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겨울, 불가리아[3]
마지막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이제 다시는 일본에 오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지어 내고, 그것으로 상품을 만드는 일본의 재주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관광객인 나에게는 여간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상해 보세요. 장날이 아니면 적막하기 짝이 없는 충북 어느 산골 읍내 시장, 기운 없는 할머니가 먹고 살기 위해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작은 국밥집의 메뉴판이 형형색색 알록달록 둥글둥굴 과장된 글씨체로 이렇게 써 있는 것이다. "일교차 높은 고랭지에서 배추가 힘차게 생산해 낸 믿음직스러운 시래기와 40년 국밥 달인의 만남! 그 환상적인 맛의 세계에 빠져 보세요! 도~오~조~오~" 식탁에 차려진 것은 소담스럽고 평범한 4천원짜리 시래기된장국밥일 뿐이다. 무엇이 싫은지를 알고 난 후에야 무엇이 좋은지 아는 것은,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깨달고, 누가 적이었는지 가려지고 나서야 누가 동지였는지 뒤늦게 깨닫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그랬다. 발칸이 좋은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호들갑스럽지 않기 때문이었다. 발칸은 그들의 언어처럼 코맹맹이 소리 하나 없이 나즈막하고 묵직했다.
그 먼 불가리아에 세 번을 갔다. 처음에는 그 길에 있어 갔다. 아름다웠다. 두 번째는 남편에게 불가리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어서 갔다. 역시나 아름다웠다. 세 번째는 남편이 또 가자고 해서 갔다. 갈 때마다 불가리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리아가 발칸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은 아니지만 가서 산다면 그곳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릴라산 자락의 작은 마을을 점찍어 두고 틈만 나면 불가리아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수리를 하면 제법 그럴 듯 하겠다 싶은 이층 주택을 오천만 원이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영어 사이트이니까 더 비싸게 팔지도 몰라. 직접 가면 더 싼 집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외국인도 불가리아에 집을 살 수 있다. 토지 없이 아파트만 구입하는데는 어떠한 제한도 없어서 그냥 사면 된다. 토지가 포함된 주택을 구입하려면 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은 1유로면 되고, 등록을 대행해 주는 변호사 비용으로 300유로쯤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변호사에게 돈 주고 맡기면 끝. 동남아시아의 여느 나라들처럼 법인 설립에 현지인의 지분이 필요치도 않다. 나는 인터넷으로 집구경을 하며 어디에 이층침대를 놓고 어떻게 마당을 꾸밀지를 궁리했다. 즐거웠다. 지금에사 하는 이야기인데, 남편의 퇴직은 이 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죽전으로 이사를 오며, 여기서 딱 이 년 만 살고, 그러니까 딱 이 년 만 더 회사를 다니고 어디든 가자고 했다. 그 어디는 아마도 불가리아였다. '호스텔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릴라 호스텔은 벌써 있을 것 같은데...' 꿈꾸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그것이 헛꿈일지라도. 외국인이 불가리아에서 영리 목적의 사업을 하려면 열 명의 불가리아인을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풀타임으로. 끙. 그러다 작년 여름, 우연히 소피아에서 분식집을 하고 있다는 부부를 알게 되었다. 불가리아로 이민간지 몇 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고 꽤나 유명해지기까지 한 분들이었다. 여행이든 이민이든 불가리아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고 친절히 안내되어 있어서 다짜고짜 인사를 하고는 가장 난감한 부분인 비자에 대해 물어 보았다. "열 명을 고용할 필요 없어요. 돈만 주면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해줘요. 돈만 있으면 방법은 많아요." 흠. 내가 아주 못 견뎌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안녕, 불가리아, 잘 있어, 릴라.
반스코 기차역. 불가리아까지 가서 잘 타지도 못하는 스키랑 씨름만 하다 돌아오면 섭섭하니까 기차를 타고 구경을 가기로 했다.
발칸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리조트 타운 반스코의 기차역 치고는 꽤나 볼품 없다. 스키 타러 오는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오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하지만.
도브리니시떼(Dobriniste) - 셉템브리(Septemvri) 간 열차가 하루에 각 네 대 있다. 이것은 불가리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narrow gauge single track line 협궤 단선 철로를 달리는 열차로 릴라산과 로도피 산맥 사이의 협곡을 지나며 발칸에서 가장 느린 열차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이곳은 야코루다(Yakoruda)역. 반스코에서 출발한지 한 시간여가 흘렀다. 철로가 단선이니 맞은편에서 오는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출발한 반스코 방향으로 가는 열차.
이렇게 옮겨 타기도 한다. 왜 옮겨 타는지는 모르겠다. 깜빡 졸다 내릴 곳을 놓치셨는지...
정겹지요. 오른쪽은 우리 기차의 승무원 아줌마. 차창으로 상체를 쭉 빼고 맞은편 열차를 향해 팔을 휘저으며 잘 가라고 서로에게 인사를 했다.
이곳은 아브라모보(Avramovo)역. 해발 1,267m, 발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이다. 이 자랑스런 사실은 역사 벽에 마치 제품의 사용설명서처럼 작은 글씨로 건조하게 쓰여져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역무원 아저씨.
마지막 종착지까지 가지 않고 벨린그라드(Velingrad)라는 도시에서 내렸다. 끝까지 기차를 탄다면 대략 백여 킬로미터를 가는데 다섯 시간이 걸릴 것이다.
벨린그라드로 오는 기차 안에서 반스코의 어느 호텔에서 일한다는 중년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추천해 준 곳이 바로 이 공원.
벨린그라드는 온천 치료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불가리아에 물 좋은 곳은 참 많다.
공원 주변에 꽤 큰 규모의 온천 호텔들이 있었다.
이곳은 벨린그라드 시내. 3월 1일 '바바 마르타의 날'을 앞두고 반스코처럼 이곳 광장에도 큰 장이 섰다.
짧은 구경을 하고 반스코로 돌아가려고 기차역에 왔다. 반스코 역사와 마찬가지로 벨린그라드의 기차역도 꽤나 썰렁했다.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에만 자리를 지키는지 역무원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기차역을 지키고 있는 것은 집시의 마차 뿐이었다.
기차역 바로 옆에 버스 터미널이 있기에 반스코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구글 번역기를 동원하여 물었다. 다다다.
버스를 타고 반스코에 돌아왔다. 시간은 기차의 절반.
또 다른 날. 비가 온다는 핑계로 온천에 왔다. 이곳이 바로 위의 기차가 출발하는 도브리시떼 마을.
우끼지요. 만약에 불가리아에서 온천에 갈 계획이 있다면 쓰레빠를 꼭 챙겨 가세요. 우린 호텔에 있는데도 미처 생각을 못해서 돈 주고 일회용 슬리퍼를 샀다. 얇고 발 시려웠다.
열탕 온탕 냉탕 골고루 다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지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온천탕에 앉아 맥주 마시기, 담배 피기, 커피 마시기, 과자 먹기 등등.
맥주 싸고 안주도 싸다. 식당에 앉아 집에서 가져간 컵라면을 먹을 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천국이.
반스코로 돌아가는 길.
여기는 소피아. 그라프 이그나티에브 거리에도 바바 마르타 장이 섰습니다.
레이디스 마켓 가는 길.
수도 한복판에 이런 건물들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우리가 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아마도 다시 발칸에 갈 것이다. 그럼 불가리아도 가겠지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