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고 싶은 동쪽,발칸_[Fin]
카르파치아의 산들은 검푸른 빛으로 저 멀리 물러나 있었고 너른 밭을 가는 것이 말인지 소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트란실바니아 평원은 거대했다. 그곳에 난 1번 국도는 이질적 요소였다. 마차와 트랙터가 짙게 깔린 말쑥한 아스팔트에 또렷이 그러진 흰색 차선 사이를 우리와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들을 수없이 앞지르자 그 넓은 평원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평원은 본연의 푸른 빛을 저녁 거미에 잃은 지 오래였고 초승달 모양으로 뜬 성급한 보름달은 점점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국도를 나와 브란을 향해 달릴 무렵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어둠이 내려 앉았다. 어둡기 전에 도착해 오늘밤 잘 곳을 찾아야 한다며 내내 졸였던 마음이 편안해 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며 지평선이 사라진 후였다.
논란의 여지없이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최고의 관광 상품이다. 트란실바니아와 왈라키아의 경계에 위치한 브란은 소위 '드라큘라의 성'이라 불리는 '브란성'으로 유명하다. 관광지답게 거대한 네온 간판을 단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늦은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어 우리는 몇 군데를 둘러 본 후 호텔을 정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적은 돈으로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바스락 소리가 나는 하얀 시트가 깔린 푹신한 침대와 먼지 한 톨 없는 화장실 그리고 브란성이 보이는 발코니를 가진 호텔 방을 우리나라 소도시 여관 값에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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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브란성은 드라큘라와 별 상관이 없다. 소설 '드라큘라'의 작가 브람 스토커가 소설을 쓸 때 모델로 생각했다는 '블라드 3세'도 마찬가지다. 브란성의 역사는 이러하다. 14세기 왈라키아와 트란실바니아를 잇는 브란 패스.Bran Pass.를 지키기 위해 요새로 처음 지어졌고, 그 후 통관소로 사용되었다. 20세기 초 루마니아 왕국의 제2대 왕의 왕비에게 헌정되었으나, 루마니아의 역사와 함께 성의 소유권이 이리저리 바뀌었고, 정부가 불법적으로 소유한 재산에 대한 반환 소송이 법으로 허용된 2005년 성은 루마니아 왕국의 제2대 왕의-막내딸의-아들에게 돌아갔다. 브란성이 대중에 개방된 것은 2009년의 일이다.
‘드라큘라의 성’이 된 내막은 이러하다. 소설 ‘드라큘라’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족족 흥행에 성공하자, 미국의 조사단이 소설 속 드라큘라의 성 ‘보르고 파스’를 찾기 위해 1950년대에 루마니아에 들어온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보르고 파스’라는 지역에는 성이 없었고, 그곳으로부터 이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브란에서 영화(!) ‘드라큘라’에 나온 성과 얼추 닮은 성을 발견하고는, 미국 조사단과 그들의 활동에 협력하던 루마니아 정부가 브란성을 ‘드라큘라의 성’으로 지목하였다. 브람 스토커는 단 한 번도 루마니아에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의 소설 이전까지 루마니아에는 '흡혈귀'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없는 연결 고리를 굳이 찾자면, 소설의 모델인 블라드 3세가 이곳을 몇 차례 들렀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블라드 3세 역시 '잔혹한 냉혈마'라는 타이틀을 갖기 억울하다. 그는 왈라키아의 강력한 군주이자 오스만과 맞서 싸운 용맹한 전사였다. 그가 군림할 당시 엄한 처벌을 앞세워 사회질서를 확립시켰는데, 국내 경제의 보호를 위해 작센인들의 무역 활동을 규제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작센인들이 그가 인육을 먹는다는 둥, 피를 마신다는 둥의 소문을 퍼트렸다. 그의 별명 ‘드라큘레아’ 또한 그의 이미지를 완성하는데 한 몫을 했다. 그의 아버지 블라드 2세는 오스만에 대항해 결성된 ‘용의 기사단’의 일원이 된 후 ‘블라드 2세 드라큘(용)’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접미사 ‘-에아.-ea’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란 뜻으로, 아버지 드라큘의 아들인 블라드 3세가 드라큘레아가 된 것이다. 그전까지 ‘용’이란 개념이 없던 루마니아에서 용은 두려운 존재, 악의 존재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하여 ‘용의 아들’은 억울하게도 ‘악마의 아들’ 되어버렸다.
루마니아는 드라큘라의 나라도, 흡혈귀의 나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으스스하고 온갖 잔인한 것들로 채워졌으리라 기대되는 브란성의 내부는 마지막 거주자였던 루마니아 왕국의 퀸 마리의 콜렉션으로 꾸며져 있었다. 각인된 이미지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쓸데없는 부산물이 내게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그랬다. 결말 없이, 하다 만 대화처럼, 만들다 만 영화처럼, 클라이맥스에서 갑작스레 뚝 끝나 버린다. 긴장의 완화도, 흥분의 진정도, 갈등의 해결도 없이 그냥 뚝. 고맙게도 공항은 완충지대이다. 숲에서, 바다에서, 직장에서, 호텔에서, 여자 친구의 젖무덤에서 불과 몇 시간 전에 떠나온 우리들은, 현대적이고, 소란스럽고, 엄격하고, 비싼 그곳에 모여 넋을 잃고 진이 빠진 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