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대로 함께 가야 할까

새해 아버지 칠순 여행을 계획하며

by 최종인

“하나, 둘, 셋, 넷… 아홉, 열!”

두 돌이 지나 아이가 숫자를 열까지 외우게 되었을 때, 우리 부부보다는 부모님의 호들갑이 더 심했다. 보통의 손가락을 모두 더한, 인간이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위의 수이기 때문일까. 학업에 중요한 수학의 첫걸음이자 완성을 의미하는 10이란 숫자를 알게 됐다는 것. 크나큰 인간의 성장이라 여겼던 듯하다. 물론, 여전히 6과 9를 구분하는 건 어려워했지만…


다들 나이를 먹어가는 일에 십 년을 단위로 큰 의미를 부여한다. 영어로 십 년을 뜻하는 ‘decade’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만의 유난은 아닐 것이다. 스무 살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분기점이고 서른, 마흔 전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바라고 요구하는 위치가 다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 한 번 십의 단위를 벗어나는 축하할 나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순하나, 환갑이다. 십간과 십이지의 최소공배수인 60을 지나 자신이 태어난 해와 똑같은 간지로 돌아오는 것.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동갑인 탓에 그해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괌 여행을 떠났다.


지인 모두가 경악한 여행이었다. 한쪽 부모님만 모셔도 부담스러운 여행을 두 배로 만들었으니… 하지만 정작 환갑을 맞이한 두 아버지들보다 어머니와 장모님이 더 즐거워했던 여행으로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어머니 두 분 모두 당시엔 오십 대였기에 에너지도 뿜뿜 넘쳤다. 다만, 귀국일의 야간 비행은 어른들을 모시고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환갑이 찾아왔다. 지난번 괌 여행과 더불어 여행기자로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택한 여행지는 베트남 다낭이었다. 타고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해수관음상과 바나힐, 조금만 이동하면 당도하는 호이안 올드타운 등 당시에는 핫한 가족여행지였다. 밀려드는 한국 관광객들로 인해 브랜드 호텔의 한국인 총지배인이 있을 정도. 너무 멀지도, 낯설지도 않은 다낭에서 3박 4일의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계획했을 때만 해도 부모님이 다낭 시내의 몇몇 관광 명소를 제외하고는 호이안을 더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허름한 현지인들의 쌀국숫집, 한강이 보이는 테라스가 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같이 다낭 시내에서의 여행을 더 좋아하셨다. 단순히 베트남을 우리나라보다 다소 발전이 더딘, 그래서 적은 금액으로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지라 생각했던 나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충격적이었다.


“여기… 80년대 대한민국 같네.”


인구 전체의 80%가 30대 이하인 나라. 자국 대기업이 성장하고 있고, 내가 성실히 일한다면 충분히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 거리마다 젊은이들이 넘치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루의 노곤함을 풀어내는 나라. 작은 오토바이에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가장의 모습이 듬직한 나라. 이름만 똑같은 한강을 거닐며 바라본 아버지의 얼굴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젊은 날의 뜨거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몇 번 되지 않는 해외여행에서 아버지는 그 나라의 모습을 한국과 겹쳐보았던 것이다. 비록 그 시간대가 다를지라도.


그 이후, 베트남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지난해 오 월, 사회에서 만나 ‘친구’라 부를 수 있게 된 지인과 베트남 달랏으로 여행을 떠났다. 달랏은 과거 우리나라의 ‘제주’ 포지션의 관광지라 할 수 있다. 베트남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신혼여행지, 현지인들의 여행 명소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관광명소에서 유달리 베트남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르데코 양식의 달랏 기차역에서는 관광용 증기기관열차만 운영한다. 원목으로 된 테이블 좌석은 마치 만주 웨스턴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본듯한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나와 지인이 앉은 자리 맞은 편으로 젊은 베트남 부부가 자리했다. 그들에겐 아이가 둘 있었는데, 말끔한 옷차림에 예의가 무척 발랐다. 테이블 위로 젊은 아빠가 물건을 꺼내놓았다. 현대자동차 자동차 키. 오토바이가 아닌 자가용을 소유하고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우며 달랏으로 여행을 올 수 있는 그런 생활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30분 후 린푸억 사원을 구경하고 다시 달랏역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공교롭게도 맞은 편에는 똑같이 그 가족이 앉았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큰 아이가 우리에게 종이컵을 두 개 건네주었다. 알고 보니 기차에서 무료로 시원한 차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 외국인인 우리가 잘 모르니까 친절을 베풀어 아이를 통해 건네준 것이다. 아이에게 외국인을 환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또한 포함되었으리라. 우리는 젊은 아빠의 배려에 여러 번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왈칵 울음이 나올 뻔했는데, 쓸데없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인 탓이다. 내 아이가 생기고 나니 유독 저런 광경에 마음이 흐물흐물해진다.


신용카드를 넘어 모바일 페이가 일상이 된 중국에서는, 아이들에게 현금 사용법을 체득시키기 위해 일본 여행을 간다는 말이 있다. 어떤 여행은 순리를 거슬러 다른 시간대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제 칠순이 된 아버지에게 어떤 시간대를 선물해야 할까? 물론 십 년 전보다 더 걷지 못하고, 쉽게 지치며 100% 즐길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서 더 고민이 깊어지는 2025년의 첫날이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