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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인 Dec 18. 2024

내 아이의 첫 호텔

나만의 선호가 우리의 선호로 되어버린 날들

한국 호텔, 정확히 서울 호텔의 전성기는 2010년 전후라고 볼 수 있다. 지속된 저금리와 부동산 개발 제한 정책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고, 서서히 싹을 틔운 K-컬처의 전조로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이었다. 찾아올 외국인(대부분이 유커, 중국인이었지만)이 머물 숙소가 부족한 상황에서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며 호텔에 한해 용적률이 완화되었고, 그때부터 우후죽순 4성급 비즈니스호텔이 들어서게 된다.


일단 금싸라기 서울 땅에 호텔 건물을 지었지만 운영은 어떻게? 마침 호텔스닷컴 등 글로벌 해외 OTA(Online Travel Agency)와 경쟁을 하던 메리어트, 하얏트, 힐튼, 지금은 없어진 스타우드 등 글로벌 호텔 체인이 속속 자신의 미드스케일 브랜드 간판을 달았다. 서울은 매력적인 여행지였고, 외국인 관광객은 끝도 없이 증가할 것이라 여겨졌다. 사드 사태만 없었다면...


한한령이 내려지며 서울과 제주 등을 누비던 유커가 사라졌다. 매일 80~90%가 차던 객실은 어느새 점유율이 떨어졌고, 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결국 국내 관광객을 유혹하는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에게는 제공하지 않는 특별한 패키지, 프로모션, 이벤트를 추가하며 이른바 '호캉스'가 생겨났다. 유커의 혜택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 지어진 4성급 호텔들이 그간 외면했던 인피니티 풀을 갖추기 시작한 것도 다 내국인을 위한 미끼였다. 서울에 위치한 4성급 호텔에서 수영장 유무는 내국인 투숙객 비율에 큰 영향을 차지하게 됐다.


사실, 호캉스가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이 가장 저렴한 시기는 바로 민족 대명절 설과 추석이었다. 모두 고향과 가족을 찾아 서울을 떠나니 한적한 서울에 손님이 있을 리 만무할 터. 그래서 다양한 혜택과 편안한 휴식을 저렴한 금액에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명절이면 아내와 평소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할 호텔에 머무는 걸 즐겼다. 아이도 없으니 가능했던 일. 시간이 흘러 고향을 찾는 이도 줄고, 해외를 나가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호텔을 이용하며 이제는 도리어 가격이 높아진 곳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2010년대 후반부터 스테이케이션, 호캉스 등이 여행 트렌드로 자리하며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아메리카노 보단 믹스커피가 낫다는 것처럼 냉장고에 무료 음료 가득한 모텔이 좋다는 또래 지인들도 있지만 점차 호텔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가 있다면 호텔을 선택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호텔들도 어느새 아이 고객을 받는 일에 익숙해져 초기에 비해 다양한 서비스가 매뉴얼로 자리 잡은 것도 한몫했다.


2022년 1월, 아이가 돌을 맞이했다. 나름 호텔 매거진 에디터를 했던 아빠를 두었으니,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게 될 호텔을 신중하게 골랐다. 아내의 기준은 단순히 B&B.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침구와 맛있는 조식이면 행복한 사람이었기에 럭셔리 세그먼트의 호텔이라면 충분히 만족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나름의 조건을 세웠다. 글로벌 체인 브랜드의 럭셔리 호텔 중 매니지먼트로 운영되어 서비스가 훌륭할 것, 우리 부부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호텔일 것, 추운 겨울이다 보니 유모차로 이동 가능한 실내시설이 연결되어 있을 것. 숙박비는 30만 원 전후일 것.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바로 여의도의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었다.


마침 눈이 소복이 쌓인 날. 고층의 객실에서 창밖으로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다. 건물에 쌓인 흰 눈이 솜이불처럼 우리 가족을 감싸 안았다. 고급스러운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한 아이의 함박웃음을 보았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좋아 나는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고, 객실키 커버에 편지를 남겨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두 달에 한 번, 꼭 아이와 함께 호텔을 방문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해외 대신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된 것도 계기 중 하나였다.


"나는 호텔에서 왔어!"

호텔의 경험치가 하나둘 쌓일수록 아이는 그곳에서 받은 호텔리어의 환대와 창 밖의 풍경, 멋진 식사와 다양한 액티비티를 순간순간 기억해 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남산타워를 보고 지금은 없어진 밀레니얼 서울 힐튼에서 바라본 남산타워를 떠올리거나, 삼성역 사거리를 차로 지날 때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를 가본 적 있다고 말했다. 부부 둘만 있었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지방도 자주 다녔다. 영종도의 네스트 호텔, 키즈 액티비티가 있는 가평의 마이다스 호텔 앤 리조트, 속초의 롯데리조트, 산에 둘러 싸인 파크로쉬… 동해와 서해, 산과 강을 배경으로 아이는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기존에 호텔을 선택할 때는 외적인 면보다 내적인 면을 더 보았다. 숙련된 호텔리어가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신의 업에 프라이드가 있는지를 살폈다. 조선호텔이나 그랜드 하얏트 서울 같은 곳. 그렇기에 더욱 인재 채용이 어려운 지방 호텔은 꺼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함께하게 된 그날부터 나만의 선호를 버리고 우리의 선호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보물 찾기를 하듯 아이와 함께 머물 곳을 고르며 서로의 취향을 확인한다. 아이에게는 키즈룸과 놀잇거리가 중요하기에 나였으면 선택하지 않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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