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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Mar 18. 2016

전성기의 유물_부즈루자,불가리아.

두번째 여름, 불가리아[4]


쉬프카.Shipka.패스는, 세르비아 동쪽 끝에서 불가리아 동쪽 끝 흑해까지 이어지며 불기라아 땅을 남북으로 나누는 발칸 산맥을 넘는 길로, 산맥의 남쪽 스타라자고라주와 북쪽 가브로보주를 연결한다.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패스와 같은 이름의 쉬프카 마을이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산 위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기에 점심거리를 사러 마을 광장의 작은 가게에 들렀다. 상인은 '곤니찌와'와 '아리가또'를 알고 있었다. 가게에 함께 있던 그의 딸을 통해 물으니 일본인 관광객을 실은 커다란 버스가 곧잘 가게 앞 광장에 선다고 했다. 쉬프카 인근에 장미 축제로 유명한 까잔럭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축제가 열리는 5월이면 작은 마을이 일본인으로 가득 찬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어쩌다 일본인 사이에 이곳이 유명해 졌을까. 크로아티아에 왜 그렇게 한국인이 많은지 궁금해 하던 여러 얼굴이 떠올라 나야말로 아무 일본인이나 붙잡고 물어볼까 싶었지만 아무 일본인이 있을 리 없었다.     



19세기 말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5,000명의 러시아군과 2,500명의 불가리아 자원병들은 쉬프카 패스에서 4만 명의 투르크 군대와 싸워 이긴다. 500년 동안 불가리아를 지배한 오토만이 물러가자, 불가리아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역사적 전투가 벌어졌던 쉬프카에 비밀리에 모여 '불가리아 공산당'의 전신인 '불가리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의 창설을 도모하였다. 1981년 '불가리아 공산당'은 이를 기념하고자 역사적인 쉬프카 패스의 부즈루자산 꼭대기에 거대한 기념물을 지어 공산당 본부로 사용하는데, 1989년 불가리아가 공산주의를 포기하면서 '공산당' 역시 재편되었고, 1,441m 산꼭대기에 대동단결하여 의기투합했던 호시절이 끝났으니, 호기롭게 지은 건물의 운명 또한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라 이름에서 '인민'을 떼어 낸 불가리아 정부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부술 여력이 줄곧 없었고, 부즈루자는 내내 방치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것이다.

쉬프카 패스 정상에서 패스와 연결된 산길을 따라 십여 킬로미터를 더 달렸다.


우리는 부즈루자가 올려다 보이는, 구획이 그려진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거진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갔는데, 올라가서 보니 코 앞까지 차로 갈 수 있었다.  


근사하지요.


이렇게 크게 보일 때까지 정말 한참 걸었다.


로마의 포로 로마노나 터키의 히에라폴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다.


Never Forget your past. 버려진 뒤 누군가가 쓴 Forget your past 앞에 Never가 다시 추가되었다.


계단을 다 올랐을 때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말똥 지뢰밭. 새 떼든, 개 떼든, 무엇이든간에 떼로 몰려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단지 살아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똥 떼를 대면하고 알게 되었다.


지붕 붕괴 위험으로 정부가 건물의 출입구를 봉쇄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는 누군가가 뚫어 놓은 개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비밀의 입구를 찾아 건물을 시계 방향으로 돌았는데, 건물이 하도 크다 보니 한 바퀴를 다 돌 무렵에는 입구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이 다 상했다. 계단을 오르며 만난 영국인 관광객도 입구는 없고 쉿만 있다며 쉿 소리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입구는 건물의 오른쪽 코너에 바로 있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면 금새 찾았을 터였다. 입구를 발견한 나는 너무나 기뻐 여길 어떻게 기어올라 갈까 궁리하고 있는데, 심난하게 생긴 입구의 모습에 언제나 안전 제일 주의 남편은 들어가지 말자고 말렸다. 마침 건물 안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 구멍에 몸을 집어 넣고 말을 건네니 그곳에 이미 압도당한 젊은이들이 킹왕짱 멋지다며 수월하게 구멍을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여기를 밟고, 저기를 밟은 다음, 한 쪽 무릎은 여기, 그 다음에 저기. 그들이 알려준 대로 신중히 발을 딛으며 부서진 콘크리트 사이로 삐져나온 철근을 피해 구멍을 기어올라 부즈루자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가 이번 불가리아 여행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이었다.


짜잔.


뚫린 천장으로 홀 내부에 눈이 내리고 있는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었다.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지붕과 천장에 쓰인 구리는 도둑들이 다 떼어 갔다.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들이여!


'그냥 머리통!'의 주인공은 1954년부터 1989년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한 지브코프. 나머지 둘도 공산주의 정치인들. 지브코프의 얼굴이 유난히 깔끔하게 떼어진 것에 대한 루머 중 하나는, 그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지워달라고 지인을 통해 은밀히 정부에 요청했다는 것.


엥겔스, 막스, 레닌. 

안팍의 벽화와 모자이크를 만드는데 60여명의 예술인들이, 건물을 짓는데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되었다. 총 비용은 칠백만 유로, 우리 돈으로 백억. 건축비 역시 전국에서 모인 '기부금'으로 해결하였다.


이렇게 멋진 곳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없어요.


차를 세운 곳은 바람 한점 없었는데 이곳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심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붉은 별이 루비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한때 돌아 저것을 떼어가려는 도둑들이 총을 쏴 댔다고. 탑의 높이는 무려 107m.


이쯤 되니 고민이 생긴다. 

불가리아에서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1. 일곱 개의 릴라 호수 

2. 부즈루자. 


부즈루자에 재생 가능한 것은 어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자체로 거대한 쓰레기 덩어리였다. 민둥산을 내려오던 길, 영양가 없는 그 땅을 뚫고 자란 예쁜 야생화가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서 몸을 일으켜 꼿꼿이 서려는 모습에 부즈루자의 잔상은 더욱 짙어졌다.  


만약 정부에게 저것을 고칠 돈이 생긴다면 그들은 부즈루자를 어떻게 만들지 궁금하다.


비, 바람, 눈, 햇볕 다 맞으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역시. 갑자기 몰려 온 구름에 몸이 떨리도록 추웠다.


쉬프카 패스와 부즈루자를 연결하는 십여 킬로미터 남짓한 도로 주변이 이렇다. 


아름답지요.



2015년 7월.



                              

> 안으로.

요렇게 생겼다. 돌무더기를 한참 밟고 올라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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