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고 싶은 동쪽, 발칸_[32]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는 버스 시간표는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1. 스코페에서 코소보로 가기 전, 스코페 버스터미널 인포메이션 창구에 물어본 것:
7:00, 8:30, 12:30, 22:00, 24:00
2. 코소보의 프리슈티나의 호스텔 스탭이 스코페 버스터미널 웹사이트(sas.com/mk)에서 찾은 것:
7:00, 8:30, 15:00, 22:00, 24:00
3. 스코페에 있던 리타가 스코페 버스터미널에 전화해서 물어본 것:
7:00, 8:30, 13:30, 17:30, 22:00, 24:00
시어머니가 속이 답답할 때면 찾아가 '여쭙는' 용하다고 소문난 보살이 있다. 시어머니가 계시는 충북 단양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경북 영주 어딘가에 있는 곳으로, 좋지 않은 무릎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그 멀리까지 가실까 싶어 속 썩이는 자식으로서 염치가 없다. 아무튼, 시어머니는 그 보살과 '상담'에서 돌아와 그의 지침과 예언을 우리에게 전하실 때면 매번 긍정의 아우라를 뿜으시는데, 그도 그럴 것이 보살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비록 막연하기는 하나 한결같이 희망적인 내용이기에 그것을 들은 시어머니로 하여금 본인이 바라고 소망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그의 말은 이런 식이다.
1. 조금 먼 미래에
2.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니
3. '부적'을 소중히 지니고서
4.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5. 기다릴지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살의 점지가 맞았네 틀렸네 이분법적으로 결론 내릴 수는 없는데 그 이유 역시 그의 말이 워낙 두루뭉술하여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스스로가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으며 한시적으로나마 마음의 평안을 찾는 모습에 잘됐다 싶다가도, 조금 먼 미래가 곧 다가와 그 편안한 마음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리면 어쩌나 마음이 편치 않다.
세 가지 버전의 시간표를 앞에 두고 나는 논리적인 전제를 찾지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도 못했다. 아마도 느닷없이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 줄 거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1. 프리슈티나→스코페 이동은 2시간이 걸리고, 프리슈티나에서 출발하는 첫차는 6시이다.
= 스코페 출발 첫차인 07:00 버스는 자동 탈락.
2. 스코페 출발 8:30분 버스를 타려면 프리슈티나에서 6시 첫차를 타야 하고 그러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싫음.
3. 스코페→소피아 이동은 5~6시간, 한 시간의 시차를 생각하면 가능한 일찍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
= 오후 늦게, 혹은 밤 늦게 출발하는 버스 제외.
4. 남은 것은 12:30, 13:30.
= 12:30 이것이 딱 좋겠구나.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짐을 꾸려 택시를 타고 프리슈티나 버스터미널로 갔다. 8:30에 버스를 탔고 오전 11시 조금 넘어 스코페에 도착했다. 얼토당토않은 논법으로 12:30에 출발하는 소피아행 버스가 있다고 확신한 나는, 그럼에도 혹시나 발칸 답게 12:30 버스가 없다면 13:30 버스를 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름도 예쁜 소피아에 갈 기대에 부풀어 버스표를 파는 창구로 돌진하듯 걸어가
"12시 30분 소피아 한 장!"
이라고 우렁차게 외쳤다. 하지만 중년의 매표소 여자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려 코 끝에 걸린 안경 너머로 나를 한 번 째려보고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메모지에 무언가를 휘갈겨 창구의 유리 칸막이 아래에 난 동그란 구멍으로 휙 하고 던졌다. 이면지를 잘라 만든 메모지에 쓰여 있는 것은,
17:30.
"에엥? 열두 시 반 버스 없어요?"
여자는 다시 한 번 나를 쫘악 째려보더니 들고 있던 볼펜 끝으로 메모지를 가리키고는 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그럼, 한 시 반... 한 시 반은요? 응? 그 버스는요??"
여자는 더 이상은 나와 볼일이 없다는 무자비한 표정으로, 내 자리를 이미 반쯤 침범하며 아까부터 내 배낭을 밀고 있는 내 뒤의 남자를 향해 눈썹을 추켜올렸다.
"다음!"
말 그대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창구에서 물러나 사람들로 붐비는 대기실 의자로 가서 앉았다. 한 시간 후면 탈 줄 알았던 버스가 없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12시 30분 버스를 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5시 30분 버스를 기다리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스코페 시내를 여섯 시간 동안이나 배회하고 싶지 않았다. 밤 12시가 다 되어갈 늦은 시간에 택시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피아에 도착하고 싶지도 않았다. 매표소 여자가 매정하게 내던진 종이 쪼가리를 손에 움켜쥐고 등에 붙은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간신히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땅바닥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나의 꼴은 아마도 종이쪽지로 결별을 통보받은 실연당한 여자의 몰골이었으리라.
다리가 저려 더 이상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네 어쩌네 잘난 체를 했지만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렸다. 가장 쉽고 가장 편하다는 이유로. 비참한 심정으로 매표소로 다시 돌아가 오후 5시 30분 버스표를 산 후, 도대체 소피아행 버스의 시간표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스코페 버스터미널 인사과는 직원을 뽑을 때 귀찮은 고객을 앞에 두고 얼굴을 얼마나 쌀쌀맞게 만들 수 있는지 말을 얼마나 퉁명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실기 면접을 보는 것이 분명하다. 아까와 다른 중년의 매표소 직원 역시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신경질적으로 메모지에 시간을 적고는 프리스비를 날리듯이 솜씨 좋게 창구의 구멍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녀가 적은 시간은
<07:00, 17:30, 24:00.>
흠.
스코페에서 묵었던 호스텔에 찾아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는지 호스텔 스탭은 샤워실이나 타월 등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쓰고 마음 편히 있다가 가라고 친절히 대해 주었지만 침통한 기분은 쉽사리 털어지지 않았다. 겸연쩍은 여섯 시간을 보낸 뒤에야 나는 드디어 소피아 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 버스라는 것이 창문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작은 봉고차였기 때문에 태양의 기세가 한풀 수그러들 때까지 거의 네 시간 동안이나 습하고 뜨겁고 불편한 차 안에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질문: 두 달 발칸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이동은?
대답: 스코페에서 소피아 갈 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음.
열두 시를 이십 분 남기고 소피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