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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Nov 11. 2015

스타워즈와 드라큘라_진실과 거짓.

무책임한 글쓰기에 대하여.

1.

여행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 회원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는 이십 년 전,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지금은 갈 수 없는 시리아, 이라크 등을 여행했고, 유고연방 시절의 발칸과 공산 시절의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물론이고, 그루지아라 불리던 조지아까지 두루 돌아다녔다.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과거의 여행이 그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덧붙여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나눈 대화에서부터 그 대화를 나누던 장소의 분위기와 빛과 공기와 먼지와 담배 연기까지 너무도 생생하여,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십 년 전의 그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는 영하 10도의 날씨에 발레 '백조의 호수'를 보기 위해 인민극장 밖에서 시민들 속에 섞여 줄을 섰고, 나무 썰매가 다니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눈 내리는 어느 저녁 한산한 골목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섹소폰 연주를 들었으며, 앞으로 그 땅에 평화가 찾아온다해도 나는 절대로 보지 못할 시리아 다마스쿠스와 이라크 바그다드의 찬란한 골목과 모스크와 바자르를 헤매고 다녔다. 담백한 소설처럼 담담한 문체로 쓰여진 그의 글은 한결같이 따뜻하고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기에, 나는 '새글 알림'이라는 기능을 찾아내 '띠리링' 알림이 울릴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그의 글을 읽곤 했다. 


헌데 며칠 전 그가 올린 글에서, 자유롭게 방랑하던 그때 그 시절 루마니아 브란성에 올랐던 추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결과만큼, 때로는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을 잊고 살곤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때 불쑥 튀어나온 추억 한 개... 트란실바니아는 동유럽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지방입니다. 그 풍경과 함께 '고도(古都)' 브라쇼브를 떠올리곤 하지요...브라쇼브는 150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은' 중세 유럽의 골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동네 작은 광장의 교회 굴뚝에 달린 목각 시계 또한 1500년을 그대로 이어져 왔으며, 브란성의 뒷동산에 오르면 브란성의 주인이자 트란실바니아의 영웅, 포로를 잡으면 기름 바른 말뚝에 걸쳐 놓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식사를 했다는, 그 모습을 보고 구토를 하는 사람을 똑같이 그렇게 걸어 놓았다는, 그래서 ‘말뚝이’라고 불리고, 거기에 더해 ‘블러드’라는 별명이 어어져 ‘말뚝이 불러드 페테슈 공’이라 불리는, 그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사람이 식사를 하며 바라보던 들판이 바로 보였지요. 그 들판에서 수백 년 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은 말뚝에 매달려 죽어갔을 때 내지른 비명이 정말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 들판이 내 앞에 펼쳐진 듯, 그 비명이 내게 들리는 듯한 글이지만,  


1. 브라쇼브는 13세기 독일 이주민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이다. 도시의 건립 연도까지 있다. 1234년. 그러니 도시의 나이는 1500년이 아니라 올해로 785년이다. 

2. 브란성은 브라쇼브가 아니라 브란에 있다. 브란은 브라쇼브에서 30km 떨어져 있다.

3. 브란성의 주인은 드라큘라의 모델인 블라드 체페슈가 아니다.

4. '블라드'는 별명이 아니다. 영어의 blood 같지만 'Vlad'. 그의 아버지는 블라드2세이고, 그는 블라드3세이다.

5. '말뚝이 블러드 페테슈(체페슈) 공'의 체페슈(Țepeș)가 '말뚝(꼬챙이) 형벌자'라는 뜻이다. 

6. 블라드3세와 브란성과의 관계는 지나는 길목에 몇 번 들렀다는 정도로만 기록되어 있다.

7. 그러니 글쓴이가 보았던 그 들판은 말뚝에 꽂힌 사람들이 있었을 그 들판이 아니다.

8. 블라드3세가 꼬챙이 형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보고 식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그에게 불만을 가진 작센인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서른 편 가까운 그의 글 중 내가 아는 곳이 등장한 것은 브란성과 브라쇼브가 유일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와 기억의 산물이었다. 도대체 그의 추억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그가 본 들판이 그저 트란실바니아의 광활한 들판 중 하나였고, 그 들판에서 꼬챙이에 꽂혀 비명을 지른 사람이 실은 아무도 없었으며, 그곳이 정말 브란성이었는지 아니면 브라쇼브의 어딘가였는지와 상관없이, 그 당시 그가 느꼈던 '감상'은 실존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부터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그의 추억과 그의 감상은 거짓인가 진실인가? 며칠 동안 이 물음이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과 동시에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거짓 기억을 소중히 끌어안고 있을지, 혹은 얼마나 많은 진실을 엉터리로 치부하고 있을지. 내가 기억했던 그 골목이, 그 맛이, 그 사람이, 그 말뜻이,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내 안에 만들어진 행복과 분노와 앙금과 사랑이 과연 참된 것일까? 그것들로부터 만들어진 취향과 신념은? 서슴없이 구분지었던 선과 악은? 

<밤 늦게 도착해 어렵게 구한 호텔에서의 다음날 아침. 밤새 브란성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_ 루마니아, 브란에서>


2.

네이버에 ‘스타워즈 촬영지 카파도키아’를 입력하면 제일 먼저 검색되는 4개의 글은 모두 터키를 여행한 사람들의 여행기이고 내용은 이렇다. 


"궁금해서 찾아본 스타워즈 속 카파도키아(스타워즈 영화의 한 장면을 캡쳐한 사진과 함께) 카파도키아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루카스 감독은 ‘스타워즈’ 1편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다."


"최고의 판타지 영화라 불리는 스타워즈와 만화의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란색 스머프들까지 모두 매료시킨 이 곳에서, 외계인들이 출몰하는 외계를, 그리고 따뜻한 스머프들의 상상 속 마을까지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다."


"스타워즈 촬영지라는 이곳.. 터키의 파묵칼레..석회 지역인 이곳은..정말 지구의 경관인가 싶을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는.."


"으흘랄라 계곡은 약 20km 정도의 계곡 사이로 비잔틴 시대의 수도사들이 은둔 생활을...스타워즈 촬영지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네이버 뉴스 메뉴에 똑같은 검색어를 입력해 보았다.  


"생명을 건 믿음의 증거-터키 카파도키아의 지하동굴교회", 문종성, <국민일보>, 2015-06-13, 기사링크

...터키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진 카파도키아. 수도 앙카라에서 자전거로 사흘 길을 가야 하는 네브쉐히르 지역에 위치한 광활한 고원지대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 장소로 사용될 만큼 각종 아름다운 기암괴석들의 향연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는…


"존경받는 지식인의 이중성을 폭로하다.", 고재열 기자, <시사인>, 2015-05-26. 기사링크

...롱 쇼트와 롱 테이크가 자주 쓰이는 <윈터 슬립>은 서정적이다. 영화의 배경인 터키 카파도키아의 바위굴 주택 지역은 <스타워즈> 1편의 촬영지였던 곳으로...


"고민이 필요없는 유럽 패키지 여행", 나보영 여행작가, <한국경제>, 2015-04-13. 기사링크

...옛 수도이자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비롯해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지로 등장했던 카파도키아,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 안탈리아...


"골몰길에서 마주한 게이샤의 추억", 손용석 부장, <한국일보>, 2014-10-02. 기사링크

...터키의 카파도키아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서 세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자연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에스닉 트래블의 명소 ① – 터키", 손은영, <보그>, 2015.06.29, 기사링크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 배경으로 유명한 기암괴석의 도시 카파도키아,..


놀라웠다. 영화 '스타워즈'는 카파도키아 뿐만 아니라 터키 전역 그 어디에서도 촬영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위키피디아'뿐만 아니라 '스타워즈'의 골수팬들이 열렬히 조사한 결과를 인터넷에서 볼 수 있으며, '론리플래닛 터키'편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SF영화에 나올 법하지만 소안르 근처나 터키 어느 곳에서도 영화 '스타워즈'를 찍은 적이 없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츄바카 팬들이여. 드라마틱하게 숨겨진 2개의 계곡에는 바위 교회들이 있고 이 암벽면들의 끝자락을 따라 오후에 가 보면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름다운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특히나 아름다웠던 소안르 _ 터키, 카파도키아, 소안르에서>


3.

루마니아에서 길거리 개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곳의 실상을 알고 싶어 페이스북에서 이런 저런 단체들을 팔로우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물 보호와 관련된 글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올 여름 한국의 '복날'을 앞두고,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느 동물 보호 운동가가 지속적으로 올리는 글이 내게 노출되었다. <개,고양이 고기 축제> 따위의 제목을 단 그/그녀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의 여름에는 세 번의 복날이 있는데(O), 

복날이면 한국사람들은 기력 보강을 위해(O),

개와(O),

고양이를(X)

잡아 먹는다.

/ 첫번째 복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모두 잔인한 한국인들로부터 개와 고양이를 지키자!

/ 끔찍했던 축제의 첫날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두 번의 복날이 남았다!

/ 아직 늦지 않았다. 마지막 복날이 다가오고 있다. 잔인하게 희생된 개와 고양이의 명목을 빌고 아직 살아 남은 개와 고양이를 지켜내자!


누구나 다 알겠지만 이 주장에는 거짓이 들어 있다. 우리는 고양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그녀의 글 아래에는 몇백 개의 좋아요와 몇백 개의 댓글이 달렸고, 짐작하겠지만 그 내용의 대부분은 개와 고양이를 먹는 한국인에 대한 혐오와 그 야만성에 대한 질타였다. 어쩌다 그/그녀는 우리가 고양이를 먹는다고 했을까. 


1. 개를 먹으니 고양이 또한 아니 먹을 리 없다.

2. 개를 먹으니 고양이도 먹는다 하여 사람들을 자극하자.

3. 한국에 대해 아는 누군가로부터 한국인들이 고양이를 먹는다고 들었다.


페낭의 열혈 운동가 사건 이후, 하루에도 수십 건씩 페이스북에 올라 오는 동물 학대 기사에 더 이상은 함부로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 글에 어떤 거짓이 진실로, 어떤 진실이 거짓으로 둔갑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4.

1번의 그가 어제 ''글빨'에 대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사람들이 그의 필력을 칭찬하자 글쓰기에 대해 쓴 것이었다. 그 내용 중, 


"많은 분들이 '필력'이라 말하지만 저는 제가 적는 글에서는 '글빨'이라고 다소 폄훼해서 쓰고 있어요. 그보다는 사실 내용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더 무서워하지요. 글이라는게 특히 인터넷에 게시를 한다는게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해서요."


알고 보니 그는 두 권의 기술 서적과 한 권의 에세이를 출판한 적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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