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여름, 불가리아[5]
1.플로브디브.
남편이 플로브디브를 골랐을 때 예상 외의 선택에 실망하여 이유를 물으니 원형극장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에 무엇이 먹고 싶다거나 무엇이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의 의견에는 언제나 무게가 실렸고 그 무게의 작용은 듣는 이로 하여금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과 옳은 선택이라는 정당성 비슷한 것을 불러일으키고는 한다.
플로브디브에 도착했을 때는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다. 여름 휴가철 관광 도시에서 빈방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주차 자리를 찾는 일은 그것보다 더 어려웠다. 큰일을 해결하고 나니 후끈한 태양은 도시 사이사이에 불쏙 솟은 언덕 위에 걸려 우리가 거리로 나섰을 때는 초저녁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보행자거리는 그사이 공사를 마치고 완전히 정리된 모습으로 활기에 넘쳤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손에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걷고 있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씬한 젊은 엄마들이 향수 냄새를 풍기며 유모차를 끌고 우리 옆을 지났다. 여느 도시에 비해 플로브디브의 인상은 눈에 띠게 젊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를 끌며 걷기에는 거리에서 울리는 음악도 쇼윈도에 걸린 속옷도 하여간 요란했으니까.
0층: 보행자 쇼핑 거리.
-1층: 카페 - 술, 담배 모두 환영.
-2층: 경기장(2세기, 지금은 사용하지 않음).
구시가 언덕 끝에 위치한 원형극장은 정해진 관람 시간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관람시간이 끝났는데도 극장이 개방되어 있어 얼떨결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음날 있을 공연의 리허설 때문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언가 대단한 공연이 시작되길 기대하며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았는데 그제사 하나 둘 모여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보니 연습이 시작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듯 싶었다. 그들은 모두 아마추어처럼 보였다. 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그들은 꽤나 들뜬 표정이었는데, 그것은 우리처럼 객석에 앉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대는 그들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2. 아센 요새.
로도피 산맥에 위치한 아센 요새는 플로브디브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 선 요새는 기원전 5세기 트라키아 시대에도 요새로 사용된 흔적이 있으며, 고대 로마 시대 슬라브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요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9-13세기에 걸쳐 실질적인 건축이 이루어졌고 3차 십자군에 의해 함락됐지만 4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살아남았다. 오토만 점령기에 요새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훼손되지 않은 성모교회는 건축학적,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중세 교회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다.
3.바츠코보 수도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동방정교회 중 하나이자 불가리아 교회 건축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는 바츠코보 수도원은 아센 요새에서 남쪽으로 7km 떨어져 있으며, 11세기 이 땅을 기부한 조지아인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 지금의 수도원 건물은 12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조지안, 비잔틴, 불가리안의 건축 양식이 섞여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한다. 어떤 것이 조지안이고 비잔틴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매한 눈에도 수도원을 둘러싼 산새와 교회 곳곳에 선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중정에 면한 건물 외벽의 프레스코화는 특히 아름다웠다. 사각으로 요새화된 모습과 주변 풍광, 거기에 아치형 발코니까지 릴라 수도원과 매우 닮은 모습이었는데 릴라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전체적으로 여성스러운 색상과 구석구석 섬세한 장식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프레스코화 덕분에 릴라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다른 수도원 뿐만 아니라 어느 관광지에서도 본 적 없는 노점들이 유료 주차장에서 수도원에 이르는 500여미터 남짓한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불가리아 전통 문양이 그려진 토기와 꿀과 잼 등의 병조림을 파는 가게들이 다수였고 그 사이사이 군것질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이제 어엿한 주부가 되었기에 접시, 밥공기, 도마와 함께 겨울을 날 잼과 꿀을 구입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어디서 사든 꿀 한 병에 6레바(3유로), 작은 도마 하나에 3레바(1.5유로)라는 것으로 소피아, 반스코, 기타 등등 구경한 도시 모두에서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짐을 손에 들고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새삼 세월을 느꼈다. 여행 초기에는 명품 가방을 사고 옷가게를 기웃거렸는데 그렇게 사봤자 부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꽤 오랫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밥공기와 도마가 웬 말이냔 말이다. 일본에 여행가서 코끼리밥솥을 사왔다던 그 시절 그 주부들 마음이 이제사 백번 이해가 된다.
4. 스몰랸.
포마치(Pomarks, Pomatsi)는 불가리아 남부, 마케도니아 남부, 그리스 북부 등지에 사는 슬라브계 무슬림을 지칭한다. 불가리아에서는 이들을 공식적으로 불가리안 무슬림이라 부르며, 그리스와의 국경을 불과 18km 앞에 두고 있는 스몰랸에 다수가 거주한다. 오토만 양식의 가옥들과 생활 양식이 남아 있는 곳이나,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불가리아 국립 천문대 때문이었다. 해발 1000m에 위치한 도시는 '검은'골짜기와 '흰'강을 따라 길쭉하게 형성되었는데 로젠산 꼭대기에 있는 천문대에서 천체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거대한 '성 비사리온 대성당' 맞은편에 있는 플라네타륨, 천문관이었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그곳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우주쇼'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그것을 관람한 후 진짜 천체를 볼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스케쥴이 달라져 있었고, 안타깝게도 정보를 주고 받기에 안내소 직원의 영어 실력도 나의 불가리아 실력도 형편 없었다. 한 시간 후면 불가리아어로 진행되는 '우주쇼'가 시작된다고 했다. "불가리아어를 전혀 모르는데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까요?"라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물으니 "다아. 다아." 결론은?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코흘리개 꼬맹이들 틈에 끼어 목이 부러져라 올려다 본 우주의 모습은 충분히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