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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Sep 11. 2021

Historic Park Inn

되살아난 거장 건축가의 호텔

미국 중부 내륙 지역에 아이오와 주가 있습니다. 이곳은 네브래스카 주와 일리노이 주 사이에 끼어있는 곳으로, 동쪽의 일리노이처럼 커다란 호수와 운하를 끼고 있지도 않지만, 서쪽의 네브래스카나 와이오밍 같은 산간 지역도 아닙니다. 그냥 비교적 쌀쌀한 날씨에 끝없는 평원이 펼쳐진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광활한 옥수수 밭입니다.


아이오와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주도인 디모인(Des Moines)입니다. 아이오와 주 중심부에 위치한 디모인의 인구는 22만 명으로 인구수로만 보면 대략 강릉과 비슷합니다. 여기에서 대략 200km 북쪽으로 가면 미네소타 주와의 접경 지역에 인구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메이슨 시티(Mason City)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인구수로만 보면 강남구 삼성동의 절반 정도 규모입니다.



전혀 흥미진진한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시골의 소도시에서 10여 년 전 세간의 이목을 끄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Frank Lloyd Wright가 설계했던 한 작은 호텔을 복원하기 위한 Wright on the Park 프로젝트였습니다. 1910년에 준공된 43실 규모의 이 호텔은 대공황 이후 오랜 기간 버려진 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가, 지역 주민들이 의기투합하여 진행한 이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2011년 27실 규모의 호텔로 재개장했습니다.


1900년대 초의 메이슨 시티는 지금과 달리 활기가 넘치는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의 유력 변호사 James Blythe와 J.E.E. Markely는 빠르게 성장하던 자신들의 사무실을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이사회 일원으로 있던 지역 은행 City National Bank 또한 빠르게 성장하며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반면, 당시에 외지인들의 출입이 잦았던 이 동네에는 변변한 호텔이 없어 지역민들의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에 두 변호사들은 이 모든 필요를 한 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복합 건물의 건립을 구상합니다.


당시 Wright는 시카고 교외의 Oak Park에 자신의 사무실을 개업한 지 10여 년이 되어가던 38세의 젊은 건축가였습니다. 당시 두 변호사 중 한 명의 딸이 다니던 학교의 건물을 Wright가 설계했었는데, 이를 계기로 Wright가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됩니다. Wright는 번화가에 접한 동쪽에 은행을, 가장 한적한 쪽에 호텔을, 그리고 그 사이에 법률사무소를 끼워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Wright는 이 건물의 준공을 지켜보지 못합니다. 공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혼 Wright가 자신에게 주택 설계를 의뢰했던 한 건축주의 아내와 유럽으로 야반도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설계 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이었지만 이 건물은 설계에 참여했던 직원의 악전고투 끝에 최초의 계획안대로 1910년 완공되었고, 호텔은 Park Inn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합니다.



오픈하고 난 후, 이 건물은 메이슨 시티의 랜드마크가 됩니다. 그러나 번듯하게 새로 들어선 건물에 환호하던 지역민들은 당시만 해도 이 건물이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192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 유출을 겪던 농촌 지역은 대공황에 앞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때 수많은 농촌 지역의 은행들이 파산하게 되는데, City National Bank 또한 그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이 건물의 은행 부분이 매각되어 상가 및 업무시설로 리모델링됐고, 파산해버린 은행과 더 이상의 관계가 없어진 두 변호사들은 사무실을 임대하고 다른 동네로 옮겨 갔습니다.



새로운 주인을 찾아 새출발한 은행이나 사무실과 달리, 호텔 부분은 인근에 새로운 호텔이 오픈하면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노후한 건물의 로비 천창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가장 상징적이었던 공간이 막힌 지붕으로 덮여 무미건조한 공간으로 바뀝니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호텔 부분은 한동안 임대 주택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결국 대공황 이후 버려진 건물이 되고 맙니다.



이후 Wright는 재기하여 미국 최고의 거장으로서 입지를 다졌는데, 그의 사후 Park Inn은 직접 설계했던 호텔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 됩니다. 지역민들은 이 건물의 재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72년이 되어 Park Inn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재됩니다. 이를 계기로 지역민들은 이 건물을 재생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을 진행하지만 예산 부족과 좁혀지지 않는 이견으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은행 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하게 찾아왔고, 지역민들은 기금을 조성해 Wright on the Park를 설립하여 은행 부분을 매입했습니다. 문화재가 되면서 세제 혜택이 주어진데다 최초의 상태가 온전하게 재생될 수 있는 기반까지 조성되자 자금 조달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리고, 2008년 재생을 위한 공사가 시작됩니다. 모든 문화재 복원 공사가 그렇듯, 규모에 비해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는데, 나중에 추가된 부분들을 걷어내고, 변경된 부분을 되돌렸으며, 소실된 부분을 다시 만들어 채웠습니다. 마침내 2011년 Historic Park Inn이 문을 열었습니다.



건축과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호텔 투자 관련 일들을 해왔던 저에게 Wright는 이 두 전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최근 들어 근대 건축의 거장들이 설계했던 건물들이 하나 둘 호텔로 용도변경된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고 있지만, 그들이 현업에 있을 때 호텔을 설계했던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Walter Gropius가 그리스에 Porto Carras Grand Resort설계했던 적이 있지만 막상 공사는 그의 사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나마 Wright가 호텔 설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거장 건축가였습니다. 물론 그가 설계했던 호텔들 중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동경 제국 호텔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Wright가 설계했던 동경 제국 호텔은 지금 사라지고 없습니다. 즉, Historic Park Inn은, 비록 Wright의 다른 호텔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호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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