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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인 Feb 06. 2016

기린이 좋아

2005.05.17

“어른이 된다는 건 220km/h로 달릴 수 있는 차로 80km/h밖에 달리지 못하는 것과 같아.”

좀 더 밟으라는 그녀의 말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프랑스 영화의 한 대사였다. 고작 일이 년 전에 봤던 영화인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차라리 꼬맹이였던 시절, 주말 프로에서 보았던 영화가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80km/h로 달리면 220km/h일 때보다 지난 일들을 좀 더 살필 수 있는 법이다. 가만히 내 주위를 둘러보면 나는 서른일곱 해를 살았고 아내와 두 아이가 있으며 제약회사 영업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선이와 종종 데이트를 한다. 선이는 올해로 스물다섯 살이다.

“거짓말.”

선이의 말버릇이다. 그녀는 멍청한 표정 때문에 여기저기서 많이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그 영향으로 선이는 누구의 말이든 한 번 이상 곱씹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분명 겉모습과 달리 대단히 똑똑했고 습관처럼 생긴 신중함으로,  별문제 없이 나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가끔 아내는 너무 빨리 달려가려고만 한다. 집과 아이와 노년기. 80km/h로 달리면 아주 먼 훗날 도달하게 될 나라를 아내는 늘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에다는 모든 게 적당했다. 딱 80km/h. 함께 달리고 있으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그녀의 모습에, 변하지 않는 풍경 탓에 나는 멈춰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느낌이었다. 살짝 손을 가져가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여자아이들과는 달랐다. 첫사랑을 하듯,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손을 잡고 키스를 했다. 지금에 와선 그 신중함이 그녀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하자, 거짓말, 그녀는 웃으며 탄산수를 마셨다. 김밥도 싸왔어요.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우리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혼자 주저앉아 있거나, 둘이 있어도 서로 등을 돌린 상태였다. 동물원에 놀러 온 아이들만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구 소리쳤다. 아이들은 처음 대면한 동물들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 수 있으리라. 우리도 우리를 압도할 동물을 기대했지만 코끼리도, 사자도 시들했다. 선이는 서글픈 표정으로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불쌍해라. 저런 곳에 갇혀서……. 매일매일이 저럴까요?”
“쟤네들도 월요일엔 쉴 거야.”

직장인다운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다르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코끼리와 나’가 아니라 ‘코끼리 속의 나’를 찾고 있다. 월요일, 동물들이 쉬는 날에 그들을 데리고 그녀의 사무실을 구경시켜준다면 동물들은 분명 선이를 보고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불쌍해라. 나는 그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홀로 남겨진 동물들을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으니까. 아이들처럼 온몸으로 상대를 느끼고 이해하게 되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와 그녀가 무척 가련하게 느껴져 그녀의 어깨를 꼬옥 감싸 안았다.

아기 동물 체험실에 들어서자, 선이는  그동안의 우울을 단숨에 날려버린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보육사가 조그마한 흰 토끼를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토끼를 쓰다듬었다. 토끼는 보들보들 몸을 떨며 동그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쩜, 눈이 이렇게 빨가니!”

선이가 손을 눈 주위로 가져가자 토끼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의 품 안에서 몸을 뒤척였다.
“알비뇨잖아.”
“그게 뭐예요?”
“유전자 병이야. 몸에 색소가 없는 거지. 털도 하얗고, 동공에도 색소가 없어서 피가 그대로 보이는 거야. 그래서 빨간색인 거지. 흰 토끼도, 흰 호랑이도, 흰 코끼리도 다. 가끔, 사람도 그래.”
“거짓말.”

선이는 토끼를 들어 올려 뽀뽀를 했다. 이렇게나 예쁜데. 그녀는 중얼거리며 보육사에게 토끼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체험실을 나와 최고의 동물과 마주치게 된다.

예상과는 달리 우리를 압도한 건 코끼리도, 사자도, 인도왕뱀도 아닌 기린이었다. 가느다란 다리, 봄날의 느린 걸음을 가진 기린을 올려다보며 선이와 나는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코끼리에게서 기대했던 웅장함과 사자에게서 기대했던 위엄, 인도왕뱀에게서 기대한 섹시함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완벽했다. 외로움이나 고독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온전히 무언가에 감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여섯 살에 느꼈어야 할 두려움을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느낀다는 것에 혼란스러웠다. 기린들은 그런 우리의 감탄과는 상관없이 둘씩 짝을 지어 느긋하게 나뭇잎을 먹었다. 가끔 지칠 때면 껴안듯 서로의 목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기린은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 여러 동물들의 부위를 모아 만든 동물이란 점에서 용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옛 이야기 속에서,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동물을 실제로 마주치게 된 탐험가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들은 유년기의 기억이 현실로 나타나는 광경에 경악했을 것이다. 우리는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기린은 행복하다. 이 작은 별 위에서 나와 선이는 외롭지 않기 위해 서로를 곁에 두지만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기린은 온전히 행복을 위해 서로의 목을 기댄다. 절실하지 않지만 타산적이지도 않다. 순수한 자기애는 대단히 이타적이다. 그런 면에서 기린의 삶은 모든 인류의 첫사랑과 닮아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사라진, 그 찰나의 순간을.
“기린들이 목을 기대고 있는 건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뜻이야. 한 번 눕게 되면 다시 일어날 수 없는데도 자신과 함께 했던 상대가 쓰러지면 그대로 그 옆자리에 누워버리지. 그런 동물이야, 기린은.”
“그랬군요.”

나는 처음으로 선이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녀는 처음으로 내 말에 ‘거짓말’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 그녀는 내  말속에서 진실과 거짓쯤은 간단히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린을 계속 지켜볼 수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그녀가 가지고 온 김밥을 먹었다. 꼭꼭 뭉쳐져 한 입 베어 물으면 한참을 씹어 삼켜야 했다. 이런 부분도 신중한 여자라, 나는 선이가 더 좋아졌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로 놓인 그녀의 손을 꽉-하고 쥐었다. 여전히 기린을 바라본 채로.
“나랑 자고 싶어요?”
“아니, 아직은.”
“거짓말.”

선이가 웃었다. 웃으며 서서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몇 번을 다시 뒤척여보았지만 기린들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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