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북라운지에서의 새해 단상
새해가 밝고도 날은 여전히 차가웠다. 차를 타고 지붕 있는 곳에서 지붕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잠시 쇼핑몰을 거닐었다. 평일 저녁 6시임에도 뉴스에서 말한 것처럼 매장은 한산했다. 단순히 불경기라고 말하기에는 유독 분위기가 무거웠다. 분명 조명은 밝게 켜져 있었는데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이를 떨쳐내기 위해 서둘러 걸었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다리를 지나자 아동복 코너와 키즈북라운지가 나타났다. 쇼핑몰 내에서 유일하게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이었다. 소파 테이블에는 이미 아이를 데려온 부모님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옹기종기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색칠하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는 자기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소파 자리도 꽉 차 있던 터라 온 가족이 작은 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아 빈 종이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키즈북라운지에는 온갖 모양의 감정 이모티콘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랑, 기쁨, 슬픔, 욕망, 분노, 미움, 두려움… 온갖 감정들이 저마다의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그려져 있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처럼.
‘키즈북라운지에서는 MOKA가 만든 감정 이모티콘을 볼 수 있어요. 이모티콘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을 연결해 주세요.’
아이는 책상에 놓인 종이를 바로 집었다. 욕망이었다. 우리가 앉은 책상 위에는 욕망만이 많이 남아 있어, 빈 책상의 종이를 살펴보며 다른 감정들이 남아 있나 살펴보았다. 해당 이벤트가 진행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지 남아있는 감정이 많지 않았다. 사랑과 기쁨과 슬픔은 단 한 장도 남은 걸 찾을 수 없었고, 욕망과 분노와 미움이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많이 남아있는 건 두려움이었다.
아이가 골랐을지, 아니면 부모들이 선택했을지 모르지만 굳이 나도 다른 감정을 찾아다녔던 건 아마 사랑이나 기쁨, 또는 슬픔을 찾아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도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아직 욕망이나 분노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아이는 욕망에 가득 색을 채웠다. 그다음으로 집어든 종이는 두려움. 아이는 보라새 색연필을 들어 두려움을 그려나갔다.
왜 두려움이 가장 많이 남았을까? 분노에 색을 칠하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민을 했다. 다른 부정적인 감정도 많은데 왜 유독 두려움이었을까? 열심히 집중해서 색을 칠하는 아이를 보다가 깨달았다. 아이가 가졌으면 좋을 감정으로 가장 먼저 사랑과 기쁨이 선택되고,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레 겪고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슬픔이 선택되었을 것이다. 욕망이나 분노나 미움은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런 감정들은 대상이 있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려움은 낯선 손님처럼 나의 방향과 상관없이 찾아온다. 머리를 차갑게 하고 생각해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감정.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감정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책상마다 가장 많이 두려움이 남았던 것이 아닐까. 여전히 조용하고 생기가 없는 쇼핑몰 한가운데서, 유난히 추운 새해를 맞아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밤잠을 설치며 분노하고 미워하고 답답해하던 최근의 나날 속에 두려움만이 남게 되지 않기를, 적어도 그런 세상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