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고 싶은 동쪽, 발칸_[31]
세르비아에는 가지 않았다. 세르비아를 상상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코소보가 가장 먼저 떠올랐으나 머릿속 생각의 가지들은 그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자꾸만 뻗어 나갔다. 세르비아의 이미지는 코소보 분쟁 당시 그들이 행했던 잔혹사에 의해 각인되었고 그것을 내 조그만 머리통에서 털어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육 년 전의 짧은 발칸 여행 이후 나는 줄곧 옛 유고 연방의 모든 나라를 둘러볼 궁리를 했지만, 막상 그것의 실현이 코 앞에 닥치자 나의 편향된 성향이 어김없이 끼어들고만 것이다. 그리하여 베오그라드의 어느 호스텔에서 세르비아인 스탭으로부터 겪은 악몽 같은 경험 때문에 기약 없던 여행을 끝내고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동포 여행자의 메시지와 노비사드에서 현지인에게 당한 속임수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던 호주 여행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베오그라드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이나 노비사드의 우아한 요새에 대한 평가 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다가오고 말았다. 반대로, 코소보에 대해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동질감 비슷한 것이 들고는 했는데, 이런 류의 뿌리도 없고 본질도 모르는 감정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기에 나는 너무나 물러 터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시야와 포용을 갖기에는 나의 근성과 경험 또한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페야의 더러운 호텔에서 새벽같이 도망 나온 덕분에 오전 10시쯤 프리슈티나에 도착했다. 발칸에서의 오전 10시는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나는 체크아웃을 하려고 복도에 웅성웅성 모여 있던 다른 여행자들을 대표해 빈방에서 자고 있던 스탭을 흔들어 깨웠다. 잠이 덜 깬 그는 불 같이 화를 내는 대신 다행히 이렇게 말하고는
"미안해할 것 없어. 누군가는 깨웠어야 했는 걸. 깨워줘서 고마워."
내가 잔뜩 건넨 빨랫감을 고이 받아 세탁기에 밀어 넣었다. 나는 프리슈티나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냐고 그에게 물었다.
"할게 뭐가 있어. 여기처럼 심심한 곳도 세상에 없을 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라도 있을 거 아냐."
"좋아. 이건 호스텔 손님들이 너처럼 물어볼 때마다 내가 대답하는 프리슈티나의 관광 스팟인데 말야, 이거 보고 돌아와서 나한테 뭐라고 하기 없기다."
그러면서 그는 '뉴 본', '빌 클린턴 대로의 빌 클린턴 동상', '호스텔 주인이 운영하는 '맛집' 레스토랑'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
점심 무렵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도심의 보행자 거리는 금방이라도 산화될 듯 뜨거웠다. 유럽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수도 프리슈티나는 적어도 도시의 중심부는 새 것답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쓰레기 하나 없는 보행자 거리, 도로 양쪽에 풍성하게 놓인 화단, 바닥에서 시원하게 솟는 분수, 그리고 그 분수 위로 뛰어드는 아이들. 거리의 한쪽 구석 울타리에 걸린 코소보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빛바랜 사진만이 과거를 기억할 뿐이었다. 나는 도시의 북서쪽 오래된 모스크를 지나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았던 뮤지엄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북적이는 시장 골목을 누비며 과일 냄새와 치즈 냄새에 파묻히고 싶었지만 이 역시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었다. 허탕. 하여 도대체 '뉴 본'이 무엇이길래 '가보면 알아.'라며 그가 키득키득 웃었는지 장장 삼십 분을 걸어 찾아갔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NEW BORN'이라고 쓰인 조형물이었다.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호스텔에 돌아오니 리셉션 데스크 주변은 여행자들로 소란스러웠다. 먹통이 된 WIFI 때문이었다. 그동안 밀린 이메일을 보내거나 다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에 프리슈티나만큼 적당한 도시도 없다는 생각은 아마 다들 비슷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모두 동원해 조언하는 이가 있었고, 짜증에 가까운 불만을 토로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이도 있었으며, 빠르게 포기하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운 이도 있었다. 나는 다음날 코소보 프리슈티나를 출발해 마케도니아 스코페를 거쳐 불가리아 소피아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었고, 그 긴 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스코페발 소피아행 버스에 대해 각기 다른 경로에서 얻은 각기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한 정보가 반드시 필요했다. 일이 잘못되면 스코페의 그 수많은 동상들과 함께 발이 묵일 수도 있을 터였다. 'WIFI 연결요청'을 아무리 새로고침 해도 반응이 없자 나는 신호를 찾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2년 전,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고 바람이 멈추면 어김없이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 나를 몹시도 우울하게 만들었던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는 거짓말처럼 길에서 무료 WIFI가 잡혔었다. 네트워크의 이름은 'Tbilisi Loves You'. 트빌리시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Pristina loves me'를 기대하며 마치 외계에서 오는 신호를 받으려는 라엘리안처럼 손에 쥔 휴대폰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보행자 거리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하지만 수십 개나 되는 WIFI들은 하나같이 굳게 잠겨 있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보행자 거리의 어느 호화로운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가게보다 네 배나 비싼 값의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스코페에 있는 리타가 나 대신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며 커다란 접시에 치사하리만치 알량하게 담겨 나온 아이스크림의 사진을 찍어 메신저로 그녀에게 보내고는 양 적고 비싸다고 툴툴댔다.
"왜 맛이 없어?"
그녀가 물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그럼 그냥 즐겨!"
스코페의 마트카 계곡에서 독사와의 신경전을 피해 산책로를 되돌아 나오던 길, 리타를 만났다. 다른 두 명의 여자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는 며칠 전에도 나를 보았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서양인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마케도니아의 크루쉐보와 프릴렙에서 마주쳤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스코페를 떠나 코소보로 들어오던 날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다. 스코페와 코소보가 아무리 엎어지면 코 닳을 거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인데 출발하기 네 시간 전 서울에서처럼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휴대전화도 없이 옛날에 하던 대로 '몇 시에 어디서' 만나기로 한 그 상황과, 이런 낯선 도시에서 일면식만 있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만난다는 사실에 나는 배가 알싸할 만큼 긴장되었다. 십오 분이나 먼저 도착해 그 거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주위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슬렁대던 그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저 멀리서 걸어오던 리타의 모습도.
"스코페는 다 좋은데 말이지, 함께 춤추러 클럽에 간다거나 콘서트에 갈 친구가 없어서 그게 별로야. 나는 지금 남자친구도 없거든. 여기 친구들은 나보다 다 한참 어리거나 한참 늙었지 뭐야."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집인 리타는 나보다 딱 열 살이 많다. 그녀는 네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그때 막 다섯 개째의 학위를 받았다. 그 다섯 번째가 마케도니아어.
"왜 하필 마케도니아어야?"
"글쎄, 내 딸이 그러더라. '엄마는 언어 사용 인구가 이백만 명 이하인 언어에만 흥미를 가지는 이상한 취미가 있어.'라고. 아마도 그런가 봐."
그녀는 티벳어 박사이기도 하다.
"발칸 사람들은 죄다 EU에만 들어가면 나라 살림이 피네 어쩌네 하잖아. 그거 다 모르고 하는 소리야. 헝가리가 EU에 가입하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실력 있는 의사들은 모조리 독일이나 프랑스로 빠져 나가서 돌파리들만 남았어. 게다가 물가는 하늘 모르고 치솟지, 임금은 제자리지. 힘 없고 돈 없는 나라들이 EU에 들어가면 서유럽 부자 나라들에게나 좋은 거라고. 용역 이동의 자유? 말만 그럴 듯 하지. 그들은 들어와도 우리는 못 나가는 걸? "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예 생각도 않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사람들이 보통 그러잖아. 이 공부만 끝내고 나서, 돈을 좀 더 모으고 나서, 집 융자금만 해결이 되면... 세상에 그것처럼 바보같은 소리는 없어. 공부는 원래 끝이 없는 거고, 돈도 그래, 언제 돈이 충분했던 적이 있었니? 항상 부족하고 항상 더 필요하잖아. 근데 있지, 너의 아이가 그 작은 손으로 너의 목에 매달리고 너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그 부드러운 뺨으로 너의 볼을 비비잖아? 그럼 그제야 세상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구나 알게 될 거라고. 두고 봐."
스코페 오토만 지구의 작은 음식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종이 냅킨을 접시 밑에 깔아 두고 뜨거운 도자기 그릇에 담긴 마케도니안 콩요리와 식초를 뿌린 양배추 샐러드를 먹으며 그녀와 마주한 그 세 시간 만에 나는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아무렇게나 뿌려진 시럽들과 한데 엉켜 검은 접시에 요상한 무늬를 만들고 있을 때 페이스북 메신저로 그녀가 말했다.
"일단 버스 터미널에 전화로 불어 본 시간표는 이런데 말이지, 발칸이 어떤지 너도 잘 알잖아. 혹시 모르니까 내일 시내에 나가는 길에 터미널에 들러 창구에 확실히 물어볼게."
"괜찮아요, 귀찮게 뭐 하러 거기까지 가. 이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가 알아낸 시간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과 또 달랐다. 낭패였다.
호스텔의 WIFI는 여전히 불통이었지만, 그곳에서 발칸 여행을 시작한 이래 쉽게 볼 수 없었던 아시안 여행자를 세 명이나 만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대만에서 온 청년과 홍콩에서 온 남녀였다. 이웃인 우리는 우연히도 한방에 배정되어 침대가 여섯 개 놓인 방을 함께 쓰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방에서 그들과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어있던 두 개의 침대 중 하나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며,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그에게 나는 똑같은 양해를 구했다. 그는 상관없다고, 호스텔에서 그 정도가 뭐 대수냐고 시원스럽게 답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근데 넌 어디서 왔어? 그동안 어디 어디 갔었니? 유럽은 처음이니? 근데 너희들이 여행하기에 유럽은 좀 비싸지 않니? 그건 그렇고, 술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갈래?"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