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여름, 불가리아[3]
사소한 것 조차 마음에 담아두고 머릿속에 기억하는 성격이 정작 나는 별 불만이 없는데 남편은 꽤 피곤한 모양이다. 지난 주말 전에 살던 한남동에 들를 일이 있었다. 볼일을 보고 거리를 걷다가 한 식품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가게 앞에 과일이나 선물 셋트 등을 전시해 놓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게로, 우리가 한남동으로 이사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그곳에서도 아주 오래된 가게 중 하나이다. 가게 앞에 쌓여있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커다란 귤을 보고, 며칠 전 귤이 먹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있던 남편이 귤을 사라며 나를 멈춰 세웠다. 내가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산 것은 딱 한 번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제 막 이사온 동네이니 단골 가게가 있을리 없었고 여기저기 아무데서나 물건을 사며 분위기를 살필 무렵이었다.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 가게에 들러 담배 두 값을 달라고 청했다. 내가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는 것을 보고 초로의 주인장은 말했다. 담배는 카드 안 되요. 담배 팔아봤자 얼마 남는다고. 나는 이런 류의 엄살 떠는 소리를 싫어하는데, 카드를 받았을 때 그들이 보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현금을 받았을 때 보다 조금 적은 마진이기 때문이다. 그 가게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남편은 그게 몇 년도의 일인지를 나에게 환기시키며(2007년이다.) 나처럼 뒤끝(나는 이것이 나쁜 것이라고만은 생각치 않는다.)이 긴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며 죽는 시늉을 했다.
이런 내가 그 거칠고 아름다운 언덕에서 나를 향해 그곳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보냈던 그녀를 잊었을 리 없다. 하물며 불과 일 년 전의 일이 아닌가. 코프리브쉬띠쨔로 향하던 길에서 차창 밖으로 엇비슷한 언덕이 보일 때면 그녀가 떠올랐고, 남편의 손을 잡아끌고 그 언덕으로 오를 때에는 혹시나 그녀가 그때처럼 소와 염소와 양을 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대했다. 마법처럼 그녀는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소와 함께 언덕에 있었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을만큼 그녀의 존재가 반가웠다. 지금 이곳에 남편과 함께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데, 그 모든 시간을 거슬러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마음이 벅차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해바라기처럼 커다랗게 웃으며 다가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도 인사했다. 나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얼굴을 그녀에게 보였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지난 여름의 일을, 그녀가 나의 추억의 일부임을 알리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그 언덕에서 나처럼 그녀와 만나고 스쳤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나에게 손에 쥐고 있던 소의 고삐를 건네며 사진을 찍게 했고, 아...아줌마 나 기억 못하나봐. 라고 말하며 웃으며 울상인 나를, 목동을 귀찮게 해서 소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한 도시 관광객처럼, 남편이 카메라에 담자, 그녀는 오케이, 오케이라고 말하고는 내게서 고삐를 건네 받았다. 그녀의 오케이는 기념이 될 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그만 안녕의 오케이였다.
201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