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여름, 불가리아[8]
쇠기둥이 녹슬어 나무가 되었다.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간다.
불가리아를 동서로 가르는 발칸산맥의 서쪽 끝은 세르비아에 걸쳐 있다. 지척에 세르비아가 있다.
지방도에서 갈라져 마을로 접어드는 좁은 산길, 한 남녀가 바위 틈에서 불쑥 나오더니 갓길에 세워 놓은 차에 올라탔다.
무엇이 있길래. 그들이 떠난 자리에 차를 세우고 그들이 나온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순간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저 너머에 세르비아.
'벨로그라드칙 바위'라 불리는 이 붉은 사암 덩어리들 덕분에 불가리아 북서쪽 끝 작은 마을이 유명해졌다.
세월에 깎인 바위들은 그 생김에 따라 전설이 더해져, 아담과 이브, 수도승, 마돈나, 여학생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바위들은 벨로그라드칙 일대 30km에 걸쳐 산재해 있고
키가 큰 것은 그 높이가 200m에 달한다고 한다.
벨로그라드칙을 찾는 이유가 이 바위들을 보기 위함이니
우리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바위를 보며 보냈다.
그렇다고 바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산다. 이것은 도시 중앙의 모습이고
이것은 중앙에서 일 분 거리의 모습이다.
작은 마을은 그저 한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어디어디에 숙박 시설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차로 마을을 둘러볼 때 길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눈에도 마을에서 가장 좋아보이는 게스트하우스가 만실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서 가장 좋아보이는 숙소의 주인장은, 도대체 저것이 왜 필요할까 싶은 허리쌕을 두른 걸걸한 목청의 중년 여자였다. 그녀는, 물론 영어로 말함에 있어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겠지만, 우리를 세워 놓고 이렇게 말했다. "주말에 예약 없이 절대 오지 마." 하여간 참고할 일이다.
다른 곳을 소개해 줄 수 있냐는 우리의 부탁에 걸걸한 목청의 그녀는 근처의 숙소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 주인이 일을 나가고 없어 잘 숨겨 놓은-지나치게 잘 숨겨 놓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열쇠를 찾아 빈집의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그녀는 우리가 묵을 방을 보여주면서도 정리된 침대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연신 침대보를 매만지고 베개의 각을 고쳐 잡았다. 침대 상태에 대해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그것은 뭐 흠잡을 곳 하나 없었으니, 나도 언젠가 한 마을의 가장 인기 있는 숙소의 안주인이 되고 싶은 꿈이 있는 고로, 하여간 이 또한 참고할 일이다.
방을 구하고, 우리는 다시 바위를 구경했다.
바위 사이사이를 걸으며 트래킹을 할 수도 있는데 우리 둘 다 그런 류에는 열심이지 않다.
벨로그라드칙의 명물이 '바위' 외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벨로그라드칙 요새'.
요새의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의 직원은 아주 예쁜 얼굴과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이십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어쩐 일인지 길쭉한 칼자국이 그 예쁜 얼굴의 한쪽 뺨을 가르고 있었다. 여행자센터를 찾아갔다가 문이 닫혀 허탕을 친 우리는 여행자센터를 대신해 영어를 꽤나 잘하는 그녀를 붙잡고 궁금한 것을 물었는데, 그녀는 말끝마다 나를 '허니'라고 부르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아무튼 예쁜 여자였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요새 구경은 가능한 늦은 시간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늦은 시간.
요새가 처음 지어진 것은 로마제국시대이지만, 그때의 것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고
오토만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그들에 의해 증축된 부분 역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천연의 요새를 가능케 했던 바위들을 제외하고
성벽이며 성문 등은 대부분 1800년 이후의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전설을 가진 바위들과 그 일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몇 억 년 전 이곳은 바다였다고 한다.
요새 끝에 서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아름답지요.
불가리아의 두번째 여름, 그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바위가 머금은 온기와 나무를 흔들어 푸른 향기를 일으키는 바람과 우리를 온전히 감싸 안은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어떤 충만한 기운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여행 첫날 남편의 손을 잡고 소피아의 비토샤거리로 막 나섰을 때처럼, 코프리브쉬띠짜의 누런 언덕을 걸었을 때처럼, 릴라 호수로 가는 체어리프트에 올랐을 때처럼, 가슴이 벅찼다. 이순간의 우리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누군가 다른 관광객이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바위 위 적당한 자리를 찾아 카메라를 내려놓고는 작은 화면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타이머를 누르고 전력을 다해 자리로 돌아가며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그 모든 것을 누리고 내려오는 길.
스카페이스의 예쁜 매표소 직원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바위들이 잘 보였다. 식당은 작은 마을에 비해 놀랍도록 큰 규모였는데 생일 잔치나 결혼 피로연 같은 무언가 대단한 것이 식당 한가운데 준비되어 있었고, 곧 한껏 치장한 손님들로 하나 둘 자리가 채워졌다. 손님들 중에는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해도 손색 없을 정도의 여성들도 있었는데, 좋은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이 정성껏 꾸미고 오는 것은 초대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다. 우리의 테이블은 기쁘게도 그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자리였다.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더러운 샌달과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던 우리가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녁밥을 먹고 어둑해진 요새를 한 번 더 올려다본 후 숙소로 돌아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집주인 남자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공용 주방에서 술과 담배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기름때가 묻은, 아래 위가 하나로 붙은 오버롤 작업복만큼 핫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지만, 남편 없이 여행할 때 한껏 취한 그런 남자들만이 가득한 숙소에 혼자 묵는다고 상상하면 꽤나 난감한 일이다. 그들은 우리를 반기며 거대한 맥주병을 들어 올리고는 벌어건 얼굴로 함께 술을 마시자 권했지만, 몇 마디 외워 간 불가리아 단어가 바닥을 드러내는 시간은 길어봤자 일 분이었고, 그 후에 맞게 될 어색한 침묵의 시간들을 익히 겪은 바, 서로가 불편한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초대를 정중히 사양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모두를 다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여행하며 배웠다.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 한 해 전 소피아의 국립여행자센터에서 받은 불가리아 전도는 정말이지 유용해서 접힌 부분이 찢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지도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일대에 바위가 얼마나 많은지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바위 모양의 아이콘이 곳곳에 있었다.
그중 한 곳에 들렀다.
브라챠.Vratsa. 마을의 작은 개천변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보며, 비행 전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우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유원지 표시를 따라 가 보니 산 아래에서 산 위로 오르는, 지금은 운행을 멈춘 다 삭은 체어 리프트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암벽 등반이나 행글라이더 류의 무서운 스포츠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저 산을 넘어 산의 뒤쪽을 둘러보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테마파크 같은 거대한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하여간 불가리아는, 발칸이란 곳은 놀라운 곳이다.
이제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