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겨울, 불가리아[2]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예이츠는 그의 나이 41세에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라는 도시에서 6세기에 지어진 산타 폴리나에 누오보 대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게 된다. 라벤나는 아드리아해에 면한 항구 도시로 성당이 지어질 당시 비잔티움으로 불린 지금의 이스탄불과 활발히 교역하며 성장했고 대성당의 모자이크에는 앞서 간 순례자들의 형상과 함께 전성기 비잔티움의 찬란함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황금빛 모자이크에 크게 감동한 예이츠는 그 감동을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 두었고 20년이 지나 그의 나이 61세에 그것을 그의 작품에 녹여 넣었다.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라는 제목의 그의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올해 42세의 동갑내기 언니네 부부는 뒤늦게 알게된 여행의 즐거움으로 내년 여름 휴가 비행기표는 물론이고 내년 추석 비행기표까지 사두었다. 여름에는 베를린으로, 추석에는 부다페스트로 간다고 말한게 엊그제인데 이달 말 언니와 조카 둘이 앙코르 유적을 보러 캄보디아에 간다는 새 소식을 전해왔다.
마흔 후반을 향해 가는 남편은 12월이 되자마자 스키장의 리프트권을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 보았다. 가깝다는 이유로 최근 몇 년 동안 양지리조트로 스키를 타러 다녔는데 12월 초순이면 위메프나 티몬 같은 사이트에서 리프트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팔았기에 올해도 몇 장 사두려고 했던 것이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할인권이 보이지 않아 검색을 해 본 모양인데, 양지리조트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우울한 기사 몇 조각 발견한 것이 끝이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이제 어디 가서 타지?" 강원도는 너무 머니까 남편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이다.
"노인은 다만 하찮은 존재, 막대기에 걸쳐진 누더기 옷일 뿐이지..." 61세의 예이츠는 늙는다는 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헌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41세의 남자가 고작 교회의 모자이크를 보고 감동하여 이십 년 동안이나 그 인상을 가슴 속에 담아둘 수 있는지 그것이 놀라웠다. 하여 그런 그에게 부러움과 질투심 비슷한 것이 들었고 급기야는 그 모자이크가 '고작'이 아니라 정말로 '대단한' 것이여서 그래서 그럴 수 있었다는 어떤 확인을 받으러 알지도 못하는 라벤나에 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
몸은 몰라도 마음만은 시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은 몸도 마음도 시들지 않은 남편의 첫 유럽 원정 스키 여행 이야기이다.
곤돌라 탑승장. 5일 짜리 패스를 샀다. 숙소에서 이곳까지는 멀쩡한 신발 신고 걸어서 10분. 스키부츠 신고 들고 이고 지고 걸어서 20분. 어느 날의 최고기온이 20도가 넘을 정도로 이상고온이 계속 되었기에 탑승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으로 등이 젖고 말았다.
첫날 아침에는 흙바닥이 이보다 덜 보였고, 마지막날 오후가 되니 눈보다 흙이 더 많았다. 하지만 뭐 여기는 어디까지나 저 위와 비교하면 한참 바닥이니까.
곤돌라를 타고 6km를 올라간다. 25분쯤 걸렸다.
곤돌라에서 내리면 이런 모습. 레스토랑이 있고 거대한 천막으로 만든 간이 술집이 있었다. 점심 무렵이면 요란한 테크노 음악에 맞춰 웬 젊은 여자 둘이 무대에 올라 한 시간은 족히 몸을 흔들어댔다. 산 위가 어떤 모습일지, 과연 내가 스키를 들고 올라가서 그걸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가능할지 남편이 혼자 탐사를 하러 갔다. 나는 한 시간 반도 넘게 레스토랑에 앉아 햇볕에 얼굴을 지졌다. 그녀들의 엉덩이를 보면서.
결론은 역시나. 산 위는 그냥 구경만 하기로 했다. 초보자 여러분,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저같은 관광객들 많아요.
구두 신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관광은 꼭 하시길.
해발 2518m로 올라간다. 리프트로 올라가는 거리가 2.5Km쯤 되고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각도와 속도와 바람이 엄청나서 가슴이 터질 뻔 했다.
내가 가장 높이 올라가본 곳은 스위스 째르마트에서 였는데 그곳은 반스코보다 해발 천 미터도 넘게 더 높았지만 거긴 기차가 다녔다.
이런 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가느다란 줄에 의지해 허공에 매달려 맨 몸으로 세상에.
리프트는 탈 때보다 내릴 때가 더 무섭다. 리프트라는 것은 나같은 심약자를 위해 단 5초도 멈추어 주지 않는다.
한 번 쉬고 또 탔다. 보세요, 눈이 별로 안 와서 저렇대요. 돌과 풀이 보이는게.
정상.
저 아래가 반스코 마을. 슬로프는 곤돌라 탑승장까지 이어진다.
정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스키나 스노우보드를 가지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haves를 보면, 나도 그들과 같은 human being이고 싶다. have-nots을 보면, 애틋하고 뜨거운 종족의식.
어쨌거나 아름답지요.
이들은 전혀 다른 species. 2500m에 만족하지 못하고 리프트가 닿지 않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스키를 둘러업고 올라간다.
지금 있는 곳에서 내려간다 해도 족히 한 시간 반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데도 말이다.
스키장의 슬로프 길이는 총 70km가 넘는다.
저들이 가는 곳은 그 70Km 밖. 이런 이들을 볼 때면 정말로 눈을 뗄 수가 없다.
사람을 찾아 보세요.
"자기는 저기로 절대 가면 안돼. 알았지? 어? 어?" 따위의 잔소리를 했다.
이렇게 내려오고 싶었으나 리프트 타고 내려왔다.
비가 온 하루는 온천에 가서 놀고 나흘 동안 스키를 탔다. 둘이 함께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스키런을 달려 마을로 내려와 남편만 다시 올라가거나 남편 먼저 꼭대기에서 몇 번 타고 내려오면 중간에 만나 함께 마을로 내려오며 놀았다. 스키런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가 마을 어귀의 곤돌라 탑승장까지 내려오는 코스로 초급이고 거리는 무려 11Km나 된다. 초급이라지만 중간에 몇 군데 어려운 구간이 있어 첫 이틀 동안은 내려오느라 애를 먹었다. 늘 그러듯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재미가 붙어 한 번 더 내려왔는데 거리도 멀고 체력이 부실한 관계로 두 번째는 꽤 힘들었다. 중급이라면 내려오는데 30분쯤 걸리지 싶은데 나는 50분쯤 걸렸다. 막판에는 다리가 후들후들.
이곳이 마을로 이어지는 스키런. 저 아래가 마을이다.
반스코 스키장은 비싸고 맛없는 레스토랑으로 악명 높았다. 마을에 비해 최대 5배 비싼 가격도 문제지만 음식이라고는 감자 튀김이나 공장산 피자 정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서 컵라면을 열 개 가져갔다. 숙소에서 아침밥을 먹을 때 식탁에 보온병을 올려 놓으면 눈치 백 단인 게오르기가 가져가서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왔다. 매일 아침 똑같았다. 배낭에 보온병과 컵라면, 7- days(발칸 일대를 꽉 잡고 있는 수퍼마켓 크로아상, 별의별 크림이 채워져 있고 정말 맛있다. 다양한 me-too 제품이 있는데 아무거나 사도 다 맛있음)와 쪼꼬바 챙겨 출발. 스키런을 달려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이곳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슬로프 옆에 스키와 폴대를 던져 두고 어그적어그적 걸어 올라와 라면을 먹었다. 해수욕을 한 다음에 먹는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그에 못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은,
남편이 찍어 온 사진. 이런 것을 상상했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나무들 옆에서 평지에 가까운 눈길을 미끄러지는 것.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