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나쯤 오아시스 같은 여행지를 품고 있다. 지루한 일상,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더 이상 버틸 것이 없다 느낄 때,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떠나보는 꿈같은 여행지. 풍요로운 지중해와 축복 가득한 태양을 품고 있는 도시 바르셀로나는 필자에게 바로 그런 곳이었다.
평소에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이번 여행의 백미를 뽑으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세 거장의 이야기를 하겠다. 바르셀로나의 싱싱한 해산물과 아름다운 풍경은 예상했던 매력 포인트였지만 여행길에서 문득 문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번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뜻 깊게 만들었다.
죽은 후까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려 했던 가우디의 열정과 죽을지 몰라도 바다 끝까지 나아갔던 콜럼버스의 모험심, 그리고 죽을 때까지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피카소의 도전 정신까지.
세 사람이 남긴 모험과 도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루한 현실을 피해 떠나온 여행지에서 다시 돌아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고 싶은 당신에게 전해주고픈 이야기, 도전과 모험의 도시 바르셀로나로 지금 바로 떠나보자.
첫 번째로 내게 바르셀로나를 소개해 준 사람은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다. 그는 주로 하늘, 구름, 바람과 같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건축물을 설계했는데 그 덕분에 바르셀로나의 스카이라인은 그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곡선을 그려낸다.
1852년 스페인 타라고나 레우스에서 태어난 이 천재는 특유의 섬세하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그의 작품을 본 누구라도 자신의 이름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강렬한 바르셀로나의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타일 조각 장식을 봤을 땐 그 아름다움과 놀라움에 눈을 감아도 한참동안이나 잔상이 아른거렸던 기억이다.
하늘을 향에 솟아있는 첨탑과 그 표면을 빼곡히 매우고 있는 정교한 조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이 곳은 1884년 착공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스페인어로 ‘성가족’을 뜻하는 가우디의 마지막 열정이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지금까지도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2026년 착공한지 144년 만에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가우디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 재산과 온 열정을 쏟아 부어가며 노력을 쉬지 않았다니, 그의 열정과 노력하는 자세에서 나는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뜨겁게 응어리지는 무언가를 느꼈다.
3개의 파사드와 12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진 이 독특한 건축물은 그 자체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성당 외벽의 조각과 동상들은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동쪽 면에는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탄생의 파사드”, 서쪽 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묘사한 “수난의 파사드” 그리고 정문에는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광의 파사드”가 자리하고 있다. 각각의 파사드에는 4개씩 총 12개의 첨탑이 있는데 이는 예수의 12제자를 뜻한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나를 맞이했다. 한 건축물의 겉과 속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나 싶게 만드는 성당의 내부는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의 마음을 공감케 했다. 일렁이는 하얀 물결 같은 벽면과 장송마냥 박힌 기둥들, 그 위로 쏟아질 듯 조각된 별 문양을 보고 있으니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다.
형형색색의 빛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를 비추는 스테인 글라스는 또 어떠한가. 십자가 상의 뒤를 비추는 그 아름다운 빛은 절로 경건한 마음을 다잡게 했고, 매 정시 성당에서 연주하는 오르간 연주를 들은 순간 온 몸에 전율이 돋음을 느꼈다.
동쪽 면과 정문 방향에는 65m 높이의 타워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 타워는 바르셀로나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가우디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성당 입장권과 패키지로 구매 가능하다.
가우디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와 같은 특별한 건축물 말고도 바르셀로나 시민을 위한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 중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한 카사바트요는 ‘바다’를 형상화해 만든 건축물이다.
살아 숨쉬는 듯 유기체처럼 디자인 되었다하여 ‘인체의 집’ 곧 ‘카사 델스 오소스’라고도 불린다. 직물업자 바트요를 위해 지은 저택으로, 해골을 닮은 발코니가 독특하다. 카사 바뜨요의 외벽은 흰색 원형 도판과 초록색, 황색, 청색 등 형형색색의 유리 타일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오색찬란한 무지개 물결을 만들어낸다.
햇살이 강한 때에는 타일이 반사해내는 빛에 눈이 부셔서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가급적 한낮의 관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내부는 파란빛 타일로 가득 차있어 바다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카사바트요 건너 편에 있는 카사밀라 역시 가우디의 대표적인 민간주택으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을 테마로 했다는 이 건물 앞에 서니 표면부터 옥상까지 이어지는 물결에 신기한 마음이 앞섰고, 건물 옥상에 있는 조각품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졌다.
가운데 두 개의 작은 정원을 두고 둘러 싼 형태로 제작된 이 건축물은 곳곳에 나무가 심어져있어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가우디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다.
안으로 들어서니 거실, 침실, 주방 등에서 과거 스페인 사람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미래의 나의 집을 상상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아름다운 앞날을 상상하며 한 층 한 층을 돌아 올라가니 옥상에 다다랐다. 마치 조각 공원에 온 듯 다양한 조형물이 자리해 있는데 이 또한 모두 가우디의 머리에서 나온 디자인이다.
산 봉우리를 닮은 듯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간직한 큰 바위 같기도 한 조형물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가우디 산 정상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 가깝게 느껴지는 가우디의 새로운 발자취를 따라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는 아름다운 구엘 공원으로 가보았다.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환상적인 뷰를 자랑하는 이 공원은 관광객과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가우디와 그의 경제적 후원자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에우세비 구엘이 영국의 정원 도시를 모티브로 이상적인 전원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설계했던 가구단지였던 이 곳이 시민들이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휴식처로 탈바꿈 한 것은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이 부지를 사들인 덕분이었다.
구엘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버섯을 닮은 기둥이 반기고 그 뒤로 가우디 특유의 물결 디자인이 펼쳐졌다.헨젤과 그레텔이 살 법한 경비실, 언덕 아래도 구불구불 돌아 내려가는 난간과 조각조각의 타일이 모여 만든 생동감 넘치는 도마뱀까지.
그 독특하고 유쾌한 풍경은 예술품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공원의 중앙 광장에 서서 가우디만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장식을 바라보던 시선의 끝에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첨탑과 저 멀리로 아스라이 펼쳐진 지중해까지 그 시원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