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쫓는 모험

부자 노인을 위한 선릉은 없다

by 최종인

나의 온전한 하루는 9시 30분에 시작된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나든 9시까지 아이를 선릉역 인근에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한다. 집에서 제법 떨어진 위치라 날이 좋을 땐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너무 덥거나 추울 땐 자동차로 이동한다. 강남으로 출퇴근하지 않는 삶을 이 년 여 살았는데, 아이 어린이집 덕에 그 빽빽한 강남으로 매일 아침 향해야 했다. 쳇바퀴 같은 북적임이 싫어 떠났건만…


가끔 오전 11시쯤 미팅이 잡힐 때가 있다. 두 시간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어린이집 인근 카페에서 작업을 한다. 그럴때면 창밖으로 출근하는 인파를 바라본다. 카페인 공급을 위해 서둘러 카페에 들러 테이크아웃 해가는 직장인이 조금 뜸해지면 노인들이 하나둘 카페 테이블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 시키지 않고 열띤 토론을 진행한다. 부동산, 주식, 투자… 그리고 비트코인 이야기까지. 오롯이 돈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다행이랄까? 그래도 황금만능주의적인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참아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수십 년을 채웠을 인생에서 모든 대화가 돈 뿐인 모습이 안타깝다가도, 카페를 이용하려는 고객 자리를 대신 차지하며 최소한의 비용조차 소비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다. ‘저렇게 한두 푼 모아 강남에 사는 건가?’ 단순히 부자를 향한 막연한 질투가 아니길 바라며 마음을 다스리는 찰나, 굳이 노인들이 선릉역 인근 카페에 모이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29일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방송에서는 KT가 제공한 빅데이터를 통해 저소득 노인 계층과 일반 소득 노인 계층을 구분해 각 계층이 밀집되는 지역을 분석했다. 노인들이 낮시간을 어디서 보내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일반 소득 노인 계층은 몇몇 교통중심지를 제외하고는 공통의 행동 특성이 없었다. 하지만 저소득 노인 계층은 겹치는 공간이 많다. 그중에서도 뜻밖의 장소가 바로 선릉역이다. 방송사에서도 이상했나 보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가난한 노인들은 왜 선릉역에 모일까?’라는 의문에서 직접 탐문 취재를 나섰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노인들은 다들 훌륭한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주민들은 선릉역 인근 건물 지하에 코인, 전자상거래 등을 내세운 다단계 회사들이 많다고 말한다. 2017년을 기점으로 다단계 회사가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트코인과 맞물리며 먼저 투자하면 글로벌에 진출 시 큰돈을 번다고 가난한 노인들을 유혹한다. 고수익, 원금보장이라는 말에 속아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아… 그제야 알았다. 그토록 사랑하는 돈을 가진 이들이 직장인이 출근을 끝낸 느긋한 시간에 모여 (자린고비처럼 돈을 아끼며) 자산을 더 불리기 위해 투자처를 논의하는 게 아니었다. 부자 노인은 선릉에 없다. 돈을 쫓는(좇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돈을 조급히 따른다는 생각에) 노인들이 선릉에 모여 ‘투자자’라는 명함을 가상화폐에 바꾸어 가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불량이나마 건강식품이라도 받아갔지, 이제는 손에 쥘 수도 없는 코인이 노인들의 낡은 스마트폰에 스친다. 카페에서 지인들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지 못하는 ‘투자자’는 또 다른 노인들을 투자자로 만들고 추가 수수료를 받아간다. 그렇게 돈을 쫓다 긴 세월 모은 재산마저 잃는다.


IMF 이후 삶의 많은 부분이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뼈저리게 겪었다고 해도, 가끔 그 이전에 추구했던 정겨운 삶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 <응답하라 1988>의 성공은 그런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드라마도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 가족이 부동산으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란 걸 암시하는 결말을 전달해 당시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래야만 진정한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었다는 듯이… 돈의 의의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인생의 고민에 ‘현실적이야‘라고 응답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차마 ‘돈’이라 말하지 못하고 ‘현실’이라 치환하는 시대의 염치를 함께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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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