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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Mar 21. 2016

산골짜기의 일요일_마라무레슈, 루마니아.

서쪽이고 싶은 동쪽,발칸_[49]

마라무레슈.Maramureș.는 큰 강이라는 뜻이다. 큰 강의 이름은 티사.Tisa.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티사는 남쪽으로 내려와 루마니아의 시게츄 지역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굽이굽이 물결치듯 고부라진 강줄기는 수도 없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다시 루마니아에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정신없이 국경을 넘나든 티사는 서픈차를 지나 이웃마을 피아뜨라.Piatra.를 마지막으로 루마니아를 떠나고, 우크라이나로 다시 들어갔다가, 헝가리, 슬로바키아, 다시 헝가리를 지나 세르비아에서 다뉴브강을 만남으로써 티사라는 이름을 잃는다. 티사를 받아들인 다뉴브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사이를 흐르고, 루마니아의 동쪽 다뉴브 델타를 끝으로 흑해로 나가 바다가 된다. 우리는 티사의 지류인 이자.Iza.강이 흐르는 이제이 계곡.Valea Izei.을 따라 186번 도로를 달렸다. 수체아바와 마라무레슈를 연결하는 프리슬롭 패스의 론다산이 수원지인 이자는 티사강과 시게츄 지역에서 합쳐지는데, 이웃 나라들과 더불어 산 적 없는 섬나라 국민인 나로서는 이렇게 광대하고 초월적인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매번 압도당하고 만다. 이자강에 몸을 싣고 그것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면 힘들이지 않고 티사강으로 갈아타 헝가리에 가서 리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다뉴브강에 몸이 실려 루쎄를 지나갈 때면 강가에 서 있는 맨디에게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한국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물줄기가 중국과 몽골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을 지나 다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상상은 즐겁다. 소원을 적은 종이를 병에 담아 강에 띄워 보냈는데 십 년 후쯤 다시 돌려받을지 모를 일이다. 누가 아나요. ‘잘생기고 돈 많은 남편 얻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담았는데 저어기 카자흐스탄의 웬 훈남 가스 재벌이 그 병을 발견하고 당신을 찾아 한국에 올지.


이자와 티사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브르사나 수도원을 나온 우리는 '진짜' 브르사나 수도원을 찾아 강을 거슬러 달렸다. 브르사나 마을 어귀 소와 말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수도원이 있다는 마을 언덕에 올랐다. 브르사나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마라무레슈 지역의 여덟 개 목조 교회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찾았을 때 수도원의 상태가 엉망이라 실망이 컸다. 언덕에 위치했음에도 나무에 둘러싸인 탓에 해를 제대로 받지 못했는지 교회 외관의 나무는 젖거나 썩거나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수도원 마당에 웃자란 잡초는 묘비의 키를 훌쩍 넘어 간혹 이는 살랑바람에도 청승맞게 몸을 휘청였다.   

브르사나 수도원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 다른 목조 교회들을 찾아 동쪽으로 향했다. 초짜인 우리는 길을 가다가 저 앞에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교회만 보이면 차를 세우고 교회를 구경했는데 그중에는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이 또한 세월이 지나면 그들의 유산이 되려나 생각하니 싱거운 허탕 또한 즐거웠다. 스트름투라.Strâmtura.마을을 지나 로자블레아.Rozavlea.의 오래된 목조 교회 앞에 차를 세웠다. 이제이 계곡을 따라 늘어선 마을들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나무 교회를 각각 가지고 있는데 로자블레아 역시 그중 하나로 유네스코 목록에는 올라가 있지 않지만 그 기금을 나눠 받아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예배당 현관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교회와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선 묘비들과 묘비 사이사이 소담하게 핀 색색의 꽃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교회를 나오니 손에 커다란 빵을 하나둘씩 든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일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두루뭉술한 옆구리, 뽈록 튀어나온 똥배, 펑퍼짐한 엉덩이를 강조한 게더스커트 차림의 할머니들 행렬을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멋지게 중절모를 눌러쓴 할아버지 한 분이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손에 들고 있던 고리 모양의 빵을 뚝 떼어 다짜고짜 내게 건넸다. 얼떨결에 두 손 모아 공손히 받아 들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뒤를 따르던 한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내 손목에 하나씩 빵을 걸어 놓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빵 세례에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남편의 눈도 나만큼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정교회에서도 영성체는 신자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영성체를 받는 방법은 조금 달라서, 신자가 사제 앞에 서서 입을 아 하고 벌리면 사제는 와인에 담근 빵을 숟가락으로 떠 신자의 입에 넣어 준다. 사제 옆에는 축성받은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복사가 서 있는데(사람 많은 브르사나의 경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신자는 그것을 원하는 만큼 집어 가져갈 수 있다. 신자 본인을 위해서, 손님을 위해서, 그리고 정교회를 믿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서. 주변과 나누라는 의미를 담은 빵은 사제로부터 축성은 받았으나, 예수의 몸이라 여기는(정교회에서는 양.Lamb) ‘그’ 빵이 아닌, 그저 유대와 동지애, 공동체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새것.
로자블레아.Rozavlea.의 목조교회.
크리스마스 리스처럼 생겼지요.



묵직한 빵은 무게감과 달리 껍질이 얇고 바삭했으며 속은 보드랍고 쫄깃했다. 우리는 빵 부스러기로 옷과 렌터카를 엉망으로 만들며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활짝 연 차창으로 보이는 마라무레슈의 농촌 풍경은 경의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을을 앞두고 아침저녁 차가워진 날씨에 여리한 연둣빛을 띠는 들판, 야트막한 언덕에 동그란 그림자를 그리는 나무들, 바람에 흙냄새를 날리며 해를 바라보고 선 건초더미들. 우리는 그 풍경에 취해 각자 이따금씩 옷을 털며 말없이 빵을 먹었다.


보띠자.Botiza.마을에 대한 론리플래닛의 설명은 이러했다.  

‘마라무레슈 전체에서 가장 예쁜 마을 중 하나, 마을 사람 ‘모두’가 참석하는 일요일 9시 예배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

마을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였다. 마을의 한가운데 개울가 작은 가게 앞에 열몇 명의 할아버지들이 카드놀이에 열중해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미루어 일요 예배를 마치고 모인 듯 보였다. 그들은 놀이에 얼마나 몰입해 있던지 누구 하나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는 이가 없었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정류장 앞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정자에서도 할아버지들이 여럿이 모여 저들처럼 장기를 두는 것을 종종 보았다. 선수로 나선 이도, 훈수를 두는 이도 모두 다 진지한 그들만의 리그. 남편과 나는 자리를 잡고 서서 할아버지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는데 그 모습이 몹시 정겨워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마을은 론리플래닛의 말대로 정말 예쁜 곳이었다. 여러 갈래로 마을을 흐르는 작은 물길, 나무줄기를 엮어 올린 낮은 담장, 파스텔 톤의 가옥들 사이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짙은 색의 목조 주택들. 이따금씩 썬데이 베스트를 입은 동네 주민이라도 나타날 때면 마을의 모습은 완벽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이러했다. 어깨가 과장된 하얀 블라우스에 초록색과 빨간색이 섞인 꽃무늬 치마를 입고 치마와 같은 무늬의 보자기를 머리에 두른 할머니가 스쿠터를 타고 맵씨 좋게 모퉁이를 도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면 마치 미니미처럼 할머니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듯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 아이들이 커다란 빵을 뜯어먹으며 우리에게 눈길을 던졌다.


보띠자 마을의 목조 교회는 이웃 마을에 있던 17세기의 교회를 19세기 후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70년대, 마을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교회를 새로 짓기 전까지 그 '중요 이벤트'가 열렸던 곳도 오래된 교회였다.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데다 교회 옆 공동묘지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 평화롭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교회를 구경하고 다시 마을 광장으로 돌아왔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경로당의 할아버지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게임을 하는 노인들은 여전히 게임판에 얼굴을 묻고 있었고 멀찍이서 구경하던 노인은 아까와 같은 자리에서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말도 쉬고, 소도 쉬는 일요일, 산골짜기 마을은 재채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기분 좋게 나른하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마을.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이렇게 작은 마을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그들의 소중한 휴식을 우리가 방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곳이 어디든, 여행지의 삶을 따르는 여행을 꿈꾼다. 부활절에는 그들과 함께 달걀을 삶고, 라마단에는 그들과 함께 금식하며, 네삐에는 그들과 함께 침묵할 수 있는 그런 여행. 비록 그것이 한낱 흉내에 그칠지라도 말이다.

마라무레슈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곳에 머물겠어요.



이제이 계곡의 동쪽 예우드.Ieud.마을에는 두 개의 목조 교회가 있다. 하나는 언덕에, 다른 하나는 평지에 있어 두 곳을 구분하기 위해 예우드 평지 교회, 예우드 언덕 교회로 달리 부른다. 예우드 쉐쓰.Șes.평지.교회. Biserica de lemn din Ieud Șes.는 18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예배당 건물이 하도 크고 높아 아무리 고개를 꺾어도, 아무리 뒷걸음질을 쳐도 교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을 더 안쪽 산비탈에 언덕 교회가 있었다. 예우드 데알.Deal.언덕.교회. 14세기에 처음 지어진 교회는 17세기 타타르족의 공격으로 불탄 후 다시 지어졌지만 그럼에도 마라무레슈 나무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교회 지붕 밑에서 ‘예우드 코덱’이라고 불리는, 루마니아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문서가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언덕 교회 또한 여덟 곳의 유네스코 유산 중 하나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교회와 그 주변의 관리 상태였다.



마라무레슈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대문 옆 담벼락 아래 놓인 긴 나무 의자를 볼 수 있다. 스카운.Scaun.이라고 부르는 이 의자에는 한낮의 열기가 식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시간이면 어느 집이든 할머니들이 나와 앉아 있었다. 한 집에 여럿이 쪼르륵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었고, 간혹 혼자 앉아 있는 할머니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이웃 주민들의 이동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 구 유고연방 사람들의 주요 여가인 저녁 산책처럼 해가 지기 전 이곳 사람들의 하루 일과인 듯 보였다. 루마니아 북부의 아줌마들은 그 귀여운 복장 때문에 손에 비닐 봉지만 들고 있어도 보는 우리로 하여금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했는데, 그런 그들이, 그것도 단체로, 땅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의자 위에 동동 띄우고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 배 위에 터억 올려놓고 있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게 했다.

안녕히 가세요.
우리의 루마니아 하이라이트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너무나 짧아 꿈만 같았던 루마니아 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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