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나쯤 오아시스 같은 여행지를 품고 있다. 지루한 일상,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더 이상 버틸 것이 없다 느낄 때,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떠나보는 꿈같은 여행지. 풍요로운 지중해와 축복 가득한 태양을 품고 있는 도시 바르셀로나는 필자에게 바로 그런 곳이었다.
평소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이번 여행의 백미를 뽑으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세 거장의 이야기를 하겠다. 바르셀로나의 싱싱한 해산물과 아름다운 풍경은 예상했던 매력 포인트였지만 여행길에서 문득 문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번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뜻 깊게 만들었다.
죽은 후까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려 했던 가우디의 열정과 죽을지 몰라도 바다 끝까지 나아갔던 콜럼버스의 모험심, 그리고 죽을 때까지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피카소의 도전 정신까지.
세 사람이 남긴 모험과 도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루한 현실을 피해 떠나온 여행지에서 다시 돌아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고 싶은 당신에게 전해주고픈 이야기, 도전과 모험의 도시 바르셀로나로 지금 바로 떠나보자.
바르셀로나에서 두 번째로 만나볼 사람은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서양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그의 공적은 단연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에 알린 일이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사였던 그는 신항로 개척의 꿈을 쫒아 1492년 에스파냐(스페인)로 오게 된다.
당시로써는 터무니없고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열겠다는 그의 포부를 당시 에스파냐의 통치자였던 이사벨 여왕이 후원해줬기 때문. 기존에 통용되던 신념을 깨고 모험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볼 때 콜럼버스의 도전정신과 이사벨 여왕의 배포는 지금도 놀라울 정도다. 각종 금은보화와 향료의 나라 동양으로 가기 위해 단 3척의 배로 대서양을 나아갔던 뚝심의 사나이, 콜럼버스를 따라 바르셀로나로 가보자.
내게 콜럼버스가 일깨워준 열정은 가우디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한 개인의 야망과 그를 이루기 위한 추진력, 그것은 바로 신항로 개척이 불가능이라 얘기했던 수많은 사람과 다르게 그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콜럼버스의 당찬 모습은 바르셀로나 포르탈 데 라 파우 광장에서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파이프를 손에 쥔 채 바다를 향해 힘차게 손을 뻗고 있는 이 콜럼버스 기념 탑은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 당시 미국과의 교역을 위해 이곳에 세워졌다.
60m 높이의 거대한 콜럼버스 동상을 보고 있으면 신대륙 발견에 대한 스페인의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바르셀로나와 바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 곳에 서면 콜럼버스 동상과 같은 시선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신대륙을 발견이라는 기쁜 소식을 안고 콜럼버스는 바로 이 포트 벨 항구에 발을 디뎠다. 람블라 거리의 끝에 닿아있는 이 항구는 드넓게 펼쳐진 맑은 지중해의 끝이 어디일지 호기심마저 들게 한다.
과거 스페인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 곳은 현재는 아름다운 지중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한 쪽에는 가지런히 요트가 늘어서 있고 바다의 람블라라는 뜻의 물결치는 갑판은 보다 지중해를 가까이서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일까 가만히 앉아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실제로 필자는 커피 한 잔과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바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포트 벨에서의 좀 더 특별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바다 옆으로 테라스가 나있는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를 결정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스페인의 대표 음식 파에야와 와인을 곁들이며 끝이 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보고 있자니 그 맛에 한 번 취하고, 바다에 두 번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지면 항구 주변으로는 조명이 밝아지며 낮과는 또 다른 새로운 포트 벨의 매력을 선사하니, 시간이 허락된다면 낮과 밤의 포트 벨을 모두 즐기시길.
파에야는 프라이팬에 고기, 해산물, 채소를 넣고 볶은 후 물을 부어 끓이다가 쌀을 넣어 익힌 스페인의 전통 쌀 요리이다.
에피타이저용의 한 입거리로 만든 요리를 말한다.간식 대용으로 먹기도하며 간단히 술 한 잔과 함께 먹기에 좋다.
올리브나 치즈와 함께 차게 먹는 것과 오징어 등 해산물의 튀김 요리가 대표적이다.
밀가루 반죽을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튀겨낸 스페인 전통 간식, 기호에 따라 설탕, 계피 가루, 초콜릿을 뿌려 먹는다.
포트 벨에 내린 콜럼버스가 다음으로 향했을 곳은 바로 왕의 광장이다. 삼면이 벽으로 둘러 싼 형태의 작은 광장의 모서리를 메우고 있는 14개의 계단에서 콜럼버스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스페인의 여왕인 이자벨을 알현하고 신대륙 발견의 기쁜 소식을 알렸다. 이런 스토리를 알고 나니 그저 잿빛의 삭막한 공간이었던 이 곳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광장의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바르셀로나 백작 겸 아라곤 왕의 왕궁이며 좌우에는 아라곤 왕가의 문서보관실이었던 요크티넨 궁과 산타 아가타 예배당이 위치해 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이자 젊은 예술가들의 공연장이 되기도 하는 이 곳 왕의 광장에는 콜럼버스의 일화 말고도 몇 가지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첫 번째는 광장 구석에 있는 작은 유리창에 관련된 것이다. 유리창 너머로는 벽돌처럼 생긴 돌맹이들이 쌓여 이룬 벽을 볼 수 있는데 무려 1세기에 로마 사람들이 만든 벽이라고 한다. 다른 이야기는 왕의 광장 왼쪽에 위치한 요크티넨 궁의 정원이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스페인이 이슬람의 침입을 많이 받은 탓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색이라곤 회색이 전부인 이 광장이 그 독특한 분위기와 색감 덕에 영화 ‘향수’의 촬영 장소로 이용됐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 여행, 마지막으로 만나볼 거장은 20세기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피카소다. 스페인 남부의 항구 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난 그의 작품에서는 바르셀로나의 자유로움과 열정이 느껴진다.
특히 이 곳 바르셀로나에서는 청년 피카소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젊은 시절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던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는 점에서 내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피카소의 어릴 적 작품을 보려면 바르셀로나 몬카다 거리(Carrer de Montcada)에 있는 피카소 박물관으로 가자.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오랜 친구이자 비서였던 하이메 샤바르테스가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1963년에 개관했다.
중세 건축이 그대로 남아있는 몬카다 거리는 피카소가 청년 시절까지 미술 학교를 다니던 곳으로 박물관도 이 곳에 지어졌다. 피카소 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에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모퉁이에 위치한 박물관을 지나치지 않으려면 주의를 살피면 좋겠다.
피카소가 바르셀로나로 온 것은 13세 즈음이라고 하니 천재적인 화가 피카소의 예술적 재능과 열정이 바로 이 곳 바르셀로나에서 열매 맺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르셀로나와 인연이 있는 피카소의 유년 시절 작품으로는 “과학과 자애”, “첫 영성체” 등이 있다.
청년 피카소의 체취가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거리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손꼽히는 명물 거리이자 대표적인 관광지로 그 밑으로는 포트 벨과 이어진다.
얼핏 보면 상점과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 일반적인 거리로 보이지만 바르셀로나의 예술을 담당하는 거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와 현재의 예술가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골목 안쪽으로 쭉 걸어 나가면 피카소 미술관을 우연히 만날 수 있고 바닥에는 호안 미로(Joan Miro)의 모자이크 작품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들 거장의 혼을 이어 받은 듯 지금도 이 곳 람블라 거리에는 수많은 거리 공연 예술가와 미술가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르셀로나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 시간을 조금 더 즐기려고 벤치에 앉아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 꽃과 과일을 파는 작은 갑판과 초록 잎의 가로수가 모여 바르셀로나의 평소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내 곧 해가지면 낮과는 또 다른 람블라 거리가 모습을 나타난다.
낮과 밤의 이 거리는 서로 다른 느낌의 음악 같다. 낮 시간이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꽃향기 덕에 생기 있고 발랄한 느낌의 왈츠곡이라면, 밤은 우수에 빠져들게 하는 낭만적인 소나타와 닮아 있었다.
피카소가 직접 그려 선물한 그림을 메뉴판으로 쓰는 카페라고? 여행 책자에 쓰인 믿기 힘든 정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람블라 거리를 빠져나왔다. 도보로 10분 정도 걷다보니 앤틱한 느낌의 예쁜 카페가 눈앞에 나타났다.
1897년 처음 문을 연 카페 포켓츠는 당시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했고 단골이었던 피카소는 우정의 표시로 푸른 코트를 입은 신사가 그려진 메뉴판을 선물했다고 한다.
파리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를 본 따서 만든 이 카페는 까딸란어로 Els 4Gats로 몇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는 카페의 창시자가 4명인데서 착안한 것.
당시에는 피카소를 비롯하여 달리 등의 이름난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장소로서, 피카소가 젊은 시절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르셀로나에서 생애 첫 전시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1903년 한번 문을 닫았었지만 1981년 피카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실내 장식을 복원 후 다시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 안쪽의 넓은 벽면에는 지금도 젊은 예술가들의 그림을 실제로 판매해 초창기 예술의 중심이었던 정신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