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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Mar 24. 2016

당신을 지켜보는 눈_시비우,루마니아.

서쪽이고 싶은 동쪽,발칸_[50]

TV 요리 프로그램 ‘오늘 뭐 먹지?’의 ‘배워 봅시다’ 코너에 전국에서 아귀찜을 가장 맛있게 한다는 고수가 나와 아귀찜을 만들었다. 두 MC는 예의 그렇듯 열심히 따라 하고 즐겁게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내가 그때까지 아귀찜을 먹어 본 것은 서너 번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2008년이 마지막이었다. 내 기억 속 아귀찜은 맵고, 콩나물이 많고, 풀처럼 미끄럽고, 마늘 맛이 많이 난다는 정도였고, 그동안은 아귀찜이 먹고 싶다 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몽정을 경험하고 이제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사내아이 같은 표정으로 황홀경에 빠져 정신 없이 아귀찜을 먹고 있는 신동엽과 성시경을 보고 있자니 나는 몹시도 아귀찜이 먹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나는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하루 일과를 보고하며 아귀찜 이야기를 했다. 공덕동에 모시깽이 고수가 하는 아귀찜 집이 있는데 그 아저씨가 신동엽네 나와서 아귀찜을 만들었고 아마도 기똥차게 맛있나 봐라고, 우리도 언제 한번 먹으러 가보지 않겠냐고. 남편은 그러자고 했고, 그가 어느날 우연히 그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게 된 다음에는 ‘오늘 뭐 먹지?’라는 대화를 우리끼리 주고 받게 되면 아귀찜을 후보에 올렸다. 아귀찜이 화두에 오른 어느 주말, 우리 부부는 정말로 아귀찜을 먹으러 공덕동에 갔다. 유명한 집이라더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두 시간, 식탁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까지 사십 분을 기다린 끝에야 드디어 붉고 거대한 아귀찜을 받을 수 있었다. 아귀찜의 맛은 내 기억 속 아귀찜과 거의 일치했다. 맵고, 풀 같고, 마늘 맛이 많이 났다. 한 가지 내가 생각치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귀의 살이 물컹물컹하고 매우 미끄럽다는 것이었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아귀는 쫄깃하나 약간은 퍽퍽한 살을 가진 생선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다른 식당에 비해 월등히 많은 양을 자랑한다는 아귀의 양이 달갑지 않았고, 그 흐물거림과 물컹함은 식당 전체에 베인 비린내에 진작부터 상해 있던 비위에 한 몫을 보탰다. 불투명한 뼈와 껍질과 물컹한 살을 골라 내고 나니 남은 것은 콩나물뿐이었기에 우리는 얼른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 안의 비릿함을 가득 안고 막히는 강변북로에서 서 있으니 헛웃음이 났다. 나는 아귀가 어떤 생선인지도 모르고 아귀찜을 먹고 싶어 했던 것이다. 아귀는 원래 미끄럽고 물컹하며, 아귀찜이라는 것은 원래 맵고, 콩나물과 마늘이 많으며, 찹쌀 풀을 넣는다. 뭔지도 모르는 아귀찜을 먹겠다고 그 멀리까지 가서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그 아까운 것을 버렸으니, 이는 도가니탕에서 도가니를 골라낸 것과 다를 바 없고, 도토리묵 무침에서 도토리묵을 한쪽으로 치워 놓은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탕수육에서 튀김 껍질을 벗겨 먹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만인으로부터 그리고 전문가로부터 인정받은 음식이 나에게 맛이 없다면 그것은 맛있는 음식인가 맛없는 음식인가. 여행도 그렇다. 남들이 좋다고 추천한 여행지에서 시무룩해 본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공인된 수많은 여행지 중 내가 정말로 좋아할 곳을 골라내려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돈과 시간을 버리지 않고 입에서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여행기를 읽은 누군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희영씨는 자의식이 과한 사람으로 느껴져요.’ 세상을 모르는 만큼 나는 나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는 터라 자의식이란 단어에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나 국어사전을 다 찾아보았다. 무엇이든 과하면 모자란만 못하기에 그 말에 잠깐 속이 상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현재의 백수건달 신세에 대한 한탄과 반성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누구라도 삼 년쯤 나와 같은 생활을 한다면 나처럼 되지 싶은데... 어쨌거나 나에 대해 새로운 두 가지를 추가하게 되었다. 나는 아귀찜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나는 귀가 얇은 사람이다. 도시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손꼽았다는 이유로 시비우를 선택했다. 반성한다. 앗, 그러고 보면 이 또한 자의식 과잉? 아이코, 그녀가 옳았나봐. 

해가 저물 무렵 도착한 곳은 비스트리차.Bistrița.였다. 달리던 것을 멈추고 적당히 먹고 적당한 곳에서 잤다. 


나의 발칸 여행도, 남편의 짧은 여름휴가도 이제 이틀 남았다.


반나절을 달려 시비우에 도착했다두어 시간 거리에 브라쇼브가 있다남카르파치아 산맥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남들이 좋았다고 해서 고른 곳, 시비우.


루마니아 땅 구석구석을 여행한 누군가는 가장 좋았던 곳으로 이곳을 꼽았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좋을 수 있어요.


시비우는 2007년 유럽 문화 도시로 선정되었다. 중세의 건물, 광장, 박물관, 카페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브라쇼브, 시기쇼아라, 시비우를 '작센 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다른 두 도시처럼 중세에 독일인들이 단체로 이주했다.


문화의 도시답게 시청 옆 여행자센터는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친절한 직원과 세밀한 지도는 기본이었다


구시가는 건물 밑 통로나 아케이드로 연결된 세 개의 광장을 중심으로 마치 패스츄리처럼 겹겹이 팽창된 모습이다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조성된 도시의 남쪽에는 15세기에 건설된 성벽이 세 개의 탑과 함께 꽤 길게 남아 있다


골목을 헤매다


요런 통로가 보이면 쏙 들어가면 된다.


큰 광장. 15세기 초 광장이 처음 만들어 졌을 때는 곡물 시장으로 쓰였으나, 나중에는 주로 단두대교수대, ‘미친’ 사람을 가두는 우리가 자리를 차지했다뒤에 보이는 의회탑’ 밑을 통과하면 작은 광장으로 갈 수 있다


시비우는 고딕양식 건물들로 유명한 곳이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것.


!


지붕 위의 저 눈!!


썰에 의하면눈 모양의 창문은 이 지역을 지배했던 작센인들이 토착민과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작센인들의 법을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 당하고 있으니 똑바로 행동하라고.

 

수 세기가 흐른 뒤 차우셰스쿠 역시 시민들을 통제하는데 이 창문을 이용했다정부는 일명 반동분자’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모든 전화가 도청됐고 모든 편지가 뜯어졌다이웃 중 누가 첩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당신을 지켜본다. 하지만, 저 으스스한 창문 뒤에 무엇이, 누가 숨어 있는지 당신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게슴츠레하고 졸린 듯한 창의 모양에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지만조금 지나니 정수리와 목덜미가 근질근질한 기분이었다.


전기가 없던 중세의 시비우, 전기는 있으나 켤 돈이 없던 차우세스쿠 시절의 시비우의 모습이 그려졌다어둑한 밤거리를 걸을 때 나를 내려다보는 불길한 눈빛아무리 뜀박질을 해도 눈들은 계속 나를 따라오는 것이다지붕과 지붕을 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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