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에 더 플레이트라는 파스타 가게가 있었어요. 한 광고 프로덕션이 그 앞에 커다란 건물을 짓기 전까지 그저 한가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했던 가게는 그 일대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입소문 난 곳이었어요. 날씨가 좋은 날, 게다가 급하게 처리할 일도 없는 날이면 일부러 찾아가 점심을 먹었고, 괜히 집에 일찍 가기 싫은 날 그래서 밥도 하기 싫은 날, 남편과 중간에 만나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갔지요. 그 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버팔로 치즈를 넣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였는데, 부드럽고 고소한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가 커다란 덩어리로 듬뿍 들어 있었습니다.
쌀밥에 김치에 치즈만 있어도 한 달 동안 불평불만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치즈를 좋아했으니, 채식을 하며 아쉬운 것이 첫째도 치즈, 둘째도 치즈예요. 누군가가 "나 오늘 이 치즈 만들었어. 맛이 끝내줘!"라고 자랑이라도 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치즈를 따라 만들거나, 없는 재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주문을 하곤 해요. 헌데 비건 치즈라는 놈은 그 출생의 한계 때문인지 진짜 치즈만큼 맛있지가 않아요. 독일 친구가 가져온 공장산 비건 치즈를 먹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맛과 식감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인터넷이나 책을 보며 따라 만든 비건 치즈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요. 별 맛도 없는 치즈를 가지고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둥, 게임 체인저라는 둥 호들갑을 떠는 서양인들 덕에 엉터리 같은 비건 치즈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만들었어요. 어떤 날은 하루에 세 통을 만들기도 했는데. 남들은 맛있어 죽겠다는데 왜 나는 맛없어 죽겠는가, 내가 계량을 잘못했나, 어떤 과정에서 실수를 했나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기니까요. 만들고 또 만들어도 그들처럼 제 인생이 바뀌지 않는 거예요. 맛대(때)가리도 없는 비건 치즈를 수없이 만들고 나서야, 인생이 바뀐 부러운 그들과 여행 중에 만난 그들의 인상을 결부시킬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여정에 대해 서양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웠어.
환상적이었어.
끝내줬어.
굉장했어.
짱 멋졌어.
반면 나는,
가는 길에 개고생,
성채는 힘들게 올라갈 필요 없었고,
교회는 생각보다 별로,
버스는 이번에도 역시나였지.
이런 나의 말을 듣고 있는 그들은 어쩐지 당혹스러워했고 꽤나 불편해 보였다. 하여 나중에는 나 역시 찬양 조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그들은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대체로 칭찬 일색인 여행에 대한 그들의 감상과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 하였는데도 좌불안석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추리해 보았다.
그들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and/or
그들은 억수로 운이 좋았다.
and/or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서양의 매너이다.
그러니 이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는 완성이라기보다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보는 게 옳아요. 아쉬운 대로 감사히 맛있게 먹겠지만 뭔지 모르는 무언가가 조금 더해졌으면 하는 그런 맛이거든요. 마치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주신 떡볶이 같아요. 좋은 쌀떡, 갖가지 유기농 채소, 태양초 고추장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 길거리에서 파는 시뻘건 양념뿐인 밀가루 떡볶이와 비교해 덜 맛있는 것처럼요. 저처럼 치즈를 그리워하는 실험정신 투철한 누군가와 함께 발전시켜 보고 싶어요. 백지장 맞들기라는 말은 꺼낼 필요도 없어요.
재료:
캐슈넛 140g
비건 두유 요거트 250g
소금 5g
타피오카 전분 20g
아가아가 파우더(한천 가루) 12g
찬물 120g
만들기:
1. 캐슈넛을 불리고, 헹구고, 물기를 뺍니다.
2. 블랜더에 불린 캐슈넛과 비건 두유 요거트, 소금을 넣고 곱게 갈아요.
3. 2를 뚜껑 있는 깨끗한 유리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고 실온에 둡니다. 요거트 만드는 거랑 똑같이 생각하면 돼요. 원하는 맛이 될 때까지 계절에 따라 한나절에서 이틀까지 둘 수 있어요.
4. 원하는 맛이 되었다면, 3에 타피오카 전분을 넣고 잘 저어요.
5. 치즈를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에 따라 준비물이 달라요. 버팔로 치즈처럼 만들고 싶다면, 커다란 믹싱 볼에 찬물과 얼음을 가득 채우고, 아이스크림 스쿱과 비닐 랩을 준비해요. 커다랗게 한 덩어리로 만들고 싶다면, 치즈를 담아 식혀 굳힐 몰딩(그릇)을 준비하면 됩니다.
6. 냄비에 찬물과 아가아가 파우더를 넣고 잘 녹인 다음, 뚜껑을 덮고 약불에서 3-4분 정도 끓입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부글부글 거품이 마구 일어나 있을 거예요.
7. 6에 캐슈+요거트+타피오카 섞은 것을 넣고 실리콘 주걱으로 열심히 저어요. 금방 멍울이 생길 거예요. 계속 젓다 보면 멍울이 풀어지고, 반짝반짝 윤이 나고, 쭉쭉 늘어나고, 되직해집니다. 그럼 불에서 내려요.
8. 커다랗게 한 덩어리로 만든다면, 몰딩(그릇)에 치즈를 쏟아붓고 굳기를 기다리면 돼요.
8. 버팔로 치즈 모양으로 만들고 싶다면, 비닐 랩에 치즈를 넣고 돌돌 말아 얼음 물이 든 믹싱 볼에 빠트려 식히고 굳혀요. 믹싱 볼째 냉장고에 넣으면 더 빨리 굳을 거예요.
팁:
0. 미요코 쉬너의 버팔로 모짜렐라 레시피에서 기름을 빼고 물을 줄이는 등 수정했어요.
1. 보관은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해요. 진짜 생 모짜렐라나 버팔로 치즈처럼 소금물에 담가 보관하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그들에게는 락앤락, 글라스락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2. 한 덩어리로 만든 치즈의 경우 면보나 종이타월 혹은 유산지 등으로 싸고 비닐랩으로 단단하게 감싸 지퍼백에 넣어 보관하면 치즈의 물기를 제거할 수 있어요. 그러면 더 단단한 치즈가 되고 갈 수도 있습니다.
3. 비건 치즈를 만들 때 치즈를 단단하게 만드는 응고제는 우리가 양갱이나 젤로를 만들 때 흔히 쓰는 한천가루(아가아가) 외에 카파 카라기난이 있어요. 카파 카라기난은 아가아가와 마찬가지로 해조류에서 추출하는 비건 재료예요. 아가아가로 만든 치즈와 카파 카라기난으로 만든 치즈는 결과에 있어 커다란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는데, 아가아가로 만든 치즈는 카파 카라기난으로 만든 치즈에 비해, 덜 단단하고, 열을 가했을 때 진짜 치즈처럼 자연스럽게 녹지 않아요. 즉, 카파 카라기난으로 만든 치즈가 진짜 치즈처럼 단단하고 열에 잘 녹는다는 거지요. 네이버 쇼핑에서 '카파 카라기난'을 검색하면, 두 곳의 판매상이 파는 각기 다른 포장의 카파 카라기난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 두 가지 모두로 치즈를 여러 차례 만들어 보았지만, 홈 치즈 메이커들에게 검증된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도, 책을 보고 따라 만들어도 번번이 제대로 된 치즈를 만들지 못했어요. 이론과 달리, 그리고 경험에서 온 수많은 증언들과 달리, 아가아가로 만든 것에 비해 덜 단단하거든요. 대신 열에 녹기는 잘 녹아요. 모더니스트 팬트리라는 미국 뉴햄프셔에 근거를 둔 전문 식재료 상이 여러 비건 치즈 메이커들로부터 검증받은 카파 카라기난을 판매해요.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두 종류의 카파 카라기난으로 속상한 실패를 연신 경험하고 잔뜩 약이 올라 배송비를 물고서라도 모더니스트 팬트리의 카파 카라기난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한국으로는 배송이 안된다네요. 비건 젖산(lactic acid)도 그곳에서 팔고 있는데 젖산이 들어가면 좀 더 치즈같은 맛이 난다고 해요. 흠. 하여간 결론은 그들의 카파 카라기난과 한국의 카파 카라기난은 다른갑다 입니다. 아래는 우리나라에서 파는 카파 카라기난으로 만든 치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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