있길래 나는 그곳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 더 많이 여러 곳을 다니면 그만큼 그리움도 더 커지게 될까 하는 궁금증들. 그래서 얼마 다녀보지 않은 것에 위안을 느끼고 반대로 자주 여행 다니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는(물론 떠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식으로 나를 상처받지 않게 속이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겠지만).


몇 곳이 안 되지만 나의 경우를 되돌아 본다면 그것이 특히 생각은 잠깐 내려두고 내 감각에 특히 의존했던 시간들인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뒤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초원을 걸으면서, 눈보라 치는 바람 속을 걸으면서, 시꺼먼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 보면서, 물에 도로가 잠길 듯 퍼붓는 소나기를 피해 뛰어가면서, 이렇게든 저렇게든 내 몸과 자연의 조화와 반응에 민감하게 열려 있었던 시간들.


원초적인 느낌들이 가끔 그리워진다. 그럴 때면 넓고 한적한 시간, 맑고 투명한 공기의 냄새, 푸르른 소리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바쁘고 소음과 빛으로 가득 찬 이 현실에서 훌쩍 날아가서. 다들 어딘가가 문득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똥을 내보내는 고귀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