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마릴린 Jul 15. 2016

또 다른 길_릴라 호수,불가리아.

두번째 여름, 불가리아[7]

동서로 길쭉한 싸빠레바 반야의 대대적인 도로 포장 공사는 마을을 가르는 중앙로를 기준으로 하나 윗길과 하나 아랫길이 완성되어 있었다. 포장된 길에서 시작된 숙소 찾기는, 두 줄로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패인 먼지 날리는 흙길을 따라 마을 안쪽 깊숙이 들어가서도 끝나지 않았다. 하필이면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의 유럽에서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이라면 이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샤워도 끝냈어야 마땅한데 우리는 그때까지도 빈 방을 찾아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기에 바빴다. 한 해 전에 묵었던 숙소를 진작에 찾지 않은 이유는 싸빠레바 반야에서만큼은 좀 좋은 곳에 묵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데 이를 포기하게 한 것은 순전히 정신나간 듯 덤벼대는 저녁 모기떼 때문이었다. 


하나 남았다며 보여 준 빈방은 지난 여름 내가 묵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그때도 이 마을에서 빈방이 있는 거의 유일한 집, 그 집에서 단 하나 남은 방이 이 방이었으니, 내가 이 년 연속 묵은 이곳이야말로 싸빠라바 반야에서 가장 인기 없는 방임이 분명했다. 유난히 얇았던 침대의 매트리스가 이제 더 이상은 '침대'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놓여서는 안 될 몹씁 물건으로 변해 있었는데, 어쨌거나 어렵게 이틀 밤 잘 곳을 구했으니 그것으로 우리의 여행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마을 식수장에서 물을 담고, 식료품점에 들러 간식거리를 샀다. 플라스틱 컵 바닥에 설탕이 눅진히 깔린 커피를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고 산으로 향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동카 일행의 차를 얻어 타고 올랐을 때보다 어쩐 일인지 조금 더 멀게 느껴졌다. 


나무 위를 지나는 우리.

  


Рилски езера(릴스키 예제라, 릴라 호수) 노란색 점이 찍힌 집을 찾아 보세요. 저곳이 체어리프트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있는 식당 겸 호텔이다. 이 건물을 기준으로 2014년에 걸었던 길이 빨간점선. 가파른 오르막을 십 분 정도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평지에 가까운 길이 5번 호수까지 이어진다. 남편과 함께 2015년에는 파란점선을 따라 모든 호수를 보며 걸었는데 정.말.로. 힘들었다. 이 힘들다는 것은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삼십대 후반-여성' 기준이다. 등고선이 말해주듯 오르막 내리막의 반복으로, 손을 짚고 올라야 하는 구간도 나왔다. '평소 운동을 아주 조금 하는-사십대 중반-남성' 이 말로는 "뭐, 이까짓 것!"이라고 했지만, 내 눈엔 그도 조금 힘들어 하는 듯 보였다.  


시작은 이렇게 쉬워 보였다.



호수에서 나와 또 다른 호수로 흐른다.



양탄자처럼 잔디가 깔린 윗길이 못내 아쉬워 지금이라도 올라가 볼까 궁리를 했지만 전진 외에는 후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풍경들이 느닷없이 나타났으니 어찌 뒤로 가나요.


검은 양말에 검은 샌달을 신은 남편의 발은 이미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여간 누가 알았겠어요. 이 호수에 다시 올지. 그것도 함께.


저 아래 첫 번째 호수.


두 번째 물고기 호수.  


가늘게 굳어 있는 빙하가 보이나요.


두 번째 호수 앞에는 작은 매점과 쉘터가 있고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주로 이 주변에서 한다고 한다. 


7월 하순의 릴라 호수는 8월 중순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조금 더 거칠고 그만큼 더 신비로웠다.






아름답지요.


구름이 많은 날이었고, 빗방울도 간혹 떨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보다 회색 하늘 검은 산 아래에서 초록의 풀들은 더욱 푸르렀다.



네 번째 쌍둥이 호수.  



아, 아름다와.


드디어 빨간점과 만나는 지점. 왼쪽으로 다섯 번째 신장 호수가 있다. 


바이올린 연주는 없었지만 호수에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으며 몸을 쉬게 했다. 풀이 젓어 있어 기껏 챙겨온 싸롱이 소용없었는데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몸이 흐물흐물해 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초록점선. 그동안 걸은 거리에 비하면 꽤 짧으나 많이 가파르다.


다리를 새로 했어요.


아이를 안고 등에 업고 목에 태워 올라간 정상에서 다시 만나요. 그는 우리 속도보다 네 배쯤 빨랐다.


드디어 정상.


히히.


21세기에 발명된 가장 위험한 물건 중 하나라는게 저의 의견입니다.


왼쪽이 여섯 번째 눈. 오른쪽이 다섯 번째 신장.


이런 풍경이 눈 앞에 바로 내 코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다음에 또 갈 거예요.


그때는 빨간점 따라.


일곱 개의 릴라 호수를 지나 더 멀리 가는 사람들이 점점이 보였다.


내려가는 길. 


국립공원에 개를 데려갈 수 있는 나라. 부러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체면에 대하여_쉬로까 러까에서 릴라, 불가리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