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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Jun 25. 2016

체면에 대하여_쉬로까 러까에서 릴라, 불가리아.

두번째 여름, 불가리아[6]

자동차로 불가리아를 여행하며 차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가 즐겨한 것 중 하나는 GPS의 고도계 감상이었다. 어쩌다 보니 불가리아에서도 특히나 산이 많은 동네만 골라 다니게 된 우리는 어디든 가려면 산을 넘어야 했는데, 산세가 높고 골짜기는 깊으나 터널이라고는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해발 천 몇 백 미터 정도는 쉽게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었다. 삼백여 미터에서 천팔백여 미터에 닿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만큼 길은 가파르고 꾸불꾸불했고, 열린 차장을 통해 들어오는 맑고 차가운 기운에 오싹 소름이 돋을라치면 어느새 쭉쭉 산을 내려와 해발 이백여 미터의 후끈한 공기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하여간 지루할 틈이 없었다.



1. 쉬로까 러까.


쉬로까 러까는 불가리아 남부 스몰랸 지역의 인구 500여명의 작은 마을로, 오토만 시대에 이슬람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불가리아 남부 중에서도 꽤 깊숙한 곳이라 전통 가옥과 생활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런 곳이면 으레 그렇듯 전국 관광지도에 이름이 올라 있다. 해발 1,200m, 좁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을 둘러보는데는 작은 개천과 나란한 찻길을 따라 채 삼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불가리아 인구의 대다수가 몰려 사는 소피아에서는 반나절이 넘게 걸리지만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그리스 땅에 닿는다. 지도를 보면 자전거를 타고도 갈 수 있을 것처럼 제법 가까웠다. 이번 겨울, 불가리아 여행에서 만난 불가리아인들에게 우리는 '이곳도' 가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그들반응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19세기의 St. Thotokos 교회. 그동안 봐왔던 교회들과 다르게 단층, 회색 삼각 돌지붕.


이렇게 수수한 모습의 작은 교회가 좋다.


장미의 가지를 잘라 토분에 옮겨 심고 매일같이 가꿨을 누군가.


마을과 교회 사이에는 작은 다리 하나가 놓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주택의 모양이 지극히 오토만스럽다는 것이었다. 이층의 튀어나온 발코니, 하얀 벽, 나무 테두리, 회색 돌 지붕 등등. 로도피 산맥 지역의 건축 양식이 바로 이렇다고


물론 나중에 지은 집들은 콘크리트와 기와 지붕의 조합.


다른 마을과 연결된 유일한 도로이다.


스몰랸 지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장수 동네.


물 좋고, 공기 좋고, 몸을 부지런히 놀려야 먹고 살 수 있는 험한 자연 환경 덕분인 듯.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나가는 우리를 불러 세웠다. 이것 보라고, 사진 찍고 가라고. 여튼, 시키면 다 하는 남편이 좋다.

  

7월, 불가리아 산골의 다섯 시.



2. 데빈.


불가리아에 가 본 사람이라면 '데빈'이라는 상표의 물을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데빈의 데빈. 혼자 여행이었다면 데빈에 며칠 묵으며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 '봄날은 간다'를 한영애 버젼으로 불렀겠지만,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남편이기 때문에 데빈에서는 잠만 잤다. 데빈은 워낙 유명한 온천 마을이라 민박집에서부터 고급스파호텔까지 숙소의 선택이 자유롭고, 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야외 온천 수영장들도 여럿 있다.

물 좋은 불가리아에서도 데빈 생수의 신분은 꽤 높아 보였다. 다른 상표의 물에 비해 가격도 비쌌고, 데빈 물만 진열하는 전용 냉장고도 가게마다 있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골라둔 숙소를 찾을 길이 없어 대안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깨끗한 숙소를 싼 값에 얻을 수 있었다.



3. 반스코.


지난 2월 스키를 타러 갔었던 반스코의 여름 풍경이 이러하다. 이 길을 지나며, 저 산 위에 여전히 남아있는 가느다란 빙하의 흔적을 올려다보며 남편은 못내 아쉬워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스키 여행을 계획했다.




4. 릴라 수도원.

수도원의 주차장에 막 주차를 마쳤을 때, 한 여자가 다가왔다. 빈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돌 때 보니 차에서 내리거나 타는 사람들을 붙잡고 뭔가를 부탁하던 바로 그 여자였다. 차에서 내려 짐을 챙기고 있는 우리에게 그녀는 자기와 자기의 친구를 수도원 위 캠핑사이트까지 태워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차로 십 분만 가면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고, 우리가 수도원 구경을 마칠 때까지 시간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며, 원한다면 돈을 줄 수도 있다고. "그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그냥 걸어가지 그러니?"라고 물었다. 차로 십 분 거리라는 것은, 산길에서는 기껏해야 시속 20km 정도로 밖에 달릴 수 없으니 대략 3-4km 거리일 것이고, 그렇다면 걸어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답했다. "힘들어서 그래. 어제 산을 넘어 왔거든." 그 마음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만큼은 수도원을 앞에 두고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이곳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가혹했던가. 이번에는 수도원이 텅 빌 때까지 수도원을 올려다보리라 작심을 한 터였다. "미안하지만..." 거절을 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져 수도원의 문턱을 넘었다. 목덜미 어딘가가 조금 간질간질한 기분으로.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수도원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현세의 것이 아닌, 온전한 이질적 아름다움. 남편의 손을 잡고 수도원의 모퉁이를 돌 때, 함께 고개를 젖혀 주랑을 올려다볼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꽉 쥐었다. 우리는 공사를 마치고 장막을 걷은 흐레료 타워에 올라 동그란 지붕을 내려다 보았고, 그늘진 돌난간에 앉아 가벼운 산바람이 수도원을 지나는 것을 구경했다. 이제 막 수도원에 도착한 사람들은 문간에 서서 황홀한 표정으로 짧은 탄식을 뱉어냈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 구석구석 수도원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내줄 생각으로 수도원 뒤 작은 강을 따라 짧은 산책을 했다. 릴스카강으로 향하는 작은 물길 위에 인부들이 다리를 놓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는 작은 교회가 버려진 듯 숨어 있었다.


강에서 돌아 온 우리는 수도원 건물 뒤 작은 매점에서 간식으로 매끼짜를 사먹었다. 매끼짜는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쫄깃한 빵으로 뜨거울 때 슈가 파우더를 뿌려 먹으면 아주 맛이 있다. 일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얼마 남지 않는 버스 시간에 쫓겨 조급한 마음으로 매점 앞 긴 줄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었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맛있다는데 혹시 못 먹으면 어쩌나, 혹은, 이깟 빵 하나 때문에 버스를 놓치면 어쩌나 하면서. 슈가파우더는 빵에 떨어져 붙는 것보다 바람에 날려 허공에서 흩어져 버리는 것이 더 많았다. 우리는 깔깔 웃으며 설탕가루를 신나게 뿌려댔다. 입과 턱에 설탕을 묻히며 빵을 뜯어 먹고 있을 때 한눈에 보아도 동포인 두 여성이 매점 앞에 줄을 섰다. 그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야, 버스 몇 분 남았니. 몇 시에 떠난다고 했지? 다섯 시? 다섯 시 십 분 전?"

"몰라. 하여간 시간 없어. 여기서 꼭 사 먹어 보라고 했는데."

"아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미치겠네"


그들 앞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빵과 요구르트를 주문한 일가족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녀들은 일 년 전 나의 모습이었다. 애간장이 타 들어갔던 그날의 나.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버스 야속하지요. 어디에 묵으세요." 우리가 오늘밤 묵으려는 싸빠레바 반야에 묵는다고 했다. "잘 됐어요. 저희 차 있어요. 괜찮으시면 태워 드릴게요." 천천히 먹으라고, 그리고 천천히 보라고. 이런 말들은 순전히 자동으로 튀어나왔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이 입 밖으로 뛰쳐나가 말이 된 그 순간, 곧장 후회가 밀려왔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조급한 마음 없이 수도원을 즐기리라 벼르지 않았던가. 우리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어쨌거나 마음의 짐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의 그 마음을 모른체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 그날의 나였다.


매끼짜를 하나 더 먹을까 말까 남편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 아까 주차장에 본 그녀가 저 앞에 보였다. 우리가 수도원에 도착한지 얼추 세 시간 넘게 지나 있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이사람 저사람에게 말을 걸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제기랄. 이렇게 된 거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수도원 조금 더 둘러 볼 건데, 그래도 괜찮으면 태워 줄게." 그녀의 남자친구는 커다란 배낭 두 개를 옆에 두고 작은 그늘에 몸을 숨기듯 앉아 있었다. 그들과 약속을 한 후 우리는 다시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짐작했겠지만, 마음이 바빴다. 관광객들이 꽤 빠져나가 이제는 조금 한산해진 수도원을 느긋하게 둘러 볼 기회였지만, 마음은 이미 딴 곳에 있었다.  

릴라 마을. 마을을 지나 산길을 꽤 올라야 수도원이 나온다.


사람 일은 정말로 알 수 없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거라고 그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 년의 시차가 있는 사진을 섞어 놓아도 모를 일이다. 날씨마저.


수선을 마치고 예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수도원 입장은 무료이나, 타워는 돈을 내고 올라야 한다.





이스라엘리. 둘 다 군대를 마치고 여행을 왔다고 했다.


십 분 거리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으나, 이십 오 분이 걸렸다. 십 분 거리 왕복이면 이십 분이지만, 이십오 분 왕복이면 오십 분.


사르코지와 오바마의 네타냐후 뒷담화가 생각났다.


그들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 역시 마음이 급했다. 동포 여성들에게 이십 분이면 될 거라고 말해 놓고 왔으니 말이다. 버스가 떠나는 것을 그들은 지켜보았을까. 우리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을까.


주차장에 채 닿기도 전에 차에서 먼저 내려 수도원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수도원은 그 사이 그림자에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한 수도원 마당 한편에 그녀들이 있었다. 몇 살 쯤 되었을까. 사십 대 중반? 후반? 그녀들은 느긋한 자세로, 평화로운 얼굴로, 교회의 둥근 지붕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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